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력개방형직위제, 사람을 남게 하라
“열려 있는 자리는 많지만, 머무를 자리는 없다.”
공직사회 개방형직위제도를 바라보는 어느 민간 전문가의 말이다. 지금 우리는 제도가 존재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제도가 사람을 남기지 못하고, 결과를 설명하지 못하고, 구조를 설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개방이 아니라 방치다.
경력개방형직위(민간인만 응시 가능), 개방형직위(공무원과 민간인이 경쟁), 공모직위(공무원 재직자만 응시) 제도는 본래 외부 전문가 유입과 공직 내 유능한 인재의 적격자를 선발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취지가 무색해졌다. 형식적으로는 공개채용을 진행하지만, 실제로는 내부직원에게 보직을 주기 위한 ‘우회 경로’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개방형 직위조차 내부 승진이나 보직을 위한 발판으로 전환되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채용은 외부, 보직은 내부라는 이중구조는 공직사회에 신뢰 상실을 가중시킨다.
이는 마치 이솝우화에 나오는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이야기와 닮아 있다. 외견상으론 개방적이고 유연해 보이지만, 그 속은 비어 있기에 제도는 요란한 절차 뒤에 허망한 결론을 남긴다.
실제 2024년 기준, 전체 경력개방형직위 임용률은 20%대 초반에 머물고 있으며, 성과 연계 연장 비율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불연장 결정에는 설명조차 없기도 하지만 인사처와 다른 직위를 위한 협의 및 편법을 사용한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인재는 오지만, 남지 못한다. 제도는 열려 있으나, 구조는 준비되어 있지 않다.
만약 내가 인사혁신처 인사혁신국장이라면, 지금 당장 다음 세 가지를 바꾸겠다.
첫째, 개방형·경력개방형 직위 운영 전 과정을 공시하는 ‘인사운영 공시제’를 도입하겠다. 채용 공고, 심사 기준, 임용 내역뿐 아니라 연장 거부 사유와 평가 근거까지 공시 대상으로 확대하고, 내부 전환 및 보직 내정 사실도 포함하겠다. ‘제도를 설계하는 자’가 ‘과정을 감추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내부직원 보직 확보를 위한 편법적 제도 활용을 원천 차단하는 ‘실질 개방요건’을 신설하겠다. 민간 출신 응시가 일정 수 미만인 경우 개방직 전환을 금지하고, 특정 기간 이상 내부 근무자가 보직되는 경우 인사혁신처의 사전 협의와 공개 소명을 의무화하겠다. 개방직이 내부용 승진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셋째, 제도 개선을 위한 대통령 직속 국정운영위원회의 정책 보고 과정에서, 경력개방형 직위와 관련한 편법 운용 문제가 반드시 다뤄지도록 해야 한다. 인사운영은 단순 인력 배치가 아니라 정부 철학을 드러내는 구조다. 주요 부처의 경력개방형직위 운영 실태를 정기 점검하고, 불합리하거나 편법적 운영에 대해서는 제도 개선 권고와 재공모 요구를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인사문제를 ‘부처 자율’로만 둘 수 없는 시대다.
해외는 다르다. 영국의 SCS(Senior Civil Service)는 고위직 임용 시 외부·내부 전환 비율을 공공 기록으로 관리하며, 평가 기록은 실적 기반 파일로 보관된다. 캐나다 PSPC는 공모직위 채용 이력, 심사 기준, 실패 사례까지 시민이 열람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프랑스 DGAFP는 ‘유입–정착–성과–전환’의 4단계 인재 관리 트랙을 도입해, 민간 임용자의 적응성과 성과에 따라 중간점검 후 승진 연계 가능 여부를 명확히 고지한다. 세 제도는 모두 현재도 운영 중이며, 제도의 성과는 인재의 정착률과 신뢰도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좋은 질서는 모든 것의 기초다”라고 했다. 인사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제도가 구조와 절차 위에 작동해야 신뢰도 또한 기초 위에 쌓인다.
인사제도는 사람이 머무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지금처럼 연장 사유는 감추고, 전환 기준은 없고, 내부 승진을 위해 외부 공모를 반복하는 구조 속에서는 신뢰는 자라지 않는다. 인사는 구조다. 구조는 메시지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지금 이 정부가 국민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신호다.
국정운영위원회가 이 문제를 정책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인사는 단순한 인력 충원이 아니라 국정의 미래 설계다. 신뢰를 쌓으려면 정무가 아니라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채용보다 운용의 설계, 공모보다 정착의 구조, 자격보다 머무름의 철학이다.
✔ “신뢰는 설명된 구조 위에서만 자란다. 설계 없는 채용은 개방이 아니라 방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