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지바르의 따뜻한 크리스마스
누군가 나를 기억해줄 때. 안부를 물으며 가슴 속 나를 위한 공간을 남겨뒀을 때. 나는 깊은 감사를 느낀다. 이토록 모자란 사람을 아껴주다니 고개를 더 숙이게 된다. 한 사람이 천하보다 귀하다 했는가. 그 한 사람 속에는 천하가 담겨있다. 놀랍도록 정교한 세상이 숨쉬고 있다.
생애 처음 맞이하는 더운 크리스마스. 더군다나 아프리카 한가운데라니. 1년전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다 오늘 처음 보는 동료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기념한다고? 이게 맞는건가, 어리둥절 어색할 따름이다. 하지만 색다름은 곧 특별함이랄까. 탄자니아의 잔지바르는 유럽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양지 중 하나다. 아름다운 코발트빛 해변과 다채로운 해산물 요리, 연신 "하쿠나 마타타!"(걱정 말아요!)를 외쳐대는 친절한 현지인들이 반겨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파라다이스를 향하는 이 비행엔 특별한 성탄을 꿈꾸는 이들로 가득하다.
이른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길, 엄마가 인터넷에서 실수로 두개를 주문해 운좋게 얻은 분홍 꽃무늬 셔츠에 머리를 한쪽으로 땋아 내려본다. 크리스마스 답지 않은 복장이라 잠에서 덜 깬듯 긴가민가 하다. 그러나 이내 푸른 하늘과 맞닿은 바다를 바로 열어둔 식당에 들어서니 가슴이 탁 트인다. 이거 꽤 괜찮은데? 역시 일단은 하쿠나 마타타! 특제소스로 구운 씨푸드 플래터(다양한 해산물을 큰 접시에 펼쳐내는 메뉴)와 톡쏘는 패션후르츠 주스도 맛이 정말 끝내준다. 어느정도 허기가 달래지자 너나할것없이 다들 가족에게 영상통화를 걸기 시작했다. 몸은 멀지만 마음은 함께인 모습이 푸근하다. 한국은 다들 자고있을 시간이라 사진이라도 보낼까 해서 휴대폰을 톡톡 건드려본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메세지가 와있다. 그것도 두통이나.
내게는 감사하게도 평생을 함께하고픈 인연들이 있다. 오래 만나지 않아도 가슴으로 항상 품고있고 언제나 그 편을 들어줄 준비가 된 사이라 일컬을수 있겠다. 하지만 관계에도 비바람은 치게 되어있다. 본의아니게 멀어졌고, 멀리서 기웃 눈치보며 삶이 바쁘다 핑계대고 다가서질 못했다. 그런데 내게 다시 찾아와 문을 두드려주다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두명의 천사에게서 온 한통씩의 메세지를 읽기 전, 심장이 두근두근 마치 산타로부터 받은 선물의 포장을 풀어보려는 아이가 된 기분이다.
"줄리아, 오랜만이야. 잘지내지?" 나의 이름을 사랑스럽게 부르며 안부로 시작하는 문자. 마치 꼭 잘지냈어야 한다고 읽힌다. 그 마음을 고봉으로 꾹꾹 눌러 담은게 느껴진다. 한바탕 비온 후 단단해진 땅을 딛고 찾아와준 이 발걸음이 너무 귀하다. 한해동안 이곳저곳을 누비며 많은 경험을 쌓았지만 이 순간, 그 어느때보다 기쁨이 분수처럼 터져나온다. 역시 사람인가보다. 그 어느것도 영혼과 영혼의 사이를 대신할순 없다. 공교롭게도 코 앞에 두고있는 겨울 휴가가 고맙기만하다. 한국으로 돌아가 맞댈 품이 넓어지니 행복하다. 생각지도 못한 크리스마스 선물. 되찾은 인연을 삶의 퍼즐에 소중하게 맞춰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