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뮤즈
제주살이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였다.
- 결 -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는 제주살이의 시작이었다.
일단, 첫 결심은 오랜 연애의 끝과 동시에 퇴사의 결심이었다.
근데 뭐 현실은, 다들 그렇듯. 출근하다 보면 그 우울함도 사라진다. 정신없는 현실에 치이기 마련이다.
서울역 물품보관함에 급하게 싼 캐리어를 넣어놨다. 퇴근하자마자 달려가 짐을 빼고 김포공항으로 갔다. 태어나서 첫 혼자 여행인, 제주도에 가게 된 것이다.
계기는 간단했다. 나한텐 꽤나 멋진 삶을 살아가는 내 멋진 친구가 남들보다 일찍 취업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으나, 딱 하나. 제주살이를 못해본 게 후회가 된다는 것이었다. 듣자마자, 나는 한 번 홀로 제주도를 여행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녀오고 나서 결심했다.
그래. 제주도로 떠나자.
제주 살이를 결심하자마자,
내 제일 친한 친구가 엉엉 울면서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고서는 나를 붙잡고 본인도 제주도에 가겠다고 엉엉 울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고 싶었던 나는, 비록 친한 친구라지만 사실 그리 달가운 제안은 아니었다. (미안 친구야.)
졸지에, 재미 삼아 본 타로집에서는 나는 아무 데나 가도 괜찮은데, 내 친구 '지우'만큼은 술과 남자가 있는 곳을 멀리하거나, 나와 가라 하지 않는가...
제주 게스트하우스 스텝에 '술'과 '이성'을 빼면, 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해도 무방했다. 우리는, 최대한 그런 곳을 찾아 지우가 갈 수 있기를 바랐지만 유일하게 '합격'문자가 온 게하에서는 여자 입주자가 없어서 무려 일주일 동안 남자'만' 8명이 있는 곳에서 지내야 하는 곳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결국 나는 같은 게하에 가기로 결심했다.
우리의 시작과 끝. [뮤즈] 게스트하우스로.
첫 시작은 실망의 연속이었다. 누가 봐도 낡은 컨테이너 하우스인 게스트하우스와, 귀신의 집 같은 별장 하나. 그리고 몽골에서나 볼 법한, 게르 두 채가 전부인, 작고 낡은 게스트하우스였다.
어찌나 낡고 으스스한지, 담벼락에 붙어있는 뮤즈 게스트하우스의 글씨는 거의 떨어져 자국만 남아있었다.
'.... 망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이곳에서, 나는 망했다.. 탈주하고 싶다.라는 생각만 가득한 채, 빨래를 널고 있는 상진이를 마주한다. 뮤즈 공식 '엄마'와의 첫 만남이었다. (줄여서 상진맘)
생각보다 뮤즈 내부는 깔끔하고 좋았다. 높은 천장이 마음에 쏙 들었다. 사장님은 숙소에 상주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높은 천장. 귀여운 검은 고양이 '장고' (장화 신은 고양이가 풀네임이다). 그리고 우리를 환영해 주는 낯선 사람들.
게하에 준비되어 있는, 스타렉스를 타고 사장님이 일하고 계신다는 [함덕 주막]으로 향했다. 요리를 하시며 반갑게 인사해 주시는 사장님과 함께. 그렇게 첫날밤은 시작되었다.
수줍게 찍어본 첫 식사
장고
뮤즈 내부.
장고는 너무 귀엽다.
* 시기는 2021년도 8월 말~10월 중순까지다. 대부분 한 달 살기로 시작해서 한참을 더 버티다 가고는 한다. (잔액부족이 뜰 때까지, 라면만 먹으면서도 버틴다. 대단한 사람들 = 나 포함)
*코로나가 한창인 시기였기에, 아쉽게도 게스트는 받지 않았다. 대신 스텝들이 8~12명이라, 외롭진 않았다.
*게하 운영대신, 파티장으로 쓰시던 곳에 '함덕주막'을 차리신 사장님을 도와 주 2회, 4시간씩 서빙을 했다.
*우리만의 못할 비밀이지만, 그래도 첫날밤은 정말... 누군가의 흑역사이자 이제는 웃으면서 말하는 안줏거리다. 00야 보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