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간의 소망은 이루어질 수 없는가?

-영화 <현기증>(Vertigo)과 라캉의 소망 이론

by 배학수

왜 인간의 소망은 이루어질 수 없는가?

-영화 <현기증>과 라캉의 소망 이론

“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놀았어요.” 어린 소녀가 아침 식탁에서 지난 밤 꿈 얘기를 들려준다. 이 아이는 어제 호수에서 뱃놀이를 즐기고 있었는데, 부모가 여행 일정 때문에 배에서 내리게 했다. 아이는 더 놀고 싶어서 울음을 터뜨렸고, 그 날 밤 꿈속에서 좌절된 욕망을 실현했다.


꿈의 본질이 이렇게 욕망의 성취(wish-fulfillment)라는 점을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제시한다. 꿈에 나타나는 욕망은 어린아이의 꿈처럼 단순하지 않고, 상징적이거나 위장되기도 한다. 권력의 욕망은 사업가의 꿈으로 드러나며, 사회적으로 금지된 성적 욕망은 사다리를 올라가는 꿈으로 표출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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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3 단계: 욕구, 청원, 소망

욕망은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이다. 라캉은 욕망을 프로이트 보다 자세히 토론한다. <세미나 Ⅳ: 대상 관계>에서 라캉은 욕망을 욕구(need), 청원(demand), 소망(desire)으로 구별하고 차이를 설명한다.


첫째, 욕구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생물학적 욕망이다. 음식이나 주거를 위한 욕망은 욕구의 대표적 사례이다. 욕구는 인간 발달의 초기 단계, 언어적 단계 이전에 등장한다. 유아는 욕구를 언어를 거치지 않고 직접 경험하며, 울거나 여타의 신체적 신호로 욕구를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이 단계에서 욕구는 까다롭지 않은데, 신체적 요구를 들어주면 충족되기 때문이다.


둘째, 청원은 욕구가 언어를 매개로 표현될 때 등장한다. 아이가 언어의 세계로 들어서면서 욕구는 타인을 향하여 언어를 통하여 표현된다. 예를 들어 아이는 목이 마를 때 “물”이라고 엄마에게 말한다. 타인을 향해 언어로 매개되는 욕구가 청원이다.


청원은 욕망에 새로운 차원을 부가한다. 아이가 어머니에게 물을 달라고 말할 때, 이 요구는 단지 물만 달라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을 원하는 측면도 있다. 만약 아이에게 물을 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육체적 갈증 뿐 아니라, 사랑의 갈증도 경험할 것이다. 이점은 어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친구에게 술을 사달라는 요구가 거절되면, 당신은 술 마시고 싶은 욕망(욕구)뿐 아니라 인정의 욕망(청원)도 좌절됨을 경험한다.


셋째, 소망은 욕구나 청원과 완전히 다른 성격의 욕망이다. 욕구나 청원이 충족된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욕망이 있는데, 이것이 소망이다. 소망은 이상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런 종류의 욕망은 결코 충족될 수 없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처럼 남자의 첫사랑이 어머니라고 가정하자. 이런 욕망은 실현될 수 없으므로, 남자는 어머니 대신 대체물을 찾아 나선다. 대체물은 아무리 훌륭해도 원형에 미치는 못하는 간격, 결여가 있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격을 메꾸고자 하는 욕망이 바로 라캉이 말하는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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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a’(objet petit a)

<세미나 XI: 정신 분석의 네 가지 기본 개념>에서 라캉은 소망의 작동 방식을 논구하면서, ‘대상 a’(objet petit a)의 개념을 도입한다. ‘대상 a’는 욕구나 청원의 대상이 아니라 소망의 대상이다. 빵은 먹을 수 있는 욕구의 대상이며, 칭찬은 타인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청원의 대상이다. 그러나 ‘대상 a’는 소망의 대상이다. 원래부터 소망은 이룰 수 없는 욕망이므로, ‘대상 a’ 는 결코 획득할 수 없다.


‘대상 a’는 여러 영역에 존재한다. 낭만적 관계에서 ‘대상 a’는 사귈 수 없는 대상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춘향이나 양귀비가 당신을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이상적 여자로 보고 그녀에게 열광한다고 하자. 이들은 당신에게 ‘대상 a’이다. 춘향은 소설 속 인물이고, 양귀비는 역사 속 인물이라 결코 당신이 만날 수 없다. 윤리적 이유 때문에 접근할 수 없는 여자나 남자도 ‘대상 a’이다. 아들에게 어머니, 그리고 딸에게 아버지는 ‘대상 a’이며, 친구의 아내, 처제, 형수도 ‘대상 a’가 될 수 있다. 소비 문화적 영역에서 최신형 제품은 ‘대상 a’이다. 최신 브랜드의 스마트 폰은 늘 바뀌므로 최신 브랜드를 우리는 소유할 수 없다. 최고의 직업도 ‘대상 a’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은 경쟁이 아주 심해 얻기도 불가능하지만, 얻는다하더라도 최고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바뀌므로 그 직업은 최고가 아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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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은 늘 살아있다.

대상을 얻으면 욕망을 사라진다. 밥을 먹으면 식욕은 없어지고, 인기를 얻으면 명예욕이 시들하게 된다. 그러나 소망의 대상 즉 ‘대상 a’는 획득할 수 없으므로 소망은 늘 존재한다. 카사노바는 이상적 파트너를 찾는다. 그가 어제 파티에서 만난 여자는 처음에는 ‘대상 a’처럼 보이지만, 만남을 이어갈수록 이상과 다소 떨어진 간격을 발견한다. 카사노바는 이 여자와 헤어지고 나서 다시 새로운 여자 속에서 이상형을 찾으려 한다. 이 여정은 결코 끝이 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소망의 충족을 포기하고 어느 정도 선에서 만족하려고 노력한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소망의 충족을 포기하지 않고 실망을 거듭하면서도 계속 이상적 대상 즉 ‘대상 a’를 추구한다. 가장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하고자 열망하는 남자, 자신에게 완벽하게 어울리는 직업을 찾는 사람, 궁극적 진리를 발견하려는 학자, 최고의 작품을 만들려는 예술가는 이런 부류의 인간이다.


