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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들deux맘 Jul 04. 2024

FAQ- 여보, 내일은 뭐 먹지?

FAQ- Frequently Asked Questions의 약자로 자주 묻는 질문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물어볼법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미리 정리해 놓은 문서나 게시판을 의미한다.


밴쿠버에서의 삶이 시작된 이후, 남편과 내가 한국에서보다 더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첫 번째는 "여보 오늘 날씨가 어때?"

변화무쌍한 날씨를 자랑하는 이곳.

우린 늘 날씨가 궁금하다.

 "여보 오늘도 비가 오나?" 

늘 일기예보를 묵상하며 내심 비가 안 오기를 바라보지만 역시나 오늘도 비다.

여름 두 달 빼고는 늘 비가 오는 레인쿠버답다.

심지어 올해 여름은 유난히도 서늘하고 비가 내린다.

 밴쿠버의 여름에도 비가 오는 건 반칙인데 어쩔 수가 없다.


두 번째는 우리들의 일용한 양식- 메뉴이야기다.

저녁을 먹으며 "여보 우리 내일은 뭐 먹지?"를 물으며 아침을 먹으며 "여보 우리 점심은 뭐 먹지?"를 묻는다.

한참 성장기에 있는 초등학교 1학년과 3학년 두 아들들은 늘 메뉴가 궁금하다.

아장아장 걸음마 시절에는 이틀 연속 같은 국을 줘도 맛있게 먹던 아이들

이제는 매 끼 식사시간 새로운 메뉴를 학수고대한다.


밴쿠버는 도시락문화이다.

데이케어부터 은퇴할 때까지 밴쿠버의 모든 사람들은 도시락을 싼다.

한국의 밥, 국, 반찬 통이 따로 있는 보온도시락은 드물다.

로컬사람들의 도시락은 간단하다.

간단히 잼을 바른 샌드위치나 식은 피자 그리고 야채스틱과 과일이 전부다.

그리고 그레놀라바는 늘 빠지지 않는 간식메뉴.

기저귀 차는 시절부터 은퇴하기 전까지 도시락을 싸는 이유는 비싼 물가와 팁 문화 때문이다.


팁 문화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결국에는 본인 몫이다.

카드 단말기에는 NO TIP부터 25프로까지 다양한 초이스가 있고 TIP을 굳이 왜 줘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면 당당히 NO TIP을 누르면 된다. 눈치 볼 필요 없다.  보통 서빙을 받는 레스토랑에서는 10%-15%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 내가 만난 서버들은 보통 자리 안내부터 시작해 식사 중간에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물어봐준다. 아이가 포크를 떨어트리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포크를 다시 가져다주기도 한다. 따뜻하고 정감 있어 팁을 주지 말래도 주고 싶다.


미국생활을 30년 이상 하신 외할머니가 큰 아이 돌잔치 때문에 한국에 입국하신 적이 있다.

함께 갈비를 먹으러 갔는데 식당에서 서빙하시는 분이 큰 아이에게 너무 잘생겼다며 서빙을 하는 내내 연신 아이를 따뜻하게 바라보셨다.

할머니는 그분과 함께 웃으시며 자연스럽게 지갑을 여셨고 직원에게 팁을 주셨다. 팁 문화가 익숙지 않은 나는 내 아이를 칭찬해 주는 분에게 그저 감사하다는 말 밖에 하지 않았을 텐데 팁문화에 수십 년을 살아온 할머니는 달랐다. 그렇게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었고 우리 모두 행복하게 식당을 나왔다.


이곳 푸드코트에서는 키오스크로 내가 직접 주문하고 번호가 뜨면 내가 직접 받으러 간다.

나는 푸드코트에서만큼은  팁을 내지 않는다.

각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되 적정선에서 지켜가며 내 삶의 방식을 찾아가면 될 일이다.


   

나는 이곳에서 운전을 하지 않고 또 풀타임으로 일하기 때문에 우리 집 식료품 구매 담당은 남편이다.

장 봐 온 음식들을 정리하며 가끔 가격을 물어보기는 하지만 자주 먹는 고기나 과일이 한국보다 싼 편이라 밴쿠버 물가에 관하여 크게 비관적이지는 않다.

한국에서 3만 원 정도 하는 큰 수박이 여기서는 10불 내외다.

한국에서는 금값인 블루베리도 이곳에서는 저렴한 편이다. 심지어 여름이 되면 박스에 10불 주고 블루베리를 질리도록 먹을 있다.


