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대한민국 대전환 시리즈>④지역균형,서울공화국을 넘어서

- 균형의 역습, 지방이 사라진 나라의 미래

“서울에선 살 수 없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전북 남원의 한 청년은 그렇게 말했다. 집값은 감당이 안 되고, 고향은 일자리도, 친구도, 문화도 없다. 지방은 비어가고, 수도권은 무너지고 있다. 2024년 기준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51.9%가 수도권에 몰려 있고, 228개 기초지자체 중 절반 이상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더 이상 은유가 아니다.

지역의 위기는 단지 인구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대학이 사라지며 청년이 떠나고, 병원이 사라지며 노년이 떠난다. 산업은 수도권으로 흡수되고, 지역 경제는 공공기관 하나 유치하기 위해 경쟁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각 부처가 ‘지역 정책’을 수립할 수는 있어도, ‘지역 사회’를 설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는 ‘5극 3특’ 구상, 제2공공기관 이전, 세종행정수도 완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특히 권역별 산업·문화 거점 육성과 지역대학 혁신을 통한 지역인재 순환체계를 강조했다. 그러나 기존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이 가는 곳에 일자리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싶은 곳을 먼저 만드는 전략”이다. 단순한 인프라 배치가 아니라, 삶의 터전으로서의 지방 설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진짜 지역균형이 가능할까?

우선,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통합하는 중재 전략이 필요하다. 공공기관 이전이나 대학 통폐합 과정에서 지역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으며, 수도권 기득권 저항도 크다. 이에 따라 정책결정 초기 단계부터 지역주민·지자체·전문가가 참여하는 ‘공론형 의사결정 절차’를 제도화해야 한다. 이해를 조정하지 않으면, 실행은 무산된다.

둘째, 장기적 관점에서 단계별 실행 로드맵을 구축해야 한다. 균형발전은 단기성과 지표로 평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① 1단계: 지역대학·산단·문화시설 복합거점 조성, ② 2단계: 청년·중장년 대상 정착패키지(주거+일+문화) 운영, ③ 3단계: 지역정부 주도 R&D·창업 생태계 구축 등과 같이 ‘10년 이상’의 로드맵과 예산 확보가 병행돼야 한다.

셋째, 해외 사례에서 실행 전략의 단서를 찾아야 한다. 독일은 ‘슈타트루프트(Stadtluft)’ 정책으로 지방 중소도시를 문화·산업·교육 복합거점으로 육성하며, 프랑스는 ‘20분 도시’ 개념을 통해 도심과 지역을 연결했다. 일본은 지역창생 정책으로 소멸위험지역에 정부의 전략적 재정지원을 집중하고 있다. 이들 모두 ‘선택과 집중’ 전략과 ‘협치 모델’이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지역균형을 물리적 분산이 아닌, 삶의 기회 재설계로 접근해야 한다. ‘서울공화국’이란 말은 단지 인구의 문제가 아니라, 기회의 독점이라는 구조적 선언이다. 정치와 행정, 교육, 문화, 산업의 기회가 고르게 퍼질 때 비로소 균형발전은 실현된다.


균형은 중앙이 주는 것이 아니다. 각 지역이 스스로 일어서고, 자립할 수 있는 기반과 기회를 갖출 때 가능한 것이다. 다음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정권이 아닌 지역의 시간을 존중하는 일이다.

지방을 설계하는 것은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지금이 그 시작이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교육·경영·생애설계 분야 전문가.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charlykim@hanmail.net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한민국 대전환 시리즈 ③〉N포 세대에서 P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