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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쉴 수 없는 노동

– 밀폐공간과 죽음의 반복

❚ 수원·성남·오산·안양 등 경기권 도시들의 산업재해 발생률이 증가


깊이 1미터 남짓한 맨홀. 그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다시는 지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2025년 7월, 인천 계양구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작업 중 실종된 50대 노동자는 “가스가 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사라졌으며, 함께 진입했던 40대 업체 대표는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됐다. 맨홀 안에서 검출된 것은 황화수소와 일산화탄소였지만, 더 본질적인 독은 안전 불감과 구조적 방치였다.


이 사건은 예외가 아니라 반복이다. 2023년 9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경남 김해의 오수관로에서도 20대와 30대 노동자 두 명이 질식해 목숨을 잃었다. 유해가스 측정은 없었고, 공기호흡기 대신 분진 마스크가 전부였다. 발주처는 이 사실조차 몰랐으며, 재하청을 통해 무단으로 이뤄진 작업이었다. 불과 3년 전인 2020년 4월, 부산 사하구 하단동 하수도 공사 현장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발생해 노동자 세 명이 산소 농도 미측정 상태에서 용접 작업을 하던 중, 폭발과 함께 일산화탄소에 질식해 숨졌다.


최근에는 경기 지역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2024년 6월, 화성시의 리튬전지 공장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23명이 숨졌는데, 이 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안전 컨설팅을 받던 중이었음에도 실질적인 현장 점검은 이뤄지지 않았다. 같은 해 수원시 영통구의 고층 건축 현장에서도 20대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고, 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2025년 3월 기준, 수원·성남·오산·안양 등 경기권 도시들의 산업재해 발생률이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지역과 시기는 달랐지만, 이들 사고에는 네 가지 공통된 구조가 존재했다. 밀폐된 공간, 사전 위험조사 미비, 보호장비 지급 부재, 그리고 책임의 외주화.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있었지만, 법과 제도는 현장에 없었다.


밀폐공간 사고는 단순한 실수나 부주의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이 2024년 발표한 『밀폐공간 질식사고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밀폐공간 사고의 76%가 유해가스 미측정과 보호장비 미착용에서 비롯되었으며, 이 중 65%는 원청이나 발주처가 하청 구조를 통해 감독 책임을 회피한 사례였다. 제도는 존재했지만, 관리의 주체는 없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위험성 평가 보고서’가 형식적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감독관의 현장 방문 없이 서류로만 진행되는 위험성 평가 제도는 사실상 껍데기에 불과하다. 둘째, 밀폐공간 작업자에 대한 교육과 인증 제도가 현장에서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제39조는 밀폐공간 작업 시 공기호흡기 지급과 가스 측정, 감독자 지정 등을 명시하고 있지만, 하청과 재하청 구조에서는 그 책임이 흐려지고 실질적으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는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에 대비해 노동부와 협력하여 산업현장 점검을 강화했지만, 대부분의 지방정부는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인해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외 사례는 분명히 다르다. 독일은 연방노동청이 밀폐공간 작업에 대해 사전 승인제를 운영하며, 승인받지 않은 작업은 착공 자체가 금지된다. 일본은 지방정부별로 노동감독관이 실시간 보고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 공사에서는 원청이 현장 책임을 지는 구조를 법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위험한 작업엔 감시가 필요하며, 책임은 계약서가 아니라 법과 제도로 분명히 지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들 국가는 실천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법이 아니다. 기존 제도의 작동력이다. 보고서를 읽는다고 안전이 보장되지 않고, 위험을 알면서도 작업을 강행하게 만드는 하청 생태계가 지속되는 한,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사고는 입법의 실패가 아니라 실행의 실패, 감시의 공백, 그리고 무관심의 누적에서 비롯되었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가장 큰 죄는 무관심이다”라고 말했다. 구조적 위험을 알면서도 방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회가 짊어져야 할 가장 무거운 책임이다. 숨을 쉴 수 없는 노동이란, 공기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일하다 죽어가는 구조를 의미한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또 사고가 났는가”가 아니라, “왜 구조는 바뀌지 않았는가”를 묻는 사회여야 한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제보 charly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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