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간의 글쓰기>
2주째 복숭아를 솎다 보니 집에 와도 복숭아 열매, 복숭아 잎, 복숭아 가지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오늘은 사다리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큰일 날뻔했다. 다치지는 않았지만 심장이 철렁했다. 사다리를 타는 것은 위험하다. 겁도 많고 조심성도 많은 나는, 사다리를 타기 전에 땅에 잘 고정이 되었는지, 항상 몇 번씩 발로 쿵쿵 확인을 하고 올라간다. 그럼에도 복숭아를 솎는 동안 이렇게 몇 번은 철렁한 순간을 겪는다.
말은 느려도 손은 빠른 내가 복숭아를 솎는 방식은, 가지 끝을 살짝 잡아당겨 매의 눈으로 사진을 찍듯이 빠르게 스캔을 한 뒤, 제일 큰 열매를 남겨두고 나머지는 미련 없이 우두두두 솎아버린다. 보통 한 가지에 튼실한 열매 하나 또는 두 개를 남겨두는 방식이다.
하지만 크다고 다 살아남는 건 아니다. 크기만큼 중요한 것이 그 열매가 달린 위치와 방향이다. 보통 가지 끝이나 가지 안쪽은 피한다. 가지 안쪽에 있는 애들은 희한하게도 힘이 없다. 커다랗다 해도 쉽게 떨어진다. 하늘을 향해 90도로 달린 애들도 약하다. 그렇다고 땅을 향해 달려있는 애들도 튼튼한 건 아니다. 결론적으로, 중간쯤에 가지와 비스듬히 달린 애들이 가장 좋다. 그래야 햇빛도 가장 넓게 받고, 비바람도 가장 잘 흘려보낼 수 있다.
이 모든 원리와 이유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솎다보면 그렇게 안 될 때가 있다. 나의 실수로 더 큰데 따버리고, 더 작은데 살아남고. 그럴 땐 정말 속이 상한다. 그러다 어느 날은, '그래 너도 한번 살아보렴. 이 세상이 그렇잖니. 꼭 가장 크고 좋은 것만이 살아남는 것도 아니잖니' 하는 마음이 찾아온다. 그러면 내 실수가 조금은 싱거워지고, 이곳에서 작아질 대로 작아진 나 스스로를 살려주는 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원리와 이유가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다. 작아서 솎아버리려고 열매를 잡았는데 그 열매에게서 힘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가지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는, 그 강력한 '생의 의지' 앞에서 나는 마치 큰 형님에게 인사하고 물러나듯 손을 거두게 된다.
복숭아를 솎으며 작은 열매에게 배운다. 작아도, 부족해도, 모자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 내 안에 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