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이란 무엇인가?
나의 10자 평
#우리는 모두 틀릴 수 있다..
신념이란 무엇일까?
아일랜드의 역사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우리나라와 유사한 경험을 공유한다. 다른 점은 우리가 일본의 식민 지배를 35년 만에 청산했다면 아일랜드는 12세기부터 반복된 영국의 길고 긴 식민 지배의 기간을 가진다는 점이다.
식민 지배의 긴 역사만큼이나 아프고 괴로운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영화는 식민 지배의 역사 끄트머리, 1900년대의 독립운동을 하는 형제를 통해 아일랜드 독립이 가지는 여러 복잡했던 상황을 조명한다.
영리한 의대생으로 일자리가 없는 아일랜드를 떠나 영국으로 가서 일할 계획을 가진 데미안, 그리고 그의 형인 테디는 IRA(rish Republican Army아일랜드 공화국군)의 아일랜드 현지 수장으로 무장투쟁을 불사하는 행동파 캐릭터이다.
데미안은 의사가 되려고 영국으로 떠나는 여정에서 영국군의 폭압에 맞서는 기관사를 만나고 폭력에 무력하게 당하는 역무원을 보며 결국 아일랜드에 남기로 한다. 자신의 이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러한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아일랜드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지도.
그는 형과 함께 조직적인 투쟁을 벌이게 되고 그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다. 밀고자에 의해 영국군에 잡혀 죽음을 코앞에 두기도 하고 우여곡절을 넘어 다시 살 수 있게 되지만 다시 얻은 삶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영화는 세련된 액션이나 효과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 보기가 더 힘들었다. 정말 전쟁이 이런 거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의 일상을 파고든 죽음. 어이없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 힘없이 픽픽 쓰러지며 사랑하는 가족을 떠올릴 틈도 없는 사람들. 그들을 죽이는 이도 멋지게 훈련받고 현란한 기술을 구사하는 특공대가 아니었다. 그냥 우리와 같은 사람들. ‘이렇겐 못살겠다.’하고 무엇을 해야 하나 하고 모인 이들 혹은 나라의 부름에 응한 이들이었겠지.
데미안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의사가 되려 했던 과거가 무색하게 결국 사람을 죽여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결국 격심한 갈등 속 자신들을 밀고했던 농장주를 밀고자란 이유로 죽인다. 그 농장주의 집에서 일하던 어린 소년도 순순히 그들의 거취를 알려준 이유로 죽이게 된다. 데미안과 어린 시절을 공유하며 소년의 어머니가 해준 음식을 먹었던 추억마저 만들어준 19살의 겁에 질린 어린 소년. 그가 한 것이라곤 총칼을 든 어른들이 무서워서 아는 것을 말한 것일 뿐인데.
형이 고문받은 손톱을 걱정하며 정성껏 치료하다가 밀고자란 이유로(비록 고심은 했지만) 사람의 생명을 거두어버리는 모습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사람의 생명이 오고 가는 현실에서 형의 손가락이 걱정이 되는 현실은 전쟁의 아이러니와 역설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토록 우애 깊은 형제는 휴전이 되어 아일랜드가 드디어 독립에 가까워지는가 싶던 그때 1921년 영국-아일랜드 조약에 찬반이 격해지며 반대편에 서게 된다. 어떻게 온 여정인데 이렇게라도 독립에서 다시 멀어질 수 없다는 테디의 입장과 이런 식의 독립이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데미안. 둘은 둘도 없는 형제에서 반대의 극에 서게 된다.
신념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처럼 나라를 흔들고 우애마저 흔들어버린다. 그리고 남은 것은 데미안의 죽음. 영화의 마지막은 테디가 데미안의 죽음을 연인인 시네드에게 알리며 끝난다. 시네드는 19살 소년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다시는 테디를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린 지 어떻게 알 수 있지? 그걸 처음부터 누가 정했기에? ‘내가 옳다’로부터 전제한 수천 년의 전쟁에서 인간은 조금도 발전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지금은 무기의 과학화로 인해 ‘적’만 죽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죽게 되어 조심하는 형국이 다를 뿐.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믿음을 수호하기 위한 무수한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맞다한들 그것이 다른 이들이 죽어야 하는 일인가. 신념이란 그런 것이어야 하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전쟁에 참여했고 그들의 더 수많은 가족들은 명분도 없이 가족을 잃는 역사는 이제 그만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아직도 지구의 어느 곳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항상 틀릴 수 있다. 당신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