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건
그대일까
그때일까
첫사랑이 그리운 것은 첫 사람 때문일까, 첫사랑을 만났던 젊음 때문일까. 내가 이 시를 썼다면 아마도 이렇게 썼을 것이다.
그리운 건
그대일까
그때일까
이 분은 디자이너였다. 트위터에 시를 올려서 유명해진 사람이고 디자이너들은 생긴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말도 있다. 잘 생긴 것은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는 재능이다.
위에서 내가 써 본 시는 띄어쓰기를 철저하게 지켰다. 그런데 하상욱 시인은 그것을 무시해 버렸다. 무시해 버리자 모양이 예뻐졌다. 나는 문법을 지키면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하상욱 시인은 법보다는 생긴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자 실제로 시가 더 예뻐졌다. 이렇게 문법을 파괴해도 좋은 시가 될 수 있다.
이 시에는 생략된 말이 있다. 그리운 건 그대도 아니고, 그때도 아니도 그때의 나다. 그립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뜻이니까 결국 그때 사랑했던 것은 그때의 나다.
시는 다 말하지 않는다. 독자의 상상력이 시를 완성하고, 독자가 완성할 수 있는 부분이 남겨진 시가 좋은 시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좋은 시이다. 이 시는,
그리운건
그대일까
그때일까
이렇게 적혀 있지만 나에게 와서 이렇게 완성된다.
그리운건
그대일까
그때일까
그때의 나일까
이렇게 되면 줄이 안 맞다. 미관상 좋지 않으니 생략이 맞는 것 같고, 시는 독자에게 와서 완성된다는 점에서도 생략이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