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포먼스를 넘은 실천형 리더십은 가능한가
“지도자의 품격은 말이 아니라 태도에서 드러난다. 위기 속에서 신뢰받는 지도자야말로 진정한 통합의 중심이다.”
2025년,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권력의 전환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번 전환은 평화로운 선거가 아닌, 대통령 파면이라는 헌정사 초유의 사태를 배경으로 했다. 비상계엄령과 국회 봉쇄, 시민 기본권 침해라는 충격 속에서도 유권자는 다시 투표소로 향했고, 민주주의는 무너지는 듯한 순간에도 자신을 재건하는 선택을 해냈다. 그 선택의 중심에 ‘통합’을 내건 이재명 대통령이 있었다. 하지만 진짜 통합은 당선의 언어가 아니라, 통치의 방식으로 증명돼야 한다.
오늘날 시민은 ‘강한 리더’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위기 속에서도 믿고 따를 수 있는 ‘신뢰의 리더’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은 위기 때 군림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이 맞이한 위기는 단순한 통치의 기술이 아니라, 신뢰 복원이라는 근본 숙제를 던지고 있다.
그동안 정치 무대는 갈등을 소비하는 퍼포먼스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쇼통’이라는 말이 생길 만큼, 정치인의 언어는 공감보다 연출에 집중되었고, 국정 메시지는 단편적 반응성에 그쳤다. 특히 계엄령 사태 이후 “누가 강한가”라는 권력형 리더십 논쟁이 다시 불붙었지만, 이제는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누가 신뢰받는가”가 되어야 한다.
통합 리더십은 무엇보다 첫째, 국정의 메시지를 구조화하고 국민 신뢰의 구조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리더의 발언은 단지 해명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나아갈 방향의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전 총리는 코로나19 초기 “강한 메시지보다 정확한 메시지”를 선택했고, 공감과 신뢰를 끌어냈다.
둘째, 인사의 통합 전략이 필요하다. 특정 정파나 지역, 이념에 편중된 인사는 국정 초기에 통합 가능성을 차단한다. 통합형 리더십은 전문가와 현장성을 갖춘 인재를 포용하는 전략에서 출발한다. 1997년 금융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는 보수 경제관료와 진보 성향 인사를 혼합 포진시켜 위기를 극복했고, 이는 정책 신뢰와 국민 수용성 제고에 기여했다.
셋째, 시민의 말과 감정을 받아들이는 ‘낮은 리더십’이 핵심이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통합을 위해 지역 순회 토론회를 열고 ‘무시된 시민들의 분노’를 직접 듣는 방식으로 행정 개편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국민의 감정은 통계나 숫자가 아니라, ‘경청’이라는 실천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
이제는 대한민국도 ‘햇볕론 vs 바람론’이라는 양자택일의 정치 리더십을 넘어야 한다. 햇볕처럼 포용하면서도 바람처럼 단호한 원칙을 지키는 제3의 실천형 통합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다. 이재명 정부는 ‘말 잘하는 지도자’에서 ‘경청하고 증명하는 지도자’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통합형 리더십이 과연 가능한가? 국정 메시지를 정교하게 설계해도, 내부 의사결정 구조가 폐쇄적이면 현장의 신뢰는 확보되지 않는다. 인사 전략을 세워도, 실질 권한자들이 여전히 ‘보은 인사’에 의존한다면 그 구상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낮은 리더십을 외쳐도, 시민 감정을 흘려보내는 미디어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경청은 형식에 머문다.
이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반대급부적 대비가 필요하다. 첫째, 국정 메시지 구조화는 국정홍보처의 업무가 아니라, 부처 협업과 시민사회 소통 시스템을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인사 시스템은 코드 인사 배제를 넘어서 ‘인사 검증 시민위원회’ 같은 공정한 통합적 검증 절차를 도입해야 한다. 셋째, ‘낮은 리더십’은 선언이 아닌 습관이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정례 브리핑, 지역 간담회, 민감 이슈에 대한 공개 피드백 같은 구체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2028년 제23대 총선을 앞둔 지금, 대한민국은 또 한 번 정치 통합의 시험대에 서 있다. 통합은 말의 수사가 아니라, 권력의 운용 방식이 증명하는 것이다. 진짜 강한 지도자는 더 많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의 말을 듣고 더 많은 행동으로 응답하는 사람이다.
✔ “통합은 힘이 아니라 신뢰로 설계되어야 하며, 실천이 쌓일 때 비로소 그 리더십은 완성된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개인메일 charly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