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도는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길을 내는 것이다
공직 개방은 단지 채용의 문을 여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걸맞은 사람이 머물며, 성과로 공직의 신뢰를 높이는 구조가 필요하다. 경력개방형 직위제는 민간의 유능한 인재를 유입하고, 전문성을 보완해 성과 중심 인사를 구현하려는 제도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냉정히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 제도가 사람을 위한 ‘길’이 되고 있는가?
현실은 다르다. 평균 임용률은 20%를 넘지 못하고, 성과 연장률은 10%를 밑돈다. 연장 불가는 설명도 없이 결정되며, 약속된 임기 보장이나 전환 기회는 구호에 그친다. “성과가 있어도 바뀌는 자리”라는 인식 속에 민간 전문가는 떠나고, 제도는 신뢰를 잃는다. 사람을 뽑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못했다는 데 본질이 있다.
채용은 있었으나, 제도는 없었다.
2021년 국토교통부 인재개발원에 채용된 민간 HRD(인적자원개발) 전문가는 인사혁신처 나라일터의 공개모집 공고문에 따라 ‘3년 보장, 성과 우수 시 최대 5년 연장, 탁월한 경우 일반직 전환 가능’ 조건으로 임명되었고, 3년간 대통령상 3회를 포함한 최고 등급을 평가받았다. 그러나 임기 종료 시 채용조건에 부합한 연장 불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결국 보직은 내부 인사로 대체됐고, 퇴직 후 8개월째 실업급여를 수령 중이다.
이 사례는 제도의 본질적 결함을 보여준다. 성과도, 기준도 작동하지 않았고, 인사혁신처와 국토부는 연장 불가의 기준도 밝히지 않았다. 평가 투명성이 사라진 구조는 공직 신뢰를 무너뜨리고, 민간 유입을 가로막는다.
사람을 키우는 자리에 사람이 없다면?
공직 교육의 핵심인 인재개발원조차 HRD(인적자원개발) 전문가가 아닌 일반 보직자들이 담당하는 현실이다. 전략적 기획과 조직개발이 요구되는 자리에 교육 경험조차 없는 이들이 배치된다면 어떤 변화가 가능할까?
중앙부처 소속 교육기관들은 조직 혁신의 허브가 아니라 ‘쉬어가는 자리’로 인식되고 있다. HRD는 단순 직무교육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기반이다. 이곳에 역량 기반 인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인사정책의 미래도 불투명할 것이다.
해외는 어떻게 하는가?
미국 GAO(회계감사원)는 정무직과 실무직을 분리하고, 성과 기반 채용과 계약 갱신 체계를 운영한다. 프랑스 DGAFP(공공인사총국)는 민간 인재를 ‘적응-정착-전환’ 3단계로 통합해 교육성과와 정책성과를 연계하고, 독일은 연방행정대학 HRD 전문가를 부처별로 파견해 조직개발을 지원한다. 이들 국가는 ‘정착 가능한 구조’를 통해 공직 신뢰를 제도화하고 있다.
반면, 인사혁신처는 형식의 문만 열어두고 실질의 길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제도가 있다고 곧 실행되는 것이 아니며, 기준이 있어도 신뢰가 없으면 공직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교훈은 지금 우리 행정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공직 인사 제도의 신뢰 회복을 위한 구조 개혁은 다음과 같은 실행 과제를 중심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HRD 전문가 임용 요건 법제화 및 공모 기준 공개, 경력개방형 직위 연장 원칙 명문화 및 설명 없는 불연장 금지, 민간 임용자의 적응교육 강화 및 사전·사후 평가 제도화, 내부 공무원에게도 HRD 보직 기회 부여 및 검증 연계 인센티브 제공, 인사혁신처 기능 확대하여 채용부터 평가, 성과, 정착까지 전 과정 감독, 연장 불가 시 ‘설명 책임’ 명문화, 임용률·성과평가 등 데이터 주기적 공개 및 국민 추천 제도화를 통해 신뢰 기반을 넓혀야 한다.
경력개방형 직위제는 공직의 미래를 여는 제도다. 그러나 현재는 사람을 불러놓고도 실질의 구조는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문을 넘어, 길을 다시 설계할 시점이다.
중국 고전 『논어』에서는 “정치는 사람을 얻는 데 있다(政者正也)”고 했고, 주희는 “도는 말이 아니라 실천에 있다(道非口傳 必在踐履)”고 했다. 제도는 설계가 아니라 신뢰로 완성된다. 인사혁신처가 진정 개혁의 중심이 되려면 채용보다 정착, 형식보다 실질, 지시보다 책임을 중시하는 구조 개편에 나서야 한다.
이는 단순한 인사제도 개선이 아니라 공직 신뢰 회복과 국민과의 약속을 이행하는 책무이다. 지금 우리가 되새겨야 할 진리는 분명하다. “신뢰는 말보다 구조에 있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개인메일 charly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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