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씨슬
나는 술을 좋아하지만, 즐겨 마시지는 않았다.
극악무도한 숙취를 가진 나는, 좀만 마셔도 곧바로 구토를 하고는 했다. 으으. 상상만 해도 힘들다.
이전에, 캐나다에서 곧 일본으로 떠나는 일본인 친구들의 마지막 날 기념으로 속도 안 좋은데, 술을 진탕 마시던 날이 있었다. 몸이 안 좋아, 안주도 한 입 못 먹어놓고 술은 왜 그리 마셨는지, 안 좋았던 몸에 술까지 더해지자 나의 몸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한참을 화장실에서 나오지도 않는 헛구역질만 해댔다. 네이버엔 '캐나다 구급차 가격', '캐나다 응급실 가격'을 검색했다. 겨우 술병으론 지불하기엔 큰돈이었기에, 나는 꾹꾹 아픈 속을 눌러 참으며 버텼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그날만 떠올리면, 속이 울렁거린다.
어디 그뿐인가, 친구들과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는데, 무려 7시간 동안 화장실에서 토를 했다. 그리고 목소리를 잃었다. 무려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그 해 새해를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의 마음을 절실하게 체감하며 살았다. 목소리를 영영 잃어버리게 될까 봐 너무 무서웠다. 다행히, 약국에서 처방받은 양이 효과가 꽤 좋았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레, 술을 조금 멀리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껏 취하면 그만큼 기분 좋은 게 없었지만, 곧바로 화장실로 가 헛구역질을 하는 내가 힘들었다.
제주 살이를 하며 가장 걱정이 되었던 부분도 '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날에 취하지도 않았는데 토를 했다. 이런 내가 지긋지긋했다. 아, 앞으로 한 달 동안 어떡하지.라는 막막함도 몰려왔다. 당연히, 술을 강요하는 분위기도 아니었지만, 내가 술을 싫어하는 건 아니기에 나도 같이 술을 마시고 재밌게 술게임도 하고 놀아보고 싶었다.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닌 탓에, 술자리에 대한 작은 로망도 있었다.
그러던 나에게, 구세주가 나타났다. 바로 '상진맘'의 등장. 술은 별로 안 마시면서, 우리에게 앞으로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요리를 척척. 안주도 척척. 제주 살이의 행복을 책임져줄 구세주가. 존재만으로도 빛인데, 둘째 날, 우리에게 '밀크씨슬'을 건네주는 게 아닌가...
나는 웬만한 숙취해소제로도, 헛구역질이라는 숙취를 없애지 못해 왔기 때문에, 그냥 주는 대로 먹기만 했을 뿐인데,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나는 그 이후로 단 하루도, 헛구역질에 시달리지 않았다. 밤새 마시고 해장까지 말끔하게 할 정도로 멀쩡한 몸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밤을 지새우며 추억이란 것들을 만들어 나아갔다.
넘치도록 건전하고, 수다스러운 밤들의 연속이었다. 나와 오랜 친구이지만 늘 어딘가 마음 한편에 빚이 있던 내 친구와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고, 초면에 많은 내 비밀들을 공개한 친구도 있다.
남몰래 나 혼자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엉엉 운 날에, 퉁퉁 부운 눈을 숨겨준 사람도 있고, 내가 참 못났다고 생각했던 시기에 뭘 해도 항상 이쁘다 최고다 외쳐준 사람들이 있다.
나는,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나의 모든 것들은 사랑하게 됐다. 나의 얼굴, 몸, 표정, 목소리, 행동 어느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었는데. 술과 제주 그리고 좋은 사람들이 함께하니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우리의 음주 루틴은 간단했다.
주막에서 일하는 사람이 12시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우리의 술자리는 그때서부터다. 12시 전까지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함덕 바다에서 놀거나, 차가 있는 친구들과 제주 구경을 하고는 한다. 사실 제일 빠른 근무시간도 4시~5시부터이기 때문에, 주로 오전 중에 다 같이 놀고 오후에는 남은 인원끼리 함덕 주변에서 바다를 구경하거나, 쪽잠을 자고는 한다. 독서를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다 같이 수다를 떨기도 한다. 12시에 모든 인원이 모이면, 우리는 한바탕 상진맘이 해준 다양한 저녁을 안주삼아 먹는다. 어떤 날은 마라탕, 어떤 날은 제육볶음, 어떤 날은 나베, 또 어떤 날은 회가 되기도 했다. 비 오는 날엔 해물파전을 부쳐먹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상진맘의 감자전이 원픽이었다. 이런 다양하면서 레스토랑 뺨치는 안주 덕에, 우리의 술자리는 한층 풍요로워졌다.
그렇게 해가 뜰 때까지 술을 마시고, 대화를 하다 보면, 해가 뜬다. 각자 너무나도 다른 세상에서 살다가, 우연히 제주도에서 만난 열댓 명의 사람들은, 매일 해가 뜨는 걸 질리도록 봐도 주제가 마르지를 않았다. 떠오르는 일출을 보면서 발걸음은 바다로 향한다. 곧이어 도착한 바다에서 한껏 아침을 즐기고 나면, 우리는 바로 앞에 있는 해장국을 한가득 품에 안고 집에 돌아온다. 바다에 오지 못하고 먼저 잠에 곯아떨어진 친구들을 위해, 해장국을 한상 가득 차려놓으면, 좀비처럼 슬금슬 금나와 한 명 두 명, 해장국을 먹기 시작한다.
늘 그랬다. 누구 하나 약속도 안 했는데, 뭐든 함께하려 했다. 밥을 먹어도, 어디를 가도, 최대한 서로에게 맞추고 같이 하려고 했다. 바닷가에서 캠핑을 해도, 일끝난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게 바로바로 데려갔다. 함덕 뚝방에 앉아, 일이 끝나 돌아오는 친구들을 기다렸다. 술자리도 12시에 일 끝나고 돌아오는 친구가 외롭지 않게 늘 함께 시작했고, 밥도 함께 먹었다. 종종 육지에 살던 친구가 놀러 와 외박을 하다 돌아오는 날에는, 각종 기념품이나 먹거리들을 포장해 와 나눠먹고는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르던 사이였는데, 금세 가족처럼 편안해졌다. 그런 따스한 마음들이 모여 나는, 꽤 오랜만에 행복이란 걸 느껴봤다.
코로나로 들썩이던 그 해, 대한민국 제주도 함덕 바다에서 우리는 행복과 청춘이라는 술에 한가득 취해 있었다.
* 과도한 음주는 건강에도, 정신에도 좋지 않다. 특히, 게하 살이 같은 경우는, 집을 따로 갈 필요가 없어서 본인도 모르게 과음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본인 몸은 본인이 챙기자.
*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게스트하우스엔, 늘 좋은 사람들만 있을 리가 만무하다. 좋은 사람이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명심하자.
* 사람마다 몸에 맞는 숙취해소제는 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밀크씨슬 강추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