대중은 욕망 중에 소망의 유형이 있음을 모른다. 그들은 욕구나 청원이 욕망의 전부인줄 알기 때문에, 욕망이 충족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행복은 욕망을 충족하고 나서 일어나는 만족의 정서이다. 반면 라캉은 소망이라는 특별한 종류의 욕망이 있음을 통찰한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으나 누구나 이상을 품고 있으며, 현실은 아무리 좋더라도 이상과는 간격이 있다. 라캉의 용어로는 현실에는 늘 결여가 존재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에도 결여가 존재하며, 아무리 정의로운 사회에서도 결여는 있다. 그래서 결코 만족은 없으며, 그 결여가 소망을 지속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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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욕망과 무의식의 욕망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은 인간의 정신을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눈다. 인간의 정신은 두 개의 기관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다. 의식과 무의식은 욕망의 작동 방식이 전혀 다르다. 라캉의 용어로 표현하면, 의식의 욕망은 욕구나 청원이며, 무의식의 욕망은 소망이다. 그래서 의식은 만족할 수 있지만, 무의식에게 만족은 불가능하다.


태어날 때 인간의 정신은 오로지 무의식이며 아직 의식과 무의식의 구별이 없다. 무의식의 시대는 곧 종식된다. 아이는 자라면서 사회적 질서를 받아들이며 정신에서 의식이 출현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어떤 행동을 금지하여, 그것을 위반하면 아이를 처벌한다. 아이는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욕망을 통제하며 부모의 명령을 준수한다. 학교와 사회도 개인의 욕망을 금지하고 제어한다. 사회적으로 승인된 욕망과 금지된 욕망을 구별하고, 사회의 명령에 따라 무의식의 욕망을 통제하는 정신이 바로 의식이다.


의식이 무의식을 억제하지만, 무의식의 힘은 사라지지 않는다. 무의식은 추운 겨울을 인내하며 푸름을 유지하는 인동초와 같다. 무의식은 ‘대상 a’를 현실에서 발견하려는 노력을 의식의 방해해도 불구하고 중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대상은 도달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이것을 향한 소망은 늘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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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현기증>(Vertigo)의 ‘대상 a’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Vertigo)은 라캉의 소망과 결여 개념을 잘 보여주는 텍스트이다. 특히 영화에서 주인공 스코티 퍼거슨(배우:제임스 스튜어트)에게 이 결여가 잘 구현되어 있다. 그는 고소 공포증 때문에 현직에서 물러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형사인데, 대학 친구 엘스터로부터 아내 메들린(배우:킴 노박)를 감시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매들린은 아름다우며 우아하다. 뿐만 아니라 기구한 인생을 살다가 26살에 자살한 증조할머니의 조종을 받고 있는 신비한 여자이다, 실제로 이것은 조작된 이미지이지만 스코티는 진짜라고 믿고 있다. 매들린을 따라 샌프란시스코의 곳곳을 다니는 과정에서, 그녀는 스코티에게 이상의 여인, ‘대상 a’가 된다. 매들린이 상징하는 미와 신비는 스코티에게 결여된 것이며, 그것을 채우면 자신이 완전한 전체가 될 것이라고 스코티는 확신한다.


매들린이 죽은 이후에도 스코티의 소망은 식지 않는다. 그는 매들린이 생전에 방문하던 장소를 찾아다니다가 그녀와 닮은 주디 바튼(배우: 킴 노박)과 우연히 마주친다. 사실 스코티가 만난 매들린과 주디 바튼은 동일 인물이다. 스코티의 대학 친구 엘스터는 실제 아내 매들린을 살해하기 위해 주디 바튼을 매들린처럼 위장했다. 그래서 스코티가 만난 매들린은 진짜가 아니라, 주디가 변장한 매들린이었던 것이다. 이 점을 모른 채 스코티는 주디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스코티: 당신과 얘기를 좀 나누고 싶소.

주디: 무슨 얘기죠?

스코티: 당신에 관한 이야기 말이요.

주디: 왜죠? 당신에게 내가 누군가를 떠올리기 때문인가요?

스코티는 주디의 재정적 생활을 지원하며 두 사람은 만남을 이어간다. 스코티는 주디가 매들린처럼 옷을 입게 하며, 매들린처럼 헤어 스타일을 하게하고, 집에 초대하여 예전에 매들린이 앉았던 자리에 앉게 하고, 매들린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한다. 그는 주디 속에서 매들린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드디어 주디는 스코티에게 소망의 대상, ‘대상 a’로 변모하고, 스코티는 인생 최고의 행복을 다시 경험한다.


그러나 행복은 일시적 사건이다. ‘대상 a’는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후 주디가 착용한 목걸이 때문에 스코티의 환상은 산산조각이 난다. 스코티는 다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대면한다. 설사 주디가 조심하여 그 목걸이를 하지 않았더라도 스코티는 그녀에게서 새로운 결함을 발견했을 것이다.


영화 <현기증>은 라캉 식의 소망을 영화의 방식으로 탐험하여, 어떻게 현실의 결여가 인간의 소망을 불러일으키고, 인간은 왜 결코 인생에서 만족할 수 없는지 설명한다. 스코티의 매들린에 대한 집착적 추구, 매들린의 비극적 죽음이 소망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사건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인간의 소망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예술부산. 2024.09. Vol. 231. 7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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