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상간, 죄의식 그리고 복수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는 복수, 죄책감, 고통이라는 인간 정신의 어두운 측면을 묘사한다. 영화의 중심에는 근친상간적 관계와 그것이 유발하는 비극적 결과에 대한 충격적 폭로가 놓여 있어,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토템과 타부>(1913)를 영화의 매체로 검토하는 인상을 준다. 프로이트는 이 저술에서 인류학과 정신분석학을 결합하여 근친상간의 심오한 심리적 메카니즘을 조사한다. 프로이트 이론의 시각에서 <올드보이>를 관찰하면, 이 영화가 인간 경험의 핵심에 있는 원초적이고 억압된 근친상간적 욕망을 어떻게 다루는지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프로이트의 <토템과 타부>에서 근친상간 타부(the incest taboo)는 인간사회에서 가장 근본적인 금지제도이다. 근친상간적 욕망은 모든 인간의 마음에 존재하지만, 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철저하게 통제된다고 프로이트는 가정한다. 근친상간의 억압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데 긴요하므로, 만약 이 욕망을 표출하면, 개인의 삶에 파멸적 결과가 일어나게 된다.
<올드보이>에서 근친상간은 영화의 플롯을 밀고나가는 원동력이다. 주인공 오대수는 숙적 이우진의 조종을 받아 자신도 모르게 딸 미도와 근친상간적 관계를 맺게 된다. 이런 우진의 조종은 자기 자신이 벌인 근친상간적 관계의 여파 때문이다. 영화의 회상 장면에서, 우진과 그의 누나는 10대 시절 성적 관계를 맺었으며, 이들의 금단적 관계는 오대수가 학교에 소문을 퍼뜨리면서 드러나게 된다. 이 폭로는 지역사회의 스캔들이 되고, 우진과 누나에게 극도의 수치심을 일으켜 결국 우진의 누나는 자살하게 된다. 금기 관계의 폭로가 우진의 인생에 결정적인 비극이 되었으며, 그런 불행을 야기한 대수에 대한 복수 계획을 촉발시켰다.
근친상간 타부의 기원
근친상간의 타부는 가까운 가족 구성원, 특히 아들과 어머니 또는 아버지와 딸이 성적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인류의 원초적 욕구를 억제한다. 이런 금기는 왜, 언제부터 존재하게 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근친상간 타부는 별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가족끼리 친척끼리 성관계를 금지하는 것은 언뜻 보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당연한 문제도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인류의 초기에는 아직 법률, 도덕, 제도가 없었다. 근친상간 금기는 언젠가 어떤 이유 때문에 생겨나서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온 것이다.
근친상간 타부의 유래를 프로이트는 원시 집단에 관한 다윈의 가설에서 발견한다. 지금 남자의 행동으로부터 추리해 본다면, 원시인은 비교적 작은 인원이 무리지어 살았을 것이다. 남자의 기본 성향은 질투이므로, 남자는 여자를 독차지 하려고 하여, 원시 집단에서는 힘이 가장 센 한 남자가 집단의 모든 여자를 독점하고 있었다. 그러니 규모는 한 남자가 성관계를 맺을 수 있고 부양할 수 있는 여자의 숫자로 추정할 수 있다. 원시 집단은 구성원이 한명의 남자와 다수의 여자, 그리고 그들의 자녀이므로, 한명의 남자는 아버지이며, 모든 여자는 그의 아내이다. 딸이 태어나면, 딸도 아버지의 여자이다. 아들도 물론 태어날 것인데, 아들은 딸과 전혀 다른 운명을 맞이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집단의 어떤 여자와도 성관계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거나, 그럴 위험을 막기 위해 아예 집단으로부터 추방한다. 만약 아들이 여자와 관계를 나눈 것이 발각되면 살해의 처벌을 받을 것이다. 남자의 질투심, 즉 다른 남자가 자신의 여자와 관계를 나누는데 대한 혐오가 근친상간 금기의 출발점이다.
아버지의 마을에서 탈출하거나 추방된 아들들이 새로운 집단을 만들더라도 성관계에 대한 비슷한 금지가 생길 것이다. 거기서도 힘이 가장 센 남자가 지도자가 되고, 그의 질투는 다른 남자들이 집단의 여자와 성관계를 나누지 못하도록 금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가면, 이 금지제도는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끼리는 성관계를 하지 말라”는 법률이 된다.
프로이트는 근친상간 타부에는 이것 이상의 토대가 있다고 가정한다. 질투는 아들에게도 있다. 아들은 여자를 독점하는 아버지를 미워하여, 서로 힘을 모아 아버지를 살해한다. 부친 살해는 여러 민족의 설화에서 자주 발견되는 소재이다. 아버지 살해는 아들에게 커다란 죄책감을 일으킨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질투적 혐오의 대상이지만, 이상적 애착적 존재이기도 하였으므로, 아버지를 죽인데 대한 후회의 감정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들은 부친 살해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전리품으로 획득한 여자를 포기한다. 아들들은 아버지의 여자와는 성관계를 맺지 않기로 다짐하는데, 이것이 근친상간 타부에 강력한 토대를 추가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투쟁
<올드보이>에서 우진과 대수는 <토템과 타부>의 시나리오에서 원시 집단의 아버지와 아들의 역할을 각각 수행한다. 10대 시절 대수는 우진과 그의 누나가 성관계를 나누는 것을 목격하고 그것을 퍼뜨렸다. 결국 우진의 누나가 동생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문으로까지 험담이 확대되자 누나는 댐에 투신한다. 우진의 근친상간에 대한 대수의 폭로 행위는 아버지의 성관계에 대한 아들의 질투와 비슷하다. 그리고 대수의 폭로가 우진의 누나를 죽음에 이르도록 몰아넣고, 우진의 영혼을 죄의식으로 갉아 먹히게 하였다. 이점에서 대수는 아버지를 살해한 원시 집단의 아들을 대표하며, 우진은 아들에게 살해당하는 아버지를 대표한다.
