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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들deux맘 Jun 27. 2024

비싼 밴쿠버 땅에서 집주인 체험하기

평생 있을까 말까 한 기회의 집-정원 딸린 단독주택

아버님은 늘 말씀하신다.

"목회자는 그저 죽 한 그릇 먹고살면서도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너무나 맞는 말씀이다.

목회자가 아니더라도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남편과 나는 내 아들들에게 늘 감사를 가르친다.


죽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하고

그 죽을 맛볼 수 있는 건강한 몸을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한다.

오늘 하루도 새 생명을 주셔서 건강한 몸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난 것에 감사해야 하고

그렇게 귀한 하루를 살아 숨 쉬며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렇게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의 훈련을 하면

열심히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열정은 덤으로 따라온다.

대충 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음을 경험하게 된다.  


목회자의 삶이 그러해야 하듯 우리는 물질에 자유롭다.

한국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하루를 벌어 귀한 하루를 살아낸다.

주님 은혜다.


그런 우리에게 평생 있을까 말까 한 기회가 생겼다.

결혼 생활 10년 동안

내 집 마련의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기에

부르기도 상당히 어색한 그 단어


집주인.


우리 집은 반지하이긴 하지만 1층에 위치해 있는 walkout basement이다.

매 달 렌트비 2000불을 내고

10억짜리 이 집에 단독으로 산다.

집주인은 중국에 살기 때문에 우리는 이 큰 집 전체를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

그야말로 집주인'대행'이다.

사실 집 관련 이런저런 복잡한 문제는 없다.

이 마저도 집만 관리하는 매니저가 있기 때문에 걱정할 일이 없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근처에서 집을 관리하며 일을 하는 매니저가 한걸음에 달려와서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주인이 살지 않기 때문에 특약사항으로 명시되어 있는

눈 치우기 , 정원 관리하기

이 정도이다.

즉 다시 말해

우리는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우리는 이 비싼 밴쿠버땅에서 집주인 체험을 하기 시작했다.


ISFP인 나는 집순이다.

어렸을 때도 지금도 나는 여전히 집 밖은 한없이 귀찮기만 하다.

약속이 생겼다가 취소되면 너무나 행복하고

너를 너무 좋아하지만 난 그저 혼자 있고만 싶은

대표적인 집순이 MBTI를 가졌다.


그런 나에게 단독 정원은 늘 로망이다.

어렸을 때 3층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바쁜 부모님 대신 할아버지와 옥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친구들을 불러 신나게 물놀이도 하고 줄넘기도 했다.

그리고 방울토마토를 길러 처음 달린 토마토를 가방도 아닌

손에 꼭 쥐고 학교에 갔다.

지금도 잊지 못할 선생님.

김선자선생님께 그 방울토마토 2개를 드리기 위해서.


그런 단독정원의 로망이 실현되는 순간이 왔다.


이사 올 당시에는 온통 눈으로 뒤 덮인 정원을 느껴 볼 겨를이 없었지만 

눈이 녹고 봄이 다가오니

우리의 마음도 봄처럼 산뜻해져 갔다.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4월 말

정원에 올라갔다.

내 앞에 우뚝 서있는 이름 모를 나무와 깨끗한 하늘을 보며

'아버지의 잠꼬대'라는 글을 써 내려갔다.

그때 쓴 그 글로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 당시 내 앞에 큼지막한 나무에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는데

얼마나 예쁜지

평생 단 한 번도 꽃 사진을 찍어 본 적이 없는 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들었다.

꽃이 피고

그리고 지고

열매가 열리니 알게 되었다.

사과나무였다.


하얗게 핀  사과나무 꽃
꽃이 지고 열매가 열렸다. 너 사과나무였구나!


집주인의 대형 BBQ그릴도 우리의 행복에 큰 몫을 해냈다.

우리는 서둘러 새 고기판을 구입했고 통찰력 있는 남편은 고기판 청소브러시까지 구입했다.

완벽했다.


나의 로망인 단독정원과

남자들의 로망인 대형그릴까지

우리는 여한이 없었지만 우리만의 정원의 대미를 장식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캐나다의 광활한 자연은 그저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

그러한 자연을 보기 위하여 전 세계에서 몰려든다.

