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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이후, 준비는 되었는가?【공직자 인생설계 #2】

- 생애설계 시스템의 한계와 신중년을 위한 대전환의 조건

“퇴직은 했지만 은퇴는 아니다.”


많은 신중년이 이 말을 되뇌며 ‘인생 2막’의 출발선에 선다. 평균수명 83세 시대, 정년퇴직은 더 이상 생애의 마침표가 아닌 쉼표에 불과하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 쉼표 이후의 문장을 제대로 준비하고 있을까. 현재 한국 사회가 제공하는 생애설계 시스템이 과연 퇴직 이후의 불안을 해결해 줄 수 있을지, 냉정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행 제도는 일견 잘 갖춰져 있는 듯 보인다. 1,000인 이상 기업은 50세 이상 퇴직 예정자에게 진로상담, 직업훈련, 창업 컨설팅 등을 제공하도록 「고령자고용촉진법」에 따라 의무화되어 있다. 이른바 ‘전직지원 서비스(outplacement)’다. 하지만 그 실효성은 여전히 논란이다. 대상자는 전체 신중년의 일부에 불과하고, 제공 시점도 퇴직 1~2년 전으로 지나치게 늦다. 사전 준비가 아닌 ‘사후 수습’에 가까운 구조다.


더욱이 이 제도는 대기업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영세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종사자 등 다수의 신중년은 제도 바깥에 방치되고 있다. 실제로 통계청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50대 이상 취업자의 약 67%가 300인 미만 사업장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전직지원 혜택을 받지 못한 채 퇴직을 맞이한다. 이처럼 구조적 사각지대는 신중년을 재취업 불능과 불안한 노후로 몰아넣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정보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설계 자체의 실패라는 데 있다. 지금의 생애설계는 대부분 퇴직 직전 혹은 퇴직 이후에 ‘어떤 일자리를 가질 것인가’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신중년에게 중요한 것은 일자리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삶의 경로를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긴 호흡의 구조적 안내다. 단기 훈련과 구직지원만으로는 결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첫째, 생애설계 시스템은 퇴직 직전이 아닌 입직 초기부터 작동해야 한다. 생애경력설계는 직무개발과 커리어 전환, 미래역량 점검 등을 포함한 종합적 경로 분석이어야 한다. 예컨대,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입사 3년 차부터 생애경력 리포트를 주기적으로 제공하고, 중년기 경력전환 상담을 받도록 제도화한다면 퇴직 이후를 ‘자연스러운 진화의 과정’으로 만들 수 있다.


둘째, 현재와 같은 고용주 중심의 전직지원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는 고용복지플러스센터, 평생교육기관, 중장년 일자리 허브 등 지역 인프라를 연계한 ‘공공형 생애설계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이 플랫폼은 누구나 접근 가능한 열린 공간이어야 하며, 지역별 순환형 커리어 컨설팅과 사회적 역할 전환까지 포괄해야 한다.


셋째, 단순히 재취업 여부만을 성과 지표로 삼는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 신중년은 다양한 삶의 목적과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일자리도 그것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경험 기반의 사회공헌형 일자리, 지역사회 순환형 역할군, 전문성 연계형 시간제 직무 등 ‘경험 전환형 생애 3 모작 설계’가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이 되어야 한다.


이미 일부 제조업체는 숙련된 퇴직자를 정규직 대신 파트타이머로 다시 고용해 생산성과 품질을 동시에 잡고 있다. 또, 공공기관에서는 은퇴 공직자의 지역 사회 활동을 연계한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 이러한 현장은 이미 변화를 증명하고 있으며, 문제는 이를 제도화하는 국가의 의지다.

정년 이후의 불안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 전체가 고령화에 대응하지 못한 ‘구조의 결과’다. 신중년의 인생 2·3모작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의 설계로 완성되어야 한다. 이제는 생애설계를 ‘복지의 부속’이 아닌 ‘국가 전략’으로 대우할 때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인생3모작 전문가】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로, LH인재개발원 미래설계지원센터장, 국토교통인재개발원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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