20대 중반, 나는 스스로 결정하기로 했다.

피곤해서 선선하게 좋아 ①

by 선선

피곤한 인생

서울의 한 이공계 대학을 졸업했다. 학부 성적은 괜찮았고, 전문직의 길도 열려 있었다. 문제는 몸이었다. 나는 10대 후반부터 늘 피곤했다.


20대 중반에야 알게 된 원인은 갑상선 호르몬 문제였다. 애매한 수치라 약도 나오지 않았다.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남들보다는 좀 피곤한 인생을 살고 있네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수치가 심해지면 약을 드세요. 그때부터는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합니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에 나는 소파에 드러누운 채 공부를 해야만 했다. 몸이 도무지 따라주지 않았다.




연구를 하고 싶었다

평생 피곤한 몸으로 전문직을 택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사실, 꿈꿔본 적조차 없는 길이었다.


나는 늘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연구를 택했고, 학부 인턴으로 실험실에 들어갔다. 하지만 현실은 노가다였다. 매일 단순 반복과 잡일 뿐이었다. 그땐 속상했지만, 돌이켜보면 인턴에게 줄 수 있는 일이란 게 결국 그런 것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세 달 뒤, 다른 연구실로 옮겼다. 그곳은 군대 같았다. 교수의 지시, 이유 없는 화, 날아다니는 종이. 해외 박사를 꿈꿨지만, 그곳에서 석사만 하고 싶다는 마음조차 쉽게 꺼낼 수 없었다. 결국 연구실을 그만두고 싶었고, 그때 부모님과 크게 부딪쳤다.



적응 못하는 사람

걱정이 많은 부모님 눈에는 내가 단지 “적응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던 것 같다. 대화는 늘 같은 결론으로 흘렀다.


“아마 네가 아직 적응을 못해서 그런 걸 거야. 그곳에서 조금만 더 버텨봐”


그 시절, 잠깐 방문 연구원으로 와 있던 선배 한 분이 내 얘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진로 고민은 부모님이랑 하는 게 아니야. 연구실이든 진로든 바꾸기 전에 부모님한테 말하면 걱정하고, 반대하시지. 하지만 바꾼 뒤에 말하면 부모님은 오히려 네 의견을 들어주실 거야. 더불어 네가 부모님 결정을 따른다고 해서 부모님이 네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아.


그러니까, 네 진로는 네가 정하는 거야.”



내 방식대로

어릴 적부터 집안 사정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현실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 생각하며 넘어갔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나는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기로 했다.



결심의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

그 결심은 결국 나를 독일까지 데려왔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나는 과연 이곳에서 버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뒤따라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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