박사과정 공부 중인 남편 덕분에 아이들은 무상교육을 받기는 하지만  남편과 내가 풀타임으로 일하지 않는 이상 밴쿠버에서 4인가족이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밴쿠버에 처음 왔을 때는 아이들에게 한인마트의 존재자체를 알려주지 않았다. 6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아이들을 한인마트에 데려갔을 때의 큰 아이가 동생에게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 노아야! 빨리 카트 가져와! 먹고 싶은 거 빨리 골라! 여기는 자주 못 오니까 먹고 싶은 거 지금 다 골라야 해!"

동생아 다 골라 기회야! 외치는 형아

우리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감자 빼고 다 비싸다는 이 밴쿠버에서 4년을 살아남으려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가장 만만한 한국인의 한 끼

나는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참치김밥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소시지야채김밥.

도시락메뉴로도 간단한 피크닉 식사로도 최고인 한국인의 소울푸드다.

남편은 내가 만든 김밥을 먹을 때면 늘 입이 귀에 걸린다.

"여보, 진짜 맛있다!"

남편의 진심이 느껴져 나는 오늘도 내일도 즐겁게 김밥을 만다.

버님은 내가 만든 김밥을 맛보시고 '세계적인 김밥'이라며 칭찬하셨다.


우리는 큰 아이가 좋아하는 사골국을 직접 우리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늘 친정엄마 찬스를 누렸던 사골국.

급할 때는 세일가로 마트에 진열된 있는 레토르트 사골국을 사곤 했다.

하지만 이곳 밴쿠버에서는 할머니 손맛이나 대기업 맛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손맛을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했다.  

사골은 여러 한인마트를 비교 대조해 본 결과 가장 싸게 파는 곳에서 구입했다.

한팩에 5불짜리 두 개를 사서 끓였다.

한 번은 우족도 같이 우렸는데 깊은 맛은 있었지만 두 번은 사치였다.

한 번으로 족했다.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순대와 돼지고기를 넣어 순댓국을 만들었다.

사골국이 질릴 때쯤 코스트코 갈빗대로 갈비탕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에게 '밴쿠버 국밥장인'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어릴때 부모님과 자주 먹던 추억을 떠올리게 했던 정말 맛있었던 남편표 갈비탕

  

남편과 나는 "밴쿠버에 오면 영어가 아닌 요리실력이 는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기 시작했다.

지난 9년 결혼생활동안 안 해봤던 음식도 과감하게 요리하기 시작했다.

요알못인 내가 뜬금없이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고 바쁜 사역으로 한국에서는 거의 요리를 한 적이 없는 남편도 가족에게 당당히 손맛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 번은 내가 일하던 병원의 당뇨환자분께서

의사 선생님께 감사하다며 온 직원을 위한 선물을 가져오셨다.

엄청난 양의 한국산 말린 고사리였다.

병원에서 음식이나 간식선물이 들어오면 감사하게도 늘 내 몫이었다.

성장기 어린이가 둘이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늘 양손 무섭게 퇴근하곤 했다.

엄청난 양의 고사리를 주인집과 좀 나눈 후 나는 남은 고사리로 나물이나 무쳐볼까 생각했지만

하지만 '밴쿠버 국밥장인' 남편은 달랐다.

요리의 완성은 '파'라 외치는 남편은 참신하게도 육개장을 떠올렸다.

주저하지 않고 백종원 육개장 레시피를 검색하여 기가 막힌 육개장을 요리해 식탁에 내었다.

아이들과 나는 감탄했다.

 두 아들이 반한 아빠표 육개장


아이들도 백종원이라는 이름이 점점 친숙해지기 시작했고 아빠가 조금이라도 주저할 때는 "아빠 백종원 레시피 찾아볼까?"라 말하며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밴쿠버 입국 전에는 식비를 아낄 겸 가장 로컬적인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다짐했다.

캐나다의 대표음식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식비를 아끼는 방법만을 찾고자 했다.

대표적인 이민국가 캐나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이곳에는 각 나라의 다양한 음식이 있다.

하지만 전 세계가 공통으로 좋아하고 호불호가 없는 음식은 바로 햄버거가 아닐까?

아이들 앞에서 자주 먹은 적도 언급한 적도 없지만 아이들은 신기할 정도로 햄버거를 좋아한다.

그중의 제일은 A&W

그곳에서 파는 루트비어를 보고 큰 아이는 몇 달간 고심에 빠졌다.  비어는 비어인데 비어가 아니라는 아이러니가 큰 아이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고 이제는 즐기기까지 한다.

