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는 이유는?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해하는 것
도대체 에베레스트는 왜 올라가는걸까? 이미 오른 사람들이 많아서 최초의 의미를 가지는 것도 아니고 산이라면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오를 수 있는데 굳이 이역만리 타국에 가서 그 산을 올라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예전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중에 하나였다. 지금은? 그런 것들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마다의 삶에서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들을 내멋대로 재단했던 건방짐을 많이 내려놓았달까. 인간이 각자의 삶에서 추구하는 많은 것들이 다르고 때로는 도무지 나의 기준으로 용납할 수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이해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인정이라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삶과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고 그것이 타인을 해하는 범위가 아니라면 옳고 그름을 나눌 수 있는 판결봉같은건 누구도 가질 수 없다. 타인의 삶을 인정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보니 나오미가 가고자 했던 운명같은 '북극권 12,000km 단독 개썰매 여행'은 그가 스스로 택한 운명이고 개척하고 성취한 꿈이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정했으며 꿈을 이룬 사람이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인가요?
책의 후반부에는 나오미가 굳이 이 힘든 일을 왜 하는지가 의아해 혼자 여행을 성공하면 돈을 많이 받느냐고 묻는 젊은이가 나온다. 돈은 커녕 사비를 들여 1975년 그 당시에 우리나라돈으로 수천만원에 해당하는 비용이 드는 여정이라는 것을 이해하려면 그 젊은이도 나처럼 나이를 더 먹어야 할 지 모르겠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잘하는 것.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일과 내가 돈을 쓰더라도 기어코 해야만 하는 일. 그 사이에서 방황하고 타협하는 나같은 속물은 과감히 한 쪽을 선택하지 못하고 늘 아슬아슬한 균형잡기를 하고 있지만 나오미는 용감히 하고 싶은일이 자신의 사명이고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단호히 규정한 것이다. 그야말로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선택한 것이다. 굳이 북극일 필요도, 그것이 12,000km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거리일 필요도, 단독일 필요도 없었다. 필요는 오로지 그의 내면에서 끓어 올랐다.
당신의 삶에서 돈을 받지 않고도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가 개썰매로 북극 12,000km 여행을 시작한 초반부터 끝까지 그가 안락하게 쉴 수 있었을 때는 중간 중간 베이스캠프처럼 이누이트들의 마을을 방문했을 때 뿐이다. 혼자 여행을 하는 매순간 그가 편히 하루를 보낸 날은 거의 없었다. 나는 영하로만 내려가도 추워서 죽을 것 같은데 무려 -60를 육박하는 말 그대로 살을 에는 추위. 그 추위는 최고의 위험요소가 아니라 디폴트 값이었다. 개들을 길들이고 관리하고 먹이고 이끌어야했다. 가고 있는 방향이 제대로인지 확인해야 했고, 때때로 사냥을 해야 했고 구더기가 끓는 고기도 감사히 먹어야 했다. 수시로 죽음과 만나야 했고 싸워서 이겨야 했다. 무사히 하루를 넘기고 아침이 되어 햇빛이 비치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힘든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깨달아가며 그럼에도 계속 가야하는 것, 그 이유를 분명히 알았다. 그리고 그 이유에 종지는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바뀌는 기후와 썰매길의 상황에 따라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두려움에 몸서리 치지만 나오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출발한다. 명확히 자신의 인생이 가야할 방향, 자신의 꿈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비티
수없이 많은 위기를 맞으면서도 살아서 돌아갈 의지를 불태우며 종내에 안나와 코츠뷰의 불빛을 마주하는 모습에 영화 그래비티에서 산드라 블록이 수많은 죽음의 순간을 뒤로하고 땅에 착지하는 모습이 겹쳤다. 산드라블록이 착지하는 과정에서 이누이트가 나왔던 것 같기도 해서 묘하게 오버랩 되는 그 장면에서 생에 대한 의지가 어떠해야 할지 생각해본다.
덧붙여.
이누이트들에게 받은 환대와 은혜를 못갚을 것을 걱정하는 나오미의 모습이 나온다. 이누이트의 마음에 이입해보면 그런 걱정은 크게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나오미가 이누이트들의 삶의 방식과 지혜를 존중해 개썰매를 모는 모습은 아마도 이누이트들에게 이렇게 느껴지지 않았으려나 싶다. 정작 이누이트 자신들은 스쿠터 썰매를 몰며 뒤로했던 전통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었고 나오미가 자신들의 역사를 색다른 방식으로 해석해가는 것에 감사하고 때로는 존경의 마음도 들고 말이다. 그들의 환대는 진실로 이누이트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것에 대한 형제 혹은 우정같은 것이었으리라.
그냥 놓아버리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은 순간에 자신을 인식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나오미의 모습에 영화 Gravity의 산드라 블록을 겹쳐본다.
https://youtu.be/BzPYvrGWJgA?si=rrbiIUfsiaM3gyj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