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의 첫 다섯 권을 모세가 다 썼다고들 한다. 이걸 <모세 5경>이라 부르는데, 이게 좀 웃긴다. 모세가 죽은 후의 내용도 <모세 5경>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어떤 구약학 교수가 그 부분은 모세가 쓴 게 아니라고 했다가 잘릴 뻔했다.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다 모세가 썼다? 왜 굳이 모세냐고! 창세기는 요셉이, 탈출기는 모세가, 레위기는 아론이, 민수기와 신명기는 여호수아가 썼다고 하면, 어디가 덧나나? 프로이트의 <종교의 기원>을 읽고 나서 의문이 풀렸다.
모세는 아텐교 신봉자였다. 아텐교는 역사상 최초의 유일신교라는데, 파라오 아케나톤이 만든 종교다. 근데 아텐교는 백성들에게 인기가 없었고, 왕족들만 믿었단다. 아케나톤이 죽고 나서 아텐교는 그냥 박살 났고, 이집트는 다신교로 돌아갔다.
당시에는 아텐교를 추억만 해도 처벌을 받았는데, 이집트 왕자인 모세가 그러다가 발각되었다. 위협을 느낀 그는 미디안 광야로 튀었다. 근데 <탈출기>에는 "모세가 이집트 사람 하나 죽이고 도망쳤다"라고 한다. 아, 그 시대에 왕자가 사람 하나 죽였다고 도망가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기운 차리고 새로운 꿈을 꾼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일신교 신자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 거다. "이거, 아케나톤 때보다 훨씬 대단할 거야!" 하면서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아론을 만났는데,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아무튼 그들은 이집트를 탈출할 계획을 세웠다. 근데 그때는 잠시 무정부 상태라 열 가지 재앙 같은 건 필요 없었단다. 짐 싸서 그냥 떠나가면 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다. 옛날 헤로도토스라는 역사가가 이집트에선 할례 풍속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한 것이다. 그것은 요즘에 와서 미이라나 벽화로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도 이집트에 살다 보니 그 풍속을 따라 한 거다. 만약 모세가 진짜 이스라엘 사람이었다면 할례를 강요하지 않았을 거다. 툭하면 이집트로 돌아가자는 백성들한테 이집트 풍습을 강요할 수 있을까? 그랬다가는 이집트 땅에서의 생활을 더욱 그리워하게 만들었을 거다. 그래서 모세가 이집트 사람이었다는 가설에 힘이 실리는 거다.
근데 <창세기>에서는 아브라함한테 야훼가 약속의 징표로 할례를 하라고 했다. 그건 또 어떻게 설명할 건가? 간단하다. <창세기> 저자인 모세의 창작이었다는 거다. 모세가 <창세기>를 쓰면서 다신교 흔적 싹 없애고, 유일신교 증거를 여기저기 심어 놓은 거다. 그래서 <창세기>에서 족장들이 다른 신들을 숭배했다는 얘기가 거의 없는 거다.
사실 모세가 히브리인이든 이집트인이든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다. 어느 쪽이든 그는 이집트 왕궁에서 자랐고, 아케나톤의 신임을 받았으니까. 모세가 파라오를 만날 때마다 아론을 데려간 것을 "모세가 말주변이 없어서 아론을 데려간 거다"라고 하는데, 말도 안 된다. 모세가 야훼와 이스라엘 백성들한테 말하는 걸 보면 완전 달변가였기 때문이다. 아론을 데려간 건,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를 이집트 사람인 모세가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인 아론이 전해야 했기 때문이었을 거다.
모세는 성질이 진짜 불같았다. 백성들이 금송아지 만들어 놓고 춤추고 있으니까, 야훼가 직접 써준 십계명판을 던져서 깨부수었다. 야훼의 성질도 만만치 않다. 질투 많고, 잔인하고, 아주 무자비하다. 하! 혹시 모세의 성격이 야훼한테 투영된 거 아닐까? 탈출기를 쓰면서 모세가 자기 기질을 야훼한테 덧씌웠다는 얘기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탈출한 후, 모세는 유일신 신앙을 백성들에게 강요했다. 근데 그게 "한 번 믿어볼래?" 수준이 아니었다. 계명과 율법을 들이대면서 어기면 바로 죽여버렸다. 백성들은 두려움 때문에 참을 수밖에. 근데 인간이란 게 참다가도 한계가 오는 법이다. 모세 반대파들은 은근히 때를 기다리며 반란을 꾸몄을 거다. 한 번 반란 일으켰다가 수만 명이 처형됐으니, 당연히 조심했을 거다. 반대파들은 백성들의 불만을 잘 들어주고, "힘들지? 괜찮아, 우리 편으로 와!" 이렇게 끌어들였을 거다. 결국 모세는 맥없이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백성들은 지긋지긋한 유일신교의 짐을 벗어던졌다.
1922년에 역사학자 에른스트 젤린이라는 사람이 <호세아> 예언서에서, 모세가 민중 폭동으로 죽고, 그가 세운 종교도 같이 망가졌다는 흔적을 발견했다. 이게 후기 예언서들에서 자주 나오는 전승인데, 젤린에 따르면 이게 바로 메시아 대망의 전조란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나서 유언을 남기는데, "야훼 섬기는 게 싫으면 네 조상들이 섬기던 신이나 지금 사는 땅의 신을 섬기든 알아서 해! 나와 우리 집안은 야훼만 섬길 거야!" 했다. 이 말은, 그 당시 이스라엘 조상들이 여러 신을 섬겼다는 증거다.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여호수아의 유언을 액자로 만들어 집에 걸어둔다. "너희는 공자든 부처든 마음대로 믿어. 난 하나님만 믿을 거야!" 다신교 사회인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호수아가 자랑스러운 유언을 남긴 후에도 사사나 왕이나 백성들은 우상 숭배를 계속했고, 그래서 이스라엘이 고난을 겪고, 외적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망했다고 성경에 쓰여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모세를 죽인 걸 후회하고, 그걸 잊어보려는 시기가 왔다. 그래서 야훼 종교를 유일신교로 포장하고, 이집트 탈출 사건을 유일신교 창설과 엮으면서 모세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감춰버렸다.
모세가 앞세웠던 야훼는 아주 독하고 피에 굶주린 신이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그 땅에 사는 원주민들을 모조리 죽이라는 신이다. 근데 사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이집트의 고센 땅이 가나안 땅보다 훨씬 좋았다. 고센은 나일 삼각주에 있었다. 이집트는 나일강 덕분에 번영했으니까, 헤로도토스도 이집트 문명을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했다. 가나안은 척박한 땅이었지만, 야훼는 아차! 그게 아니라 모세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백성들을 속인 거다.
야훼는 시간이 흐르면서 두 가지 모습으로 변한다. 하나는 제사와 의식을 요구하고, 아주 무자비하고 음침한 신. 또 하나는 믿음과 정의로운 삶을 요구하는 신. 첫 번째는 다윗 왕가가 섬기던 야훼고, 두 번째는 예언자들이 섬기던 야훼다. 유다왕국이 망한 후에는 예언자들의 신념이 유대교의 핵심이 되었고, 그것이 유대인들을 수천 년 동안 살아남게 한 원동력이다.
유대인들은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자부심으로 수천 년을 살아왔다. 근데 운명이 너무 잔혹했다. 그래서 선민사상을 유지하려면 "계명과 율법을 안 지켜서 나라가 망했다"는 죄의식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야훼의 전능함을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
후일 예수가 이러한 죄의식을 극복. 그는 간음한 여인도 구해 줄 뿐만 아니라 책망조차 안 한다. 자세한 건 구약성경 이야기를 끝내고 다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