루트비어는 식물의 뿌리로 만든 갈색빛의 탄산음료이다.  물파스맛이 나는 루트비어가 왜 인기 있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우리가 아는 그 비어가 아니라니 못 마시게 할 이유가 없다.

루트비어를 손에들고 신난 큰 아들


이곳에서의 햄버거의 가격은 그 위상과 비례한다.

세트 가격이 평균 최소 13불

집으로 각 종 햄버거 할인 쿠폰이 배달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비싸게 느껴진다. 코스트코에서 간 소고기를 사서 패티를 만들고 버섯과 양파도 듬뿍 넣어 홈메이드 햄버거를 만들었다.

홈메이드 버거로 아이들의 환심을 사 보기도 하지만 역부족이다.

얼마 전 가본 five guys의 햄버거

한 입 맛본 나와 남편은 깜짝 놀랐다.

패티의 수준이나 버섯과 양파로 구성된 부재료 심지어 소스까지 내가 집에서 만들던 햄버거와 흡사했다.

남편은 내가 만들어준 햄버거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내 뱃속에서 나왔지만 식성이 다른 아들 둘

큰아이는 식빵에 버터를 발라야 하고 둘째는 딸기잼이다.

큰아이는 삶은 계란에 소금과 참기름 둘째는 계란프라이에 케첩이다.

큰 아이는 생선가스 둘째는 돈가스


돈가스나 생선가스만큼 만들기 쉬운 음식은 없다.

밀계빵(밀가루-계란-빵가루) 순서만 기억하면 끝이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밀계빵을 외치며 돈가스, 생선가스를 만들었다. 지인 목사님이 맛보시고 홈메이드 돈가스라는 말에 놀라셨던 기억도 있다.

생선가스만 찾던 큰 아이가 어느 날 돈가스를 더 자주 먹게 된 계기가 있는데  에어프라이어가 아닌 기름에 튀긴 이후였다.

"튀긴 건 다 맛있어! 신발도 튀긴 건 맛있다잖아!"라는 외할머니의 농담을 기억하며 우리는 헬로밴에 튀김기가 중고로 나오기를 기다렸다.

적당한 시기에 10불을 주고 튀김기를 구입하였고 우리는 손쉽고 신나게 돈가스 감튀 그리고 치킨을 튀기기 시작했다.

평균 36불을 지출하며 눈물을 머금으며 치킨을 시켜주곤 했는데 이제는 치킨을 먹고 싶다는 말을 듣고도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언제든 먹고 싶으면 깨끗한 기름으로 산뜻하게 튀겨낸다.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기름을 보는 것 만으로 우리 넷의 몸에는 강력한 도파민이 분비되는 듯하다.

가끔은 에어프라이어로 담백하게 요리하는 교촌스타일의 간장치킨도 즐긴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우리는 10불짜리 튀김기로 우리만의 또 다른 행복을 찾았다.

엄마표 치킨!! 두 아들과 남편이 극찬하다

빵을 많이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가족 일원의 생일이 다가오면 케이크 고르는 재미로 빵집에 가는 것이 즐거웠다.

특히 누군가의 병문안을 갈 때 이것저것 빵을 골라 잔뜩 사다 주는 기쁨도 즐겼고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20대 시절

늘 손녀를 기다리던 할아버지를 위해 집 앞 빵집에서 할아버지가 좋아할 만한 빵을 골랐다.

그리고 주무시는 할아버지 방 문 앞에 놓곤 했다.  

그것이 할아버지와 나의 낙이었다.


직장을 옮기고 조금은 많이 여유시간이 생기게  나는

우연한 기회에 베이킹을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유튜브를 검색했다.

평범한 아저씨의 하하! 웃음소리와 "정말 간단하죠? 누구나 만들 수 있어요!"라는 유투버 '호주가이버'의 응원에 힘입어 베이킹을 시작했다.

호기로운 내 생애 첫 베이킹은 다름 아닌 꽈배기와 크로와상.

만들고 나니 모두들 말한다.

"그 어려운 빵을 초보가 만든다고요?"

기름에 튀긴 꽈배기 그리고 엄청난 버터가 들어가는 크로와상이 실패할리 없다고 생각했다.

간파했고 성공했다.  

그 후로 매주 토요일 새벽 4시가 되면 Gislason(우리 동네이름) home bakery를 연다.

수많은 빵을 만들어줬지만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소시지빵이다.

가공식품을 먹인다는 죄책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소시지를 두 번 삶아 염분 및 좋지 않은 성분들을 최대한 빼내고 양파와 옥수수를 아낌없이 올린다.  

교회 집사님께 선물했더니 너무 맛있다며 함께 소시지빵 사업을 하자고 하신다.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빵은 피자와 티라미수.

