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해서 선선하게 좋아 ③
[이전글 바로가기] ② 독일 프로젝트
학부를 마친 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연구원으로 진로를 정했다. 그리고 그렇게 내린 결심은 결국 나를 독일 박사 과정으로 데려다주었다. 비대면 인터뷰만 마치고 건너온 터라, 사실 독일은 여행으로만 가본 나라였다. 연구실 동료들과 교수님을 직접 뵙는 건 독일에서 처음으로 이뤄졌다.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교수도, 동료도 아니었다. 비서였다. 거주허가 신청, 기숙사 배정까지 그가 모든 절차를 하루 만에 처리해 주었다. 나는 감탄했다.
'독일은 연구자 지원이 이렇게 잘 되어 있구나.'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때 그 비서가 특별히 일을 잘했던 사람이었다는 걸.
몇 시간 뒤, 비서와 나는 교수에게 메일을 보내야 했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가장 정중하게 교수님의 이름을 적었다. “Dear Professor. ○○” 비서가 내 메일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윽고 비서가 말했다.
“그냥 Hi 먼저 쓰고 교수님 이름 적어도 돼요.”
… 잠깐 정적이 흐른 후, 나는 다시 물었다.
“정말인가요?”
비서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당신은 이제 이곳 학생이고, 이미 인터뷰에서 교수님을 만났으니, 그러니까 Hi로 충분해요.”
나는 몰랐다. 그게 가능하다는 걸.
이메일만이 아니었다. 여기에서는 나의 'L' 발음을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고쳐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영어 회화는 정말 처참했다. 똥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나 여기서 1년은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왔다. 그때는 지금처럼 좋은 회화 앱도, 언어 학습 도구도 많지 않았다. 나는 네이버 블로그를 뒤적이며, 회화 기초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익숙한 것들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곳. 나는 매일 부딪히며, 조금씩 천천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공무원이 내 출생지인 서울의 스펠링을 잘못 적는 바람에, 나는 정식 비자 대신 임시 비자를 받아야 했다. 허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시 신청해야 했다. 그때는 한국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걸 모르는 독일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