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곳은 세상 어디나 비슷하고, 옛 말 틀린 것 하나 없더라.
만 52세 생일을 며칠 앞둔 나는 참 다양한 곳에 다양한 모습으로 살았다. 태어나고 자란 곳은 부산, 중학교부터는 서울, 부모님이 이민 가신 뉴욕, 대학 다닌다는 핑계로 미국에 따라가지 않았는데 남편 직장 때문에 나도 뉴저지로 이주, 그곳에서 태어나고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딸, 그 아이가 8살 되던 해 떠났던 아시아 주재원생활--도쿄, 홍콩, 베이징, 타이베이,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온 지 반년차. 결혼 27년에 18번째 집에 살고 있다. 여기서 18번째란, 3개월 이상 살면서 은행이나 관공서에 주소지를 등록한 곳만 센 수치다. 그러니까 집이 준비되기 전이나 집 계약이 끝나고 다른 곳으로 떠나기 전, 한 두 달씩 머물렀던 지인집의 문간방 혹은 호텔이나 장기투숙숙소는 포함되지 않았으니 내 인생은 짐을 싸고 풀고, 또 싸고 풀고의 연속이었다. 결혼하기 전에도 기숙사, 하숙집, 자취방 등등에 살았으니 나는 프로 이사러(?)다.
어렸을 땐 '나는 왜 제대로 된 고향이 없냐'가 불만인 적이 있었다. 부산이 부모님의 고향이 아니었던 탓에 나는 고향에서 이방인이었다. 친구들이 쓰는 부산사투리를 다 못 알아듣는데 어떻게 거기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겠나. 몸이 약한 데다 극단적인 내향형인 나는 친구네 놀러 가는 일도 없어서 부산 살면서 회를 단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내륙출신인 부모님이 좋아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집에서는 안 먹으니까. 사투리를 모국어(?)처럼 구사하게 된 그 찰나, 서울로 이사가게 되었고, 원래 서울말을 쓰던 나는 막연히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서울말을 원어민처럼 구사하니 무리 없이 친구들 사이에 녹아들어 간 것까진 좋았는데, 내 사고방식이 부산식으로 고착되어 있어 서울도 내가 상상하던 고향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경상도사투리 촌스러'라는 말을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는 친구들과 어떻게 교감을 나누겠나. 난 부산사람인데. 대학진학 후, 어느 친구가 그랬다. 내 생각이나 행동이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부산에서 상경한 동기들을 보니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고. 나는 서울에서도 이방인이었던 거다. 하지만 대학시절, 전국에서 모인 동기들 사이에서 나는 '강남애'로 분류되었다. 그렇다. 전학 온 곳은 1980년대에도 악명높던 강남 8학군이었다. 우리집이 부자도 아니었고 딱히 치맛바람이 대단해서 선택한 것도 아니라, 고등학교 다닐 때는 그닥 특별하다 생각하지 않았었다. 우리 다 강남애들인데 '너 강남애다' 그렇게 불렀겠나. 현실은 서울 안에서도 강남은 또 특별한 곳이라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해 강남애들끼리 다닐 수밖에 없어 나는 '강남애'가 되었다. 자기들도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잘만 사 먹으면서 우리가 사 먹으면 '사치하는 강남애'의 표본이 되었고, 강남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내가 하지도 않은 말, 행동 때문에 손가락 질 받는 일도 왕왕 있었다. 쏙알맹이는 부싼사람, 겉모양은 강남언니. 극단적인 부조화, 그것이 나였다.
아마 그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지명으로 내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 살아온 곳에서 겪고 들은 모든 것이 모여 '나'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그도 꽤 괜찮다고 받아들이게 되었고, 외국인 회사에 다니니 그 특이함이 내겐 장점이 되었다. 여기저기 부대끼느라 수완도 좋고, 넉살도 좋아진 나는 직장에서 승승장구했다. 결혼하고 이사를 더 많이, 자주 다니게 되면서 사고방식을 본격적으로 바꾸기로 했다. 남편이 돈 벌고, 내가 밥 지어먹고 사는 곳이 고향이라 여기기로. 그게 유목민 아닌가. 생계를 위해 기르는 가축의 먹이를 따라 이동하며 사는 사람들. 나는 가축을 키우지는 않지만 생계를 위해 이사 다닌 다는 점은 같지 않나. 21세기형 유목민. 바로 나다.
덕분에 나는 고향이 참 많다. 얼마나 행운인가. 가끔 그곳들에 돌아갈 기회가 있는데, 공항에 내리자마자 집에 돌아온 듯이 너무나 익숙하다. 극단적인 길치인 나도 자연스럽게 시내를 활보한다. 한 번도 떠난 적 없었던 것 처럼. 도처에 고향이 있으니 세상이 다 내 것 같다. 못 알아듣는 말을 쓰는, 이상한 냄새도 나는 낯선 곳에 난데없이 떨어지면, 나라고 가자마자 바로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고향이라 여겨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면 생각보다 재미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나에게 맞는 것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가는 곳마다 현지언어를 열심히 익히다 보니 4개 국어를 구사하게 되었고, 사전 있으면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몇 개 더 있다. 현지사람이랑 대화하고, 그들이 누리는 것을 체험해 보고, 여행을 다니며 오랜 시간 내공이 쌓이니 서로의 다름에 너그러워지고, 또 용감해지는 것 같다. 호기심이 많은 내게 도파민이 대방출되는 것은 덤이다.
아직 못 가 본 곳이 더 많지만, 아직 50여 년 밖에 살지 않았지만, 그 꾸준한 노력을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은 '사람 사는 곳은 세상 어디나 비슷하고,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라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이제부터 그 모든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