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사막 사파리 투어
모래를 밟아 볼 기회는 많았다. 어릴 적 놀이터에서부터 모래집을 쌓아 두꺼비를 부르며 자랐고, 부산이 고향인지라 해수욕장을 갈 기회는 차고도 넘쳤으니까. 맨발로 백사장을 거닐며 파도를 몇번이나 약올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온사방이 모래뿐인 적은 없었다. 태양과 나, 그리고 모래와 바람. 누군가 나를 번쩍 들어올려 이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아두고 가버린 것 같다. 참 낯설다.
중동에 위치한 카타르는 사막국가다. 수도인 도하는 어느정도 도시의 모습을 갖춰 잘 꾸려져있지만, 이를 제외하면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다. 도하에서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니 텅빈 땅과 하늘 뿐이다. 그 사이로 정유 시설이 간간이 보인다. 24시간 불을 뿜어대는 건물을 보니 이글거리는 해와 누가누가 더 뜨겁나 싸움이라도 난듯하다. 이쯤오니 투어의 가이드이자 운전자인 모하메드가 조금 더 속도를 올린다. 도로를 달리는 차가 우리밖에 없어서 그런지 엄청난 속도도 그닥 빠르게 느껴지진 않는다.
첫번째 액티비티는 사막 사륜바이크. 월드컵을 맞아 멕시코에서 온 건장한 단체손님들은 저마다 얼른 바이크에 올라타 훌쩍 출발해버렸다. 모래 언덕을 몇굽이 지난 그들이 어디까지 가버렸는지 벌써 보이지 않는다. 아직 출발도 못한 우리가 안타까운지 모래밭에서 길 잃을까 걱정된건지 가이드를 한명 더 붙여줬다. 그는 악셀을 꼭 쥔 나를 향해 따라오라고 넌지시 손짓하곤 쌩 가버린다. 하지만 전혀 겁이 나거나 조급하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적 나도 꽤나 바이크를 몰아봤었으니까. 모래바람을 거칠게 일으키며 길을 개척하는 가이드를 따라 실눈으로 질주한다. 모래조각들이 얼굴을 쳐대 고개가 숙여져도 시선이 고정되어 있으면 균형을 잃지 않는다. 어느덧 내가 올라탄 바이크와 한몸이 된것 같다. 여유롭게 저 너머 모래 언덕을 응시하고 잠시 구름이 가려준 태양을 향해 턱을 바짝 들어보기도 한다. 신나게 피가 끓는 이 기분이 참 오랜만이다. 어찌나 집중했던지 이미 출발했던 다른 이들을 다 지나쳐 선두로 달리고 있다. 제일 늦게 출발해서 제일 먼저 들어오는 드라마. 왠지 월드컵에도 대유가 된달까.
온몸에 묻은 모래를 야무지게 털고 있으니 모하메드가 두 팔을 들며 말을 던진다. "Oh, Come on. You're in the desert now!"(무슨, 너 지금 사막이잖아!) 앞으로도 모랫속을 뒹굴텐데 내 행동이 우스웠나보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그래, 오늘은 모래 샤워날이지 참. 손질이 전혀 안된, 바람과 모래가 헝큰 머리를 그대로 옆으로 넘겨 차에 다시 올라탄다. 한동안 가다보니 중동지역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과 낙타무리가 보였다. 네비게이션을 보는 것도 아닌데, 노오란 세상에서 모하메드는 어떻게 이렇게 길을 잘 찾아내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FIFA를 기념해서인지, 다양한 나라의 국기가 펄럭이며 환영하고 있다. 나이 지긋한 한 할아버지가 다가와서는 해가 저물기 전에 이 친구와 노을을 즐기라고 한다. 낙타 한 마리가 그의 손에 얌전히 맡겨져있다. 인사를 꾸벅하고 올라타니 생각보다 등이 높다. 자신이 어디로 가야할지 아는 낙타는 뉘엿뉘엿 걷기 시작한다. 우뚝 솟은 등위에서 둥그러이 웅크린 모래 벌판 위 붉은 태양을 마주한다. 마음 깊은 곳까지 맑게 타오른다.
낙타들과 작별하고 우리는 마지막 코스인 바다로 향했다. 카타르엔 말 그대로 사막 한가운데 파도치는 바다가 있다. 별들이 하나 둘 고개를 내밀고 모래 스치는 소리와 파도의 철썩임이 조화를 이룬다. 괜시리 눈 앞의 장면에 생명력이 느껴진다. 조용히 사막의 백사장에 앉아 그 속으로 잠긴다. 챙겨온 상아색 숄을 머리와 어깨에 두르곤 나 있는 곳을 의식한다. 뜬구름처럼 느껴졌던 '사막에서 바늘 찾기' 라던지, '광야'라는 단어가 이제는 살결에 와닿는다. 내가 머무는 곳이 이토록 이국적인 곳임에 마음이 신비롭다. 오늘만큼은 어린왕자가 되어 나의 장미들을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