그중 하나 록키산맥


작년  캐나다를 방문한 시댁식구들과 로키산맥을 방문했다.

웅장한 자연을 바라보기만 해도

묵힌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


하지만 이러한 로키산맥의 웅장함을 대놓고 방해하는 것이 있으니

놀랍게도 위대한 '자연' 만들어낸 산불이다.

아이러니하다.


물론 방치된 모닥불이나, 버려진 담배꽁초가 원인일 때도 있지만 극히 드물다.

해마다 나오는 뉴스에는

 

지구 온난화로 인 덥고 건조해진 환경

그것이 산불의 원인이라 분석한다.

또한 강한 바람에 의해 나무들이 쓰러져 노후된 송전선과 충돌하여 대규모 화재로 이어지기도 한다.


작년 여름

캐나다 동부에서 발생한 화재로 한국면적의 40%에 해당하는 면적이 재로 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을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이 걱정하듯

캐나다의 산불도 캐나다 주민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나 역시도 작년 퇴근길에 집에 오는 길에 남편에게 카톡을 했다.  

"여보 오늘 공기가 좀 다른데?"

"산불이 난 것 같아."

"아 그렇구나."


우리 부부가 보이는 산불에 대한 반응이 대부분의 캐나다 주민들 반응이다.

산불이 난들 우리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

심지어 산불이 나도 소방관이 출동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광활한 자연 앞에 한낱 미물 같은 존재인 우리는 그저 타오르는 산불을 바라볼 뿐이다.

우스갯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캐나다 동부에 불이 나면 미국의 압박으로 소방관이 출동은 한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캐나다정부에서는 fire ban을 자주 발효한다.

하지만 fire ban과 하등 상관없이 불멍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fire fit!

원리는 간단하다. 

장작으로 태우는 것이 아니라 가스를 충전하여 밸브를 연다.

다시 말해 가스레인지로 불멍을 한다.


뇌과학자들도 인정한다는 불멍

상상력이 극대화되고

손쉽게 깊은 자기 성찰이 가능한 그것.

우리는 캐나다에 오기 전부터 불멍을 자주 했다.

바다에서

시댁의 시골집에서

캠핑도구 하나 없이 우리는 늘 불멍을 즐겼다.


1년 내내 서늘한 이곳 밴쿠버에서

1년 내내 불멍을 즐길 생각을 하니 너무나 설렜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완벽한 우리 집 정원을 더 완벽하게 만들어 줄  파이어핏에 관한 고민을 시작했다.

중고로 살 것인가

새것으로 구입할 것인가

심지어 헬로밴에는 대여한다는 글도 보였다.

2년 후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우리는

모든 매매활동에 신중을 기할수 밖에 없다.


고민도 잠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둘의 마음에 합한 파이어핏을 구매하였다.

쿠팡 못지않 빠른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다음날 오후에 파이어핏이 도착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고

우리의 마음가짐 또한 완벽했다.


감사로 무장된 우리 부부와

늘, 틈나는 대로 감사교육을 받아온 우리 아들들

그렇게 우리 넷은 '정원 하나'로 감사가 넘치는 기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파트타임으로 식품회사 배송일을 하는 남편 덕분에

우리가 좋아하는 족발 3종세트와 감자탕

그리고 양념, 간장게장을 직원가로 풍성히 먹는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이 음식들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정원으로 들고 올라간다.

맛있는 음식들을 예쁘게 세팅하고 사진을 찍는다.

맑게 갠 하늘과 주렁주렁 열린 사과들을 보며 밥을 먹는다.


평범하기 그지없을 평일의 저녁이

너무나 근사한 특별한 순간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거의 1년 내내 우리의 저녁을 따뜻하게 감싸줄

파이어핏을 세팅한다.


파이어핏을 둘러싸고 각자의 캠핑의자를 편다.

각자가 알아서 골라온 후식을 먹으며 하루의 일과를 이야기하거나 다가올 미래에 대하여 얘기한다.  

나는 따뜻한 우유에 믹스커피를 타 달콤함의 극치를 느끼며 아이들과 남편은 신나게 총싸움 놀이를 한다.

