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안전의 사각지대를 재점검하라
2025년 6월, 서울 지하철 5호선 열차 내부에서 한 남성이 가방에서 라이터와 인화물질을 꺼내 불을 지피며, 열차 내에는 순식간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불길이 번져 승객들이 공포 속에 대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경찰은 현장에서 범인을 체포했으며, 단순한 기물손괴가 아닌 살인미수 혐의로 사건이 전환되었고, 특히 범인은 “사람이 많이 타는 시간을 기다렸다”라고 진술해 이 범행이 충동이 아닌 계획된 공공 위협임을 드러냈다. 더욱이 그는 이전에도 이상행동을 보였지만 제지를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의 공공안전망이 얼마나 쉽게 침투당할 수 있는 구조적 허점을 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사건은 “우리는 과연 공공의 공간을 얼마나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진다.
지하철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하루 수백만 명이 공유하는 도시 생활의 기반이며, 특히 수도권의 출퇴근 시간대 혼잡도는 사고나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규모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을 상시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화, 흉기 난동, 돌발 폭력 사건들이 반복되며, 시민들이 지하철이라는 공간을 더 이상 ‘안심할 수 있는 공공영역’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 현실은 우리 사회 안전체계의 총체적 결함을 반영한다.
문제는 이처럼 명백한 위협이 거듭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이 여전히 구조적으로 방어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교통공사의 안전 인력은 2020년 대비 약 11.6%나 감소했으며, 열차 내 CCTV는 대부분 기록용에 그칠 뿐, 실시간 감시와 위기 대응이 가능한 수준으로는 구축되어 있지 않다. 특히 많은 노선이 기관사 단독 운전 혹은 무인운전 체계로 운용되기 때문에,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초동 대응은 결국 승객의 자발적인 행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며, 이는 매우 위험한 구조이다.
더욱이 차량 간 무전 통신 체계나 역사 내 순찰 인력 배치 또한 위급 상황을 전제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 일상 유지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구조적 위험이 방치되고 있으며, ‘신고→확인→출동’에 기반한 반응형 시스템은 급변하는 상황 전개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워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처럼 대중교통 내에서 발생하는 범죄나 방화 행위는 단순한 일탈자에 의한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시민 전체의 생명과 신뢰를 위협하는 구조적 위험 요인으로 인식되어야 하며, 이에 상응하는 설계와 대응 체계가 병행될 때 비로소 안전망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방화는 대부분 방심 속에서 시작되지만, 피해는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확산된다. 2022년 부산 화명생태공원에서는 60대 남성이 갈대밭에 불을 지르며 여섯 차례 방화를 시도했고, 이로 인해 660㎡ 이상의 산림이 훼손되었으며, 범인은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자연과 도심이 맞닿은 생태공원조차 방화의 위협에서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여준 이 사건은, 문화재나 역사공원뿐만 아니라 모든 공공시설에 대해 더욱 철저한 위험 관리를 요구한다. 플라톤이 “정의로운 도시는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듯, 도시를 무너뜨리는 것은 외부의 전쟁이 아니라 내부의 무관심이며, 고대 이솝우화 ‘농부와 불씨’가 경고하듯 작은 불씨 하나로도 도시 전체가 불에 휩싸일 수 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사건 발생 이후의 대응이 아니라, 사전에 위험을 예측하고 차단할 수 있는 설계를 중심으로 사고방식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우선, 열차 내 CCTV를 단순한 기록 장비가 아닌 AI 기반 실시간 영상 분석 체계로 전환하여 액체 소지, 이상행동, 급작스러운 움직임 등을 자동 감지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이미 뉴욕 지하철의 ‘SMART Surveillance’ 시스템을 통해 실현 가능한 사례로 입증되고 있다. 또한, 노후 구간과 혼잡 구간에는 혼잡 시간대에 대응할 수 있는 순환형 보안요원을 상시 배치하여 억제 효과와 초동 대응 능력을 동시에 확보해야 하며, 반복적으로 문제가 되는 정신질환자 및 특정 전과자에 대해서는 경찰, 보건소, 지자체 간의 데이터 연동과 지역사회 중심의 추적 관리 체계를 마련해 실시간 대응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문화재와 생태공원, 도서관 등 방화 위험이 높은 시설에 대해서는 연 1회 이상 ‘방화 취약도 진단’과 소방안전 점검 등급제를 도입하여, 사전 점검을 체계화해야 한다.
공공안전은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시민과 사회가 맺는 신뢰의 계약이며, 안전의 사각을 줄이는 일은 기술의 고도화만으로는 불가능하고, 구조적 예방 설계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성냥 하나로 타는 것은 단지 나무가 아니라, 시민들의 신뢰와 우리 사회의 기본 질서이며, 오늘 발생한 작은 불씨가 내일 더 큰 재난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우리는 지금 이 순간부터 움직여야 한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개인메일 charly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