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입을 준비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공부보다 더 힘들었던 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들이었다.
누가 대신 답해줄 수 없는 질문들.
그래서 더 불안했던 질문들.
이 글은
편입을 이미 끝낸 사람으로서,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편입을 선택한다고 해서
정답이 보장되는 건 아니었다.
신입학처럼 익숙한 길도 아니고,
주변에 편입을 해본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괜히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나만 뒤처진 건 아닐까?’
같은 나이의 친구들은 이미 졸업을 하거나
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에서 편입을 준비하는 나는
어딘가 멈춰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앞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감정이 더 크게 다가왔다.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편입은 단기간에 끝나는 일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 없이
시간만 흘러가는 구간을 견뎌야 한다.
합격 발표 전까지는
아무도 결과를 장담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무서웠던 건
실패보다도
중간에 포기하는 나 자신이었다.
편입을 마치고 나서야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 선택이 맞았는지는,
시작할 때가 아니라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편입은 처음부터 확신을 갖고
시작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부분은
망설이면서, 의심하면서, 불안해하면서 시작한다.
그럼에도 끝까지 가본 사람만이
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뒤처진 게 아니라,
속도를 다시 정한 것뿐이었다.
편입을 하면서 깨달은 건
인생에는 정해진 속도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남들과 다른 시기에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인데
스스로를 너무 쉽게 낙오자로 만들어왔다.
편입은 늦어진 인생이 아니라
다시 조정된 인생에 가까웠다.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의지가 아니라 구조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대신
해야 할 일이 명확했고,
하루
다시 돌아갈 선택지가 없었다.
편입은 의지로 버티는 과정이 아니라
환경과 구조를 만들어 버티는 과정이었다.
편입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선택은 아니다.
편입을 ‘도피’로 생각하는 사람.
지금의 상황이 싫어서
아무 생각 없이 도망치듯 선택한다면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버겁다.
편입은 쉬운 길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책임을 요구하는 길이다.
과정을 견딜 각오가 없는 사람.
결과만 보고 시작한다면
중간에 흔들리기 쉽다.
합격보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관리하는 일이다.
남의 기준으로 결정을 내리는 사람.
‘남들이 좋다니까’,
‘이게 더 빨라 보이니까’라는 이유만으로는
끝까지 가기 어렵다.
편입은 결국
자기 기준으로 버텨야 하는 선택이다.
편입은 인생을 바꿔주는 마법 같은 선택은 아니다.
다만,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 기회를 잡을지 말지는
각자의 몫이다.
다만 하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편입을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멈춰 있지 않다는 증거라는 것.
그 고민의 끝이
어떤 선택이든,
그 선택을 끝까지 가져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편입이라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미 그 길을 지나와 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바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