"여보 피자 4판 5판 만들어줘. 나 피자 엄청 좋아해!"흥분하며 말하는 남편의 한마디에 나는 동시에 피자 3판까지 만들어 굽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름도 어려운 '마스카포네' 치즈를 남편에게 늘 상기시키며 사 오라 부탁한다.

그리고 티라미수처럼 만들기 간단한 케이크도 없다 외친다.

충 만들어도 맛있는 티라미수케이크

대충 만들어 대충 손에 잡히는 반찬통에 만들어 서빙한다.

극찬이 들려온다.

친한 교회 청년에게 선물했더니 카톡이 왔다.

"사모님 뜬금없지만 진짜 티라미수 케이크 맛있어서 카톡 드려요. 완전 취저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4.2kg 우량아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키와 몸무게로는 늘 선두를 달렸다.

중3 연합고사가 끝난 후 친구들과 시작한 원푸드 다이어트를 시작으로 난 평생 다이어트 중이다.

지금도 나는 평생 그래놀라바, 계란, 옥수수, 과일 이 정도만 먹고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다르다.

부모가 돼 보니 부모님의 마음을  알 것 같다.

혼자 자취하며 직장 생활할 때 엄마는 영양가 넘치는 여러 가지 반찬들로  늘 냉장고를 채워주곤 했다.

혼자서는 다 먹지도 못할 반찬들을 보며 엄마의 넘치는 사랑을 느꼈다.

첫째는 내 유전자를 닮아 하체가 튼실하며 조금만 먹어도 찌는 체질이다.

둘째는 아빠 체질을 닮아 하체가 늘씬하고 많이 먹어도 찌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남편과 나에게 행복한 가정을 선물해 주시고 건강한 유전자의 아들 둘을 맡기셨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하루도 서로에게 묻는다.

"여보 오늘은 뭐 먹지?"

"소중한 이들과 건강하고 소중한 한 끼"

이 보다 행복한 것이 세상에 있을까 싶다.

더 맛있고 더 건강한 음식을 남편과 그리고 두 아들들과

아주 오랜 시간 함께 먹고 싶다.


 I am what I eat.

이 문장을 접한 지 수십 년이 넘었지만 마음에 와닿게 해석하는 문장은 보지 못했다.

간단히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다. 먹는 게 중요하다"라는 건강의 관점으로만 해석되기에는

저 다섯 글자로 이루어진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 아쉽다.


내가 무엇을 먹는지

누구와 함께 어디서 먹는지

먹으면서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혹은 어떤 느낌이었는지

먹고 난 후에는 또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큰 결심은 없었는지

먹는 행위와 관련된 여러 가지 경험들이 켜켜이 쌓여 '나'라는 사람이 완성된다.

한 사람의 길고 긴 인생이 담긴 너무나 중요한 '먹는 행위'

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한 의미가 들어가야 진짜 저 문장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나 역시도 감히 해석하지 못한다.


남편과 나의 평생의 기도제목일 우리 둘째

지금은 김치찌개에 밥 두 그릇은 기본인 아이지

2살 되던 무렵 씹고 삼키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그 당시 다니던 교회어린이집은 식사교육이 곧 인성교육이다 외치는 곳이었고 부모인 우리도 동의했다.

가끔 tv에서 씹고 삼키지 않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는데 그저 편식을 한다고만 생각했다.

시간이 갈수록 둘째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해져 갔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기나긴 여정에 끝이 보였고 어느 순간 아이는 거짓말처럼 잘 먹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지는 당시도 지금도 알지 못한다.

가끔은 아이에게 질문을 한다.

"노아야, 어렸을 때 대체 왜 그랬어? 왜 씹기만 하고 넘기지 않아서 엄마도 어린이집 선생님도 힘들게 했어?"

노아의 답은 간단하다.

"응, 그냥 좀 질겼어."

엄마로서의 내적폭풍성장을 감행케 했던 그 순간들이 떠올라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아이들과 음식을 먹으며 대화한다.

"손 씻었니?"

"식사기도 했어?"

"똑바로 좀 앉아서 먹을래?"

전형적인 잔소리부터

"우리 요한이, 노아는 커서 뭐 될 거야?"

"아빠처럼 너희들도 크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요리해 줄 거야?"

찬란할 너희들의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질문까지

우리의 대화소재는 깊고 다양하다.

시간이 참 귀하고 소중하다.

그리고 우리는 잊지 않고 서로에게 묻는다.


여보,

얘들아,

아빠, 엄마

리 내일은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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