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에게 친밀한 타자이다
#1 집들이
고향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성형외과 의사 석호(조진웅) 네 집들이입니다. 주인 부부를 포함하여 4 커플이 참석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변호사 태수(유해진), 사업가 준모(이서진)는 부인과 함께 왔고, 교사 출신 영배( 윤경호)은 애인이 아파서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속초를 떠난지 오래 되었지만 여전히 고향의 음식을 그리워합니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2018년 이재규 감독의 작품입니다. 훌륭한 영화에는 늘 두 개의 스토리가 지질의 층처럼 쌓여 있습니다. 표면적 서사 아래에 심층적 서사 숨어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표면적 스토리는 고향 친구들이 모여서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상대에 대해 서로가 모르는 낯선 이야기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면 친절하게도 표면적 스토리를 요약하는 화면이 나옵니다.
인간에게는 3개의 스토리가 있다. 공적 이야기, 개인적 이야기, 비밀의 이야기.
# 2 석호, 정신과 상담
표면적 스토리 아래에는 심층적 서사가 깔려 있습니다. 영화의 철학적 의미는 심층적 서사에 담겨 있습니다. 이 영화의 철학적 의미는 나는 나에게 타인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40년 친구들에게도 타인일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나 자신에게 타인이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에서 타자의 가능성의 조건은 자기 관계에서 타자성입니다.
성형외과 의사 석호는 아내 몰래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석호는 아내와 상담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 대신 다른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석호의 문제가 무엇인지 영화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내에게 매우 낯선 내용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문제는 석호 자신에게도 낯선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석호에게 이질적 요소이지만, 사실은 본인이 이미 잘 아는 친밀한 것입니다. 단 본인은 그것을 알고 있다는 점을 모릅니다.
#3 의식과 무의식
(1)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은 두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의식의 방이며, 다른 하나는 무의식의 방입니다. 각각의 방에 소망, 기억, 의지 같은 경험들이 들어 있습니다. 의식의 경험은 내가 알고 있습니다. 반면 무의식의 경험은 내가 모르고 있습니다. 무의식은 내가 잘 모르는 경험의 영역이므로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이 용어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의식의 소망이나 경험은 그냥 내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는 내가 알았는데 지금은 내가 외면해서 모르게 된 것입니다.
(2)
시뇨렐리는 이탈리아 오르비에토 대성당의 프레스코를 그린 화가입니다. 프로이트는 친구와 대화하던 중 이 화가의 이름을 언급하려고 하는데 그 이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프로이트는 그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려 하지만 자꾸 다른 이름들만 입에서 맴돕니다. 그 화가의 이름, “시뇨넬리”는 프로이트의 정신 속 어디에 있을까요?
(3)그 화가의 이름, “시뇨렐리”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그 화가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원래 그것은 프로이트의 의식에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시뇨렐리”라는 이름을 몰랐다면, 그것을 프로이트는 기억해 내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뇨렐라는 이름은 의식의 영역으로부터 무의식의 영역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이미 알고 있는 이름이지만 그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예전에는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모르는 경험들이 모여 있는 영역이 바로 무의식입니다.
(4)무의식은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모순의 영역입니다. 이런 인식의 모순은 왜 발생할까요? 인간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주제를 외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식 회피의 과정을 프로이트는 억압이라고 부릅니다. 억압은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외면하는 작용입니다.
프로이트는 그 화가의 이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의식의 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프로이트가 싫어하는 주제와 연결이 되면서 프로이트는 이름을 외면합니다. 그래서 그 이름은 무의식의 방으로 밀려갔습니다. 무의식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친밀한 경험이지만 내가 외면하여 나에게 낯설게 된 경험이 모여 있는 방입니다. 간단히 말한다면 무의식은 친밀하면서도 이질적인 영역입니다.
영화 완벽한 타인의 영어 제목은 intimate strangers, “친밀한 이방인”입니다. 영화의 한국어 제목 “완벽한 타인”과 영어 제목 “친밀한 이방인”은 좀 뜻이 다릅니다. 그런데 영어 제목 “친밀한 이방인”이 영화의 내용에 더 잘 어울립니다. 이 영화는 나에게는 낯설지만 그렇지만 친밀한 나의 정신세계를 그려내기 때문입니다. stranger 즉 이방인은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뮤의 작품 이름과 같습니다. 카뮤는 이 소설에서 각자의 내부에 들어 있는 이질적 요소를 탐색합니다. 나 속의 이방인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영화 친밀한 이방인이나 소설 이방인은 주제가 비슷합니다.
# 4. 변호사 태수
변호사 태수는 새로운 여자를 아내 몰래 만나고 있습니다. 이 여자는 밤 10시면 태수에게 야한 사진을 전송합니다. 태수는 직업이 변호사이며,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모범적 인물입니다. 그런데 선정적 사진을 여자와 교환하고 있습니다. 이런 태수의 모습은 태수에게 친밀하면서도 낯선 이방인입니다.
#5. 태수의 아내
태수의 아내 수현(염정아)는 문학 교실에 다니며 시를 쓰고 있습니다. 남편과 드라이브를 하면서도 시를 암송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신사임당처럼 고상하게 모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집들이의 주인 여자 예진(김지수)을 질투하고 있습니다. 태수의 아내는 전업주부이며, 예진은 정신과 의사입니다. 타인의 성공을 배 아파하는 자신의 심리를 수현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떨 때는 그것이 품위 없다고 생각하여 외면합니다. 그래서 질투는 그녀에게 낯선 이방이 됩니다.
#6. 석호의 아내와 준모
석호의 아내 예진은 자신에게 당당한 여자이며, 정숙한 여자입니다. 그러나 남편의 친구인 준모와 은밀한 관계입니다. 준모는 아내를 동반하고 예진 부부와 함께 식탁에 앉아 있습니다. 예진은 남편의 친구와 불륜의 관계이지만 준모에 대한 욕망을 저녁식사 내내 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예진은 편안하게 준모와 아내를 맞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진에게 준모와 경험했던 은밀한 경험은 친밀하면서도 낯선 영역입니다.
인간 모두에는 친밀한 이방인이 있습니다. 이것을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라고 불렀습니다. 무의식의 존재 때문에 나는 나에게 늘 타인입니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인간관계에서 타자성뿐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에서 타자성의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