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간의 글쓰기>
다이소에서 백일홍 씨앗을 사 왔다. 몇 해 전 자전거를 타고 가다 어느 집 대문 앞에 활짝 피어 있는 백일홍 무리를 본 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형태의 꽃은 아니지만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의 꽃들이 어울려 피어 있는 모습이 예뻐서 우리 집에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처음 본 백일홍 씨앗은 바짝 마른 낙엽처럼 가벼웠고 탑시기처럼 초라했다. 이름 없이 있었다면 누군가 씨앗인 줄도 모르고 그냥 '후' 하고 불어버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집 앞 화단에 풀을 뽑아준 뒤 바람에 날리듯이 씨앗을 뿌려주었다. 봉투 안쪽 구석에 달라붙어 끝까지 떨어지지 않는 한 녀석은 봉투에 물을 담아 그대로 땅 위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 위에 여름 홑이불 덮은 듯이 흙으로 살짝 덮어 주었다.
그렇게 백일홍 씨앗을 잠재워 두고, 나는 다음날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3일째 되던 밤은 문득 내가 심어 두고 온 씨앗들이 잘 있나 궁금해서 마음이 뒤척이기도 하였다.
5일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잠자던 씨앗은 어느새 이불 밖으로 나와 연초록 새싹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렇게 금방 싹이 돋다니.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구근만 심다가 이렇게 금방 싹이 나는 백일홍 씨앗이 신기하기만 했다.
봉투 뒤에 설명을 읽어보니, 꽃이 피려면 두 달은 걸리는 것 같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너의 결국은 꽃이 될 거라고, 활짝 핀 백일홍 사진을 언약의 말씀처럼 새싹들에게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