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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작가 Sep 28. 2022

조직에서 벗어난 후 남은 나

퇴사하는 공무원들

자아는 이미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선택을 통해 계속 형성되는 것이다. 

-존 듀이-     


부모님이 사시는 시골마을, 몇 년 전 아랫집 할머니의 손자가 교육행정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며 마을 잔치를 했다. 그놈의 공부가 뭔지 중학생 때부터 명절에도 내려오지 않아 수년을 손자 얼굴조차 구경하지 못했어도 자랑스러움에는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잘 하나 싶었는데 임용 3년쯤 지나 전해 들은 소식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상사에게 받은 업무 스트레스란 말도 있고 본래 성격이 낯을 많이 가려 사회생활에 안 맞았을 거란 말도 있었다. 뉴스에서나 들었던 일이 이웃에서도 일어나다니 공직에서 근무했던 나는 더 맘이 쓰려왔다.       


공무원연금공단 통계에 따르면 재직 3년 이하 공무원 퇴직자는 2018년 5천166명, 2019년 6천147명, 2020년 8천442명으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그 자리에 섰지만 현장은 만만치 않다. 상명하달의 수직관계, 서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무책임, 나만 아니면 된다는 무관심을 슬기롭게 이겨내지 못하면 견디기 무척 힘들 것이다.      


직장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

근무하던 학교에서 회식하는 날 학년별로 정해진 자리가 있는데 비담임인 나는 초대되지 않은 불청객이었다. 업무 조직도에는 분명히 내 이름이 있지만 남의 집에 얹혀사는 불안함을 안고 있었다. 퇴사하는 날 친목회의 규정에 따라 하얀 봉투에 5만 원을 받았다. 관리자는 그동안 수고했다는 간단한 말 대신 내 능력의 아쉬움을 한 번 더 짚어주었다. 마침 결재서류를 가지고 와 들이민 직원 덕에 그 자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덕분에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차라리 홀가분했다. 들어가는 것은 어려워도 나오는 것은 이렇게나 쉬운 것을 17년이나 뜸을 들였다.     


직장에서의 부존재감이 오히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고민하게 했다. 언제 어떨 때 가장 나다운가를 찾고자 노력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환경에서 벗어나면 또 다른 세상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경우에도 목숨을 내어줄 만큼 스스로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 정체성을 찾아야겠다는 결정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언젠가는 마주할 나의 죽음을 바라보면서였다.      


TV 예능 프로 '뉴 키즈 온 더 블록'에서 진행자 유재석이 출연자 재재에게 질문했다.


"앞으로 목표가 뭐예요?"

"호상이요."


젊은 사람이 호상이 목표라니 어이없어 웃고 말았지만 곱씹어 보니 언젠가부터 호상만큼 복 받은 인생이 있을까 싶다. 죽음을 생각하니 과감해졌다. 삶의 마지막 순간 가장 후회할 것 같은 일은 썩은 동태눈으로 평생을 꾸역꾸역 직장을 다닌 것이었고,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일생에 한 번은 눈에 불을 켜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라 결론 내렸다.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이다. 한 달일지, 6개월 일지, 30년 일지 아무도 모르지만 인식되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두려운 죽음 앞에서 어렴풋이나마 명확한 삶을 살고자 한다. 정작 죽음을 인지하는 날이 오면 삶은 더 흔들릴지도 모르겠다. 선택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삶에 대한 속상함과 아쉬움으로 몸부림치지 않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빛나는 하루를 오늘도 감사히 받들며 취침 전에  '오늘도 잘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하루를 살고 싶다.     


나 자체로 충분히 소중하다.

2019년 5월 1일. 의원면직과 동시에 법인을 설립해 제2의 직장인의 삶이 시작되었다. 꽃다발이나 사람들의 격려와 환호를 대신해 경매로 낙찰받은 아파트가 나의 퇴직을 축하해 주었다. 기관의 업무 조직도에서 내 이름이 완전히 사라졌지만 마음속에 당당히 이름 석 자를 새길 수 있어 벅차다. 평일 오전 따뜻한 봄바람맞으며 산책할 수 있고 가끔 기분 내킬 때 낮술 한 잔 즐길 수 있는 삶을 드디어 이루었다.      


면직을 후회하는 날이 올까. 그건 모를 일이다. 동전의 양면이 있듯 좋은 것만큼 아쉬움도 있다. 자유를 선택한 대신 책임의 무게가 커졌고 안정적이던 수입은 들쑥날쑥해졌다. 싫은 사람 앞에서 거짓 웃음을 짓지 않아도 되고 불평불만인 사람에게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아도 된다.  나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사람보다 가능성을 인정해 주는 사람과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 지난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도전하고 있고, 후회하더라도 그런 자신까지 받아들일 줄 아는 나를 그저 믿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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