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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아니라 책임이 안전을 지킨다”

반복된 재해, 반복되는 무책임

“국가의 존재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입니다.”


지난 6월 5일, 이재명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안전치안점검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을 비롯해 주요 부처 차관, 경찰청장 직무대행, 대통령비서실장까지 총출동한 이 회의는 장마를 앞두고 범정부적 재난 대비에 나선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그러나 한 달 반이 지난 뒤, 오산에서는 옹벽이 무너져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그것도, 두 차례나 위험신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고는 전형적인 ‘예고된 인재’였다. 사고 하루 전 민원인은 “빗물 침투 시 붕괴 우려가 있다”며 사진과 함께 구체적인 지점을 지목했고, 사고 당일에도 경찰이 지반 침하를 오산시에 통보했다. 그러나 오산시는 현장 확인 후 ‘특이사항 없음’으로 결론을 내렸다. 몇 시간 후, 구조물은 무너졌고 차량 한 대가 매몰됐다.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국민 안전 최우선 원칙’은 현장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이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022년 이태원 참사,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 모두 사전에 예방이 가능했음에도 관심 부족과 책임 회피로 재난이 반복되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성남시장 재직 당시 “같은 지점에서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되는 것을 보고, 단지 관심과 대비가 부족했을 뿐이라는 사실에 분노했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바로 책임의 실종, 의지의 단절, 공직자의 무감각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강한 지시를 해도, 그것이 실행되지 않는다면 국가 리더십의 권위는 바닥에 떨어진다. 단체장은 시민 생명을 지키는 자리에 서 있는가, 아니면 선거용 리더의 자리를 탐하는가. 출마는 했지만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태도가 공직사회의 만성병이 되고 있다. 경고가 들어와도 “예산이 없다”, “문제가 없었다”, “보고 받지 못했다”는 말로 일관된다면, 누구도 구조되지 못할 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수차례 칼럼을 통해 강조해 왔다.

‘재난은 행정의 민낯을 드러내는 시험대’이며, ‘안전은 시스템보다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누차 지적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위기관리 체계는 시스템보다 책임자의 태도에 더 큰 허점이 있다. 경고가 무시되고 재난이 반복된다면, 이는 더 이상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 지휘관의 태도 문제다.

세계적으로도 공직자의 위기관리 태도는 ‘생사’를 가른다.


일본 고베시는 1995년 한신 대지진 이후, 내진 설계를 강화하고 방재체계를 전면 재구성했다. 이후 동일본 대지진 당시 고베에서는 인명 피해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반면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는 허리케인 카트리나 경고를 무시해 수천 명이 희생됐다. 성공과 실패의 경계는 공직자의 위기 인식과 사전 실행력, 즉 태도에 달려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6월 12일 한강홍수통제소를 찾아 “예측 못한 재난이 아닌, 무관심과 무대응이 진짜 문제”라며 공무원들의 실질적 책임 이행을 강조했다. “우수관 하나 관리하지 않아 침수가 벌어진다”며 징계를 포함한 책임 추궁을 예고했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구조 개선이나 실질적 변화는 미비하다.


청주 오송 사고의 법적 대응은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해당 사고는 ‘중대시민재해처벌법’의 첫 적용 사례로 법정에 섰고, 지방정부 수장의 재난관리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를 놓고 전국 지자체가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청주시장에게 하천 관리 권한 위임 책임이 있다며 형사 책임을 물었고, 이에 따라 지방정부의 위기관리 체계는 이제 단순한 ‘행정’이 아닌 ‘형사책임’의 문제로 진입하고 있다.


이제는 결단이 필요하다.

첫째, 경고 무시와 매뉴얼 미이행은 중대과실로 간주하고 지자체장·부서장을 문책할 수 있는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둘째, 재난안전 담당 공무원은 보상을 확대하되, 중대한 부주의가 드러날 경우 강한 형사 책임을 병행하는 ‘이중책임구조’가 필요하다.

셋째, 모든 재해 예방과 조치 실적은 국민에게 공개되는 안전정보 플랫폼에 통합하여 책임 이력과 이행 정도를 추적 가능하게 해야 한다.

넷째, 책임지지 않는 자리에 있는 공직자에 대해 단호한 인사 쇄신과 물갈이가 함께 가야 한다.

책임자가 바뀌면 행정은 바뀐다. 무능력한 자리를 비워야 새로운 책임자가 시스템을 살릴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최선의 개혁이다.


공자는 말했다. “군자는 책임을 두려워하고, 소인은 책임을 피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재난정치는 어느 쪽인가. 반복된 인재는 더 이상 우연이 아니다. 시민은 더 이상 묵념과 조화에만 위로받을 수 없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책임과 사람의 교체가 안전을 지켜야 할 때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는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제보 charlykim@hanmail.net)

▲김한준 박사 【평생교육,Life-Plan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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