우진은 자신의 근친상간적 관계를 파괴한 대수에게 복수하기로 하고, 장기간의 섬세한 계획을 세운다. 우진은 대수를 납치하여 15년간 감금하고, 최면을 활용하여 그 자신의 딸과 연정을 품도록 조정하다. 대수는 석방되자마자 미도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국 그녀와 성관계를 갖게 되는데, 미도는 대수의 딸이므로, 그들은 근친상간의 금기를 파괴한 셈이다. 대수에 대한 우진의 복수는 자신과 누나의 관계를 무너뜨린 라이벌을 처벌하고 통제권을 되찾으려는 아버지의 상징적인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근친상간이라는 주제는 두 남자 사이에 이동한다. 우진은 자신이 겪은 것과 비슷하게 대수를 죄책감과 고통의 위치로 몰아넣는다. 원시 집단에서 근친상간의 금기를 위반하면 그 사람은 지속적으로 심리적 고통을 겪게 되는데, 이 과정은 후대의 토템 문화에서 나타난다. 프로이트는 이점을 토템미즘의 연구에서 확인한다. 토테미즘의 의례와 비슷하게, 우진이 세심하게 구성한 플롯은 원시 집단에서 벌어지는 근친상감 타부의 위반과 처벌의 순환을 재현한 것이다.
토테미즘은 특정 동물을 신령한 존재로 모시고, 그것과 동일시하는 부족의 집단적 문화이다. 한 집단이 추앙하는 동물을 토템이라고 하는데, 토템은 대개 동물의 한 부류이지만 식물이나 사물일 수도 있다. 토템 부족원들은 보통 때는 숭배하던 동물을 주기적으로 잔혹하게 살해하고 먹는 향연을 벌인다. 도살이 끝나고 나면, 죽은 동물에게 애도하고 눈물을 흘리는 의례가 이어진다. 토템 동물을 부족원들이 공동의 조상이라고 여기므로, 그 동물은 부족원들에게 아버지이다. 그래서 토템을 살해하고 애도하는 의례는 원시 집단에서 아들이 부친을 살해하고, 살해 때문에 일어나는 죄책감을 씻어내는 죄와 속죄의 사이클을 재현한다.
우진이 누나와 맺은 근친상간적 관계와 누나의 자살은 그에게 해결되지 않은 죄책감과 수치심을 안겨주었다. 우진은 반성을 통해 죄책감을 해소하기보다는 자신의 죄를 대수에게 투사하여 그를 심리적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이것은 원시 집단의 아들들이 부친을 살해한 후 근친상간의 타부를 제정하여 죄책감을 해결하거나, 토템 부족원들이 동물을 살해하고 애도하는 의례를 통해 죄책감을 타자에게 전가하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대수는 자신의 혀를 자른다. 이것은 자신이 저지른 근친상간의 죄에 대한 처벌이다. 반면 오이디프스는 자신의 두 눈알을 파내어 근친상간을 스스로 처벌한다. 이런 자기 처벌은 근친상간의 죄를 속죄하려는 시도이다.
근친상간의 유혹
많은 사람들은 근친상간 타부를 너무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 그들은 인간이 원래 근친상간을 혐오하기 때문에 근친상간 금기가 생겼다고 추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원래 싫어하는 것을 도덕이나 법률로 금지할 필요가 있을까? 절도죄는 인간이 남의 물건을 훔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근친상간 타부는 인간에게 근친상간의 욕망이 강렬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프로이트는 추리한다.
<올드보이>에서 우진은 누나가 자살하자 전 인생을 복수에 투자한다. 이 복수 열망의 강도는 누나와 관계하고자 하는 근친상간적 욕망의 강도와 비례한다. 우진은 대수에 대한 복수를 완결한 후 자살한다. 그에게 이제 인생의 의미가 사라진 것이다. 영화는 근친상간의 유혹을 직접 묘사하지는 않지만, 우진이 복수에 인생을 거는 과정을 통하여 근친상간의 욕망이 얼마나 큰지 암시한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은 <올드보이>외에 <복수는 나의 것>과 <친절한 금자씨>를 포함한다. 그런데 <올드보이>는 다른 2 작품과 성격이 외형만 비슷하다. 그 두 작품이 인간의 복수와 공격성을 다루었다면, <올드보이>는 근친상간의 개념을 복수의 주제로 치장한 것이다. 근친상간은 논의하는 것조차 타부이기 때문이다.
[예술부산. 2024.10.Vol.232. 7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