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 구조 뒤에 숨은 책임, 그 침묵이 생명을 앗았다
작은 마을에 오래된 연못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연못을 ‘죽음의 웅덩이’라 불렀다. 해마다 누군가 빠져 숨졌지만, 변화는 없었다. 울타리는 세워졌고 경고판도 걸렸으며, 한때는 CCTV까지 설치됐지만 희생자는 줄지 않았다. 문제는 울타리가 낡고 경고판은 글자가 바래 있었으며, CCTV는 녹화만 했을 뿐 어떤 대응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 우화는 허구가 아니다. 2025년 7월, 인천 계양구의 맨홀 안에서 벌어진 참사는 이보다 더 무심한 현실이었다. 작업에 투입된 한 노동자는 “가스가 있다”라고 외친 직후 실종됐고, 약 1km 떨어진 오수 처리장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는 산소마스크조차 쓰지 못한 채 밀폐된 공간에 홀로 들어갔고, 안전 관리자도, 사전 가스 측정도, 책임자도 없었다.
이 사건은 새로운 비극이 아니다. 2023년 김해에서는 오수관로 작업 중 20대와 30대 노동자 2명이 질식사했고, 2020년 부산에서는 하수도 맨홀에서 용접 작업 중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3명이 사망했다. 이 세 사건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모두 밀폐된 공간에서 이루어진 작업이었고, 적절한 장비와 감독이 없었으며, 결국 노동자들이 구조적 방임 속에서 생명을 잃었다.
사고의 본질은 ‘안전 불감증’이 아니라 ‘안전 책임의 실종’이다. 특히 반복되는 ‘3중 하청’ 구조는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 발주처는 직접적인 작업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계약서에 ‘하도급 금지’ 조항을 넣지만, 실제로는 하청, 재하청, 재재하청 구조를 묵인하거나 방치한다. 현장에는 실질적인 안전 관리자가 존재하지 않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안전 장비는 생략된다. 그러는 사이 책임은 아래로만 흐르고, 누군가 죽어야 겨우 조사가 시작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사고 직후 "일터의 죽음을 멈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라"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특단’이란 말이 공허하지 않기 위해선, 지금의 구조를 그대로 두고서는 어떤 대책도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같은 사고를 되풀이하고 있는가.
첫째, 이제는 원청과 발주처가 무조건적인 1차 책임을 지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독일처럼 발주처와 원청이 사고의 민·형사상 전면에 서야 하며, 하청 구조는 면피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원칙이 법제화되어야 한다. 둘째, 밀폐공간이나 고위험 작업의 경우 반드시 사전 승인제를 도입해, 가스 측정, 안전 장비 확인, 작업자 교육 이수 등이 인증된 이후에만 작업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제3의 감독기관이나 민간 전문가가 직접 확인하는 절차도 병행되어야 한다. 셋째, 사고가 발생한 업체와 대표자의 실명을 공개하고, 해당 업종에 대해 일정 기간 공공입찰 자격을 제한하는 등의 제재가 필요하다. 실질적인 불이익이 없다면, 안전은 늘 다음 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반복된 사고에 늘 “안타깝다”는 말로 시작했지만, 곧이어 “책임소재를 확인 중”이라는 답변으로 갈무리해 왔다. 그러나 이 죽음들은 예외적인 사고가 아니라, 시스템과 무관심이 빚은 구조적 살인에 가깝다. 누군가 “가스가 있다”라고 외친 그 현장에서, 우리는 또다시 아무 조치도 없이 비극을 지켜봤다.
사고가 아니라 방임이었다. 실수나 운이 아니라, 설계된 구조가 생명을 앗아갔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이런 사고가 다시 발생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여전히 바뀌지 않았는가를 묻고, 그 책임을 위로부터 물어야 한다.
"죽음은 피할 수 있었다"는 말이 다시는 뉴스의 첫 문장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지금이라도‘안전’을 비용이 아닌 생명으로 다루는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특단의 조치이며, 살아 있는 자들이 죽은 자에게 갚아야 할 최소한의 책무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는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개인메일 charly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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