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해서 선선한게 좋아 ②
[이전글 바로가기] ① 20대 중반, 나는 스스로 결정하기로 했다
나는 나 자신을 믿고, 조금 더 나은 연구실을 찾아서 옮기기로 했다. 다행히 과정은 순조로웠고, 새로운 곳에서 석사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물론 그 사이에도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지금도 석사 때 함께 연구했던 동료들과 종종 연락을 한다. 교수님, 연구실 사람들과 잘 마무리했다는 사실. 그게 지금의 나에겐 가장 큰 위안이다.
석사 졸업 뒤, 나는 해외 유학을 생각했다. 사실 그것은 나의 오래된 꿈이었다.
중학생 때의 일이다. 친한 짝이 영국으로 방학 동안 두 달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다. 친구가 같이 가자고 했지만, 집안 형편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바이올린도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었지만, 그것도 같은 이유로 접어야만 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적어도 유럽에서는 학비가 내 발목을 잡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유럽이라는 존재는 내 마음속 보석함 어딘가에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석사를 마칠 즈음, 내가 하고 싶은 연구 주제로 국내에서는 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시선을 밖으로 돌렸고, 다양한 해외 연구실을 알게 되었다. 여러 교수님께 직접 메일을 보냈다. 내 연구 관심사와 계획을 정리해서.
당연히 거절도 많이 당했고, 인터뷰도 몇 번 봤지만 좋은 결과는 얻지 못했다. 한 번 크게 깨달은 뒤, 전략을 바꿨다. 모든 기본 개념을 한두 문장으로 설명하는 나만의 인터뷰 전용 답안지를 만들었다. 답안지 전체를 연습하는 데 세 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참고 버텼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마지막이 될지 모를 인터뷰를 봤고, 나는 합격했다.
마지막 오퍼를 받고서야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쉽지 않으셨을 텐데, 끝내 유학을 허락해 주셨다.
돌아보면, 나는 그때 정말 절실했다. 그 절실함이 운을 불러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운에는 늘 대가가 있었다. 해외 박사 과정은 나에게 그 값을 치르게 만드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