보드게임과 끝말잇기도 우리 가족을 하나로 뭉치게 한다.

끝말잇기를 할 때면 아무 말이나 막 하던 막둥이가

이제는 다 커서 제법 잘한다.

벌칙으로 엉덩이로 이름 쓰기, 춤추기 벌칙도 마다하지 않으며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이유는

이 집에 우리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도 이제 즐길 줄 아는 두 아들을 은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다.

텐트를 펴고 드러누워 책도 읽는다.

아들들은 엄마와 침대에 드러누워 껴안고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는데

특별한 이름까지 만들었다.

'뒹굴'놀이

"엄마 나랑 5분만 '뒹굴'하자."

우리의 '뒹굴'은 정원에서도 계속된다.

이불과 베개를 가져와 하늘을 바라보며 아이들과 마음껏 '뒹굴'을 한다.

그 하늘을 바라보며 또 한 번 감동한다.


우리 집 정원 한가운데에는 텃밭이 있다.

그곳에 우리는 우리만의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요리의 완성은 '파'라 외치는 남편과 장남

요리하고 남은 파뿌리를 모으고 또 모은다.

그리고 텃밭 중앙에 정성껏 심는다.

얼마 전 김치볶음밥을 해줬는데 큰 아이가 조용히 가위를 들고 정원에 올라가 파를 잘라왔다.

알아서 파 데코를 하고 맛있게 먹는 모습이 참으로 친환경적이다.

내친김에 깻잎, 상추, 브로콜리, 방울토마토, 큰 토마토, 딸기 그리고 옥수수까지 심었다.

넓은 가라지도 맘껏 쓰며 세차도 즐긴다.

평범한 것만큼 귀하고 감사한 것은 없다.

신나게 뛰어놀 수 있는 건강을 주신 것이

하루 세끼와 간식을 먹고 쌓여있는 설거지거리를 보는 것이

각자에게 주어진 귀한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고

더러워진 옷을 세탁기로 넣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이자 아내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남편은 늘 내게 묻는다.

"여보 행복해?"

감정표현에 충실한 F임에도 난 행복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냥 피식 웃고 만다.

어린 시절의 나는 풍족하게 살았지만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마도 배울 필요가 없었나 보다.

굳이 행복과 감사를 표현하지 않아도 언제나 나의 욕구는 즉각 채워지곤 했으니 말이다.


"난 행복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이러한 글귀들은 나에겐 마치 광고문구 같다.

영화나 드라마에는 이런 대사들이 수없이 반복되던데

내게는 여전히 낯설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함에도

살아있음 자체가 너무나 감사함에도

그 어떤 것보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함에도

말하지 못한다.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변명을 하며 철벽방어를 해댄다.

표현하는 법을 모르니 표현하지 못하고

표현해 본 적이 없으니 표현하지 못한다.


이사를 온 후 우리 가족 모두는 집에 들어갈 때마다

집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엄마 진짜 우리 집 좋지 않아?"

"말해 뭐 해! 진짜 우리 집 최고야!"

심지어 집을 의인화시키기까지 이른다.  

"우리 집아, 잘 있었니?"

"우리 집, 네가 최고야!"

"조용해! 우리 집이 들을라!"

"우리 집아, 교회 다녀올게. 잘 지키고 있어!"


이사 온 지 5개월이 넘어가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 집 최고야!"를 외친다.


목조주택이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간소음이 '완벽하게' 없는 집을 찾는 것이 불가능한 이곳 밴쿠버땅에서

개미기어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기가 막힌 집을 찾았다.


폭등하는 렌트비와 집값으로 캐나다 정부도 두 손 두 발 다 든 밴쿠버땅에서  

시세보다 저렴한 렌트비를 내고 단독으로 즐기며 산다.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되는

약서상의 주인'대행'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두 번 세 번 생각해도 기가 찰 일이다.

그러니 표현하기로 했다.


"우리 가족은 정말 행복합니다!"

"이런 집에 살게 해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다시 오지 않을 천금 같은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그러니 마음껏 즐기겠습니다!"


감사할 일을 찾자.

조금만 묵상하면

세상에는 감사할 일이 천지빼까리다.

그리고 표현하자.

내 감사와 감격이 충분히 전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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