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강국은 콘텐츠가 아니라, 상상력을 키우는 사회에서 시작
"문화가 무너지면, 나라는 공허하다."
최근 몇 년간 K-컬처는 ‘세계가 주목한 한국’이라는 수식어를 자연스레 품고 있었다. BTS의 빌보드 점령, 오징어게임의 글로벌 흥행, 한식과 한복의 문화적 확산까지—대한민국은 소프트파워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그러나 2022년 이후 한국 문화산업의 경쟁력은 정체되거나 약화되고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수치의 후퇴가 아니라, 체계 부재와 정책 기조의 미흡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다.
이러한 배경에서 2025년 대통령 선거를 맞아 각 후보들은 '문화강국' 실현을 앞세운 공약을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K-콘텐츠의 글로벌 브랜드화, 문화수출 50조 원 달성, 국가 문화예산 확대 등을 약속하며 '세계 5대 문화강국'을 지향한다. 김문수 후보는 지역 문화 균형 발전과 콘텐츠 산업 규제 완화, 문화 소외계층 접근성 확대 등을 강조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들 공약이 기존 정책을 답습하거나 구체적 실행 전략이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정책의 명확성과 실행력은 ‘문화강국’ 실현의 필수 조건이다. 특히 현장 문화예술인들의 요구는 보다 정교하고 구체적이다. 지난 5월 열린 ‘21대 대통령선거 문화정책 대전환을 위한 토론회’에서 제시된 5대 정책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블랙리스트 방지를 위한 특별법 제정. 둘째, 예술인의 노동권 보장 및 사회안전망 구축. 셋째, 지역 중심 문화 인프라 강화. 넷째, 안정적 창작 환경 조성과 정책 지원 시스템 구축. 다섯째, 문화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문화행정 개혁. 이는 문화정책이 단순한 행정지원이 아닌, 생활 속 권리로 확장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중장기 정책 ‘문화한국 2035’는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나 문화를 누리는 나라”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실행 로드맵과 성과지표는 추상적이다. 실제로 문화기획자, 독립영화 제작자, 공연 예술인 등 현장 주체들의 체감은 정책과의 괴리감으로 나타난다. 예술인의 사회보험, 표준계약서 적용, 창작활동 지원금 등은 여전히 불균형적이고 임시방편적이다.
문화산업 경쟁력 강화의 핵심은 콘텐츠 생산자 생태계의 기반 확보다. 창작과 제작, 유통과 소비를 연결하는 문화산업 구조 전반에 대한 ‘선순환 시스템’이 필요하다. OTT와 글로벌 플랫폼에 집중된 지원도 중요하지만, 지역 기반의 문화자립성, 중소 콘텐츠 기업의 역량 강화, 장르 다변화 전략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예술인의 창작권과 생계권이 보장되어야만 콘텐츠의 질이 지속가능하게 높아진다.
문화는 정치적 수단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공공재다. 공약에 담긴 수치와 문구 너머로, 실질적 정책의지와 재정 투입, 실행 구조가 담보되어야 한다. 문화예술은 단순히 '한류의 수출'이 아닌, 시민의 표현권, 창작의 자유, 세대 간 소통의 장이다. 문화강국은 선언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콘텐츠의 일류는 시스템의 일류로부터 나올 때 진짜 문화강국이 된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교육·경영·생애설계 분야 전문가.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charly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