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서 내 소개를 하면 항상 듣는 소리다.
세상을 다 구경 다니며 살면 얼마나 재미나겠냐고. 너무 부럽다고. 남편 잘 만나서 좋겠다고.
물론, 나는 좋다. 강력한 호기심을 타고 난 나는 책에서 본 장소에 직접 가 보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짜릿하고 좋다. 이렇게 구경 다니며 내적성장을 할 기회를 준 남편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그러나, 남의 나라에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는 것이 즐거운 일만 가득할 것인가.
주재원은 영어로 Expatriate 줄여서 Expat(엑스팻)이라고 한다. 다음 영어사전에 의하면 Expatriate의 뜻은 [1. 국적을 버리다 2. 고국을 떠나다 3. 국외로 추방하다]이지만 구글을 검색해 보면 [본국을 떠나 정해진 기간 후에 귀국할 의도를 가지고 외국에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2025년 현재는 삼성 같은 한국기업이 글로벌 대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외국인 회사에 다니던 1990년대나 Expat이 되어 아시아에 왔던 2011년에는 한국발 주재원과 서방국가발 Expat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특히 혜택면에서.
미국회사에서 아시아로 파견되는 지사장급이면 혜택이 정말 좋다.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확장하기 위해 그 나라의 재벌이나 사는 부촌의 대저택, 자가용과 기사, 자녀가 몇이건 국제학교 등록금이 제공되고, 웬만한 건 비서언니가 해결해 준다. 지금이야 아시아의 인프라가 훨씬 좋지만 예전에는 아시아는 저개발국으로 인식하여, 우월한(!) 미국을 떠나 아시아에서 그 모진(!) 불편함을 감수할 부인과 가족들의 저항을 고려해 그 외에도 그 비싼 아메리칸클럽 회원권(수영장, 골프장, 미국 프랜차이즈 식당 등등 없는 게 없다), 혹은 현지 최고 호텔의 회원권(돈 있다고 가입할 수 있는 곳 아니다), 일 년에 두 번씩 고국에 다녀갈 수 있도록 아이들까지 가족 모두 비즈니스클래스 비행기표를 제공하는 등, 본국에서는 들어 본 적도 없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지사장급이 아니더라도 외국으로 파견될 때는 회사에서 중요한 임원이라, 자녀의 등록금과 고가의 안전한 주택, 등 여러 가지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임지에서는 매일 불평을 입에 달고 살던 와이프들도 고국에 돌아가고 나면 주재원 다시 나가고 싶어서 안달하는 경우도 많다. 가사도우미까지 쓰면서 여왕처럼 살다가, 열두 시 종 친 다음의 신데렐라가 되고 나니 못 견디겠다나.
이렇게 써 놓으니 여왕놀이가 따로 없다. 그러나 현실은, 여왕이 아니라 인질이다. 럭셔리한 생활에 금세 중독된, 그 혜택이 없어지면 고통스러워질 가족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남편들이 딴생각하지 말고 그만큼, 아니 그 이상 실적을 뽑아내라는 뜻이 뒤에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가족도, 속 시원하게 수다 떨 친구도 없는 낯선 곳에서 럭셔리한 집과 혜택을 누리는 것이 너무 좋은 것도 잠깐이다. 피부양자 비자를 받으면 일을 할 수 없으니, 본국에서 아무리 잘 나가던 커리어우먼이라도, 몇 달 안에 새벽부터 도시락을 싸느라 졸린 눈을 비비며 부스스한 머리를 질끈 묶고 루루레몬 쫄바지를 입고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주자마자 스타벅스로 뛰어가는 그냥 아줌마가 된다. 집에만 오면 우울하다. 가정주부 엄마가 우울증 걸리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대단하다 보니 학교에서는 엄마들 모임을 자주 만들어 주는데, 가 봐도 서로 누구 남편이 더 잘 나가나, 누가 더 비싼 옷 입었나 서열싸움을 하고, 사실인지 비사실인지 확인이 불가능한 '카더라'가 판친다. 좀 더 친해지면 살고 있는 그곳이 얼마나 미개한 가에 대해서 서로 침을 튀기며 토론하는데, 말을 하면 할수록 그 나라에 살기가 더 싫어진다. 여름방학 하는 날 저녁 국제선 출국장에 가면 이들을 대부분 만날 수 있다. 동창회 수준이다. 그러고는 개학 전날 밤중에 도착하거나 심하면 당일 새벽에 도착해서 시차적응도 안 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다. 일초라도 그 땅에 발도 딛기 싫은가 보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진저리를 치며 임지를 싫어하고,목소리를 높여 욕을 욕을 하는 아줌마일수록 빨리 사라진다. 본국으로 귀환명령을 받거나 더 미개한(?) 나라로 좌천되어 울며 떠난다.
이 불쌍한 아줌마들의 극심한 스트레스의 진짜 원인은 남편은 현지 스텝들의 보좌를 받으며 일하러 간 사이 이 낮선 곳에서 아이와 함께 밥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서언니는 남편의 업무를 보좌하는 사람이지 나를 따라다니면서 쇼핑해 주는 사람은 아니지 않나. 심한 경우, 비서언니가 전화해 주지 않으면 집 밖으로 나가지도, 배달을 받지도 못할 수도 있다. 집에 가만히 있으니 공포나 분노가 증폭된다. 그 상황에 아무것도 모르는 곳에서 빈 집을 채운 다고 생각해 보라. 신혼집을 꾸며 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것이다. 아담한 사이즈의 집이라도 밥 먹고 살도록 빈 집 채워 넣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그나마 가족, 친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평생 살아왔으니 기본으로 아는 것도 있어도 힘든데, 말도 안 통하고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는 곳에서 집을 채운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예를 하나 들어주겠다.
빈 집에 들어간 첫날, 샤워는 해야 해서 부랴부랴 슈퍼에 간 당신, 샴푸를 찾아라.(사진은 대만이다)
윽..
샴푸 말고도 샤워젤, 비누, 티슈, 바디로션, 핸드크림, 면봉, 타월 등도 사야 하는데, 여기서 딱 막힌다. 뭘 집어야 하나. 옆에서 어린 딸내미는 다리 아프다고 징징대고, 지친 남편도 빨리 고르라고 눈치 준다. 안드로메다로 탈출하려는 정신을 겨우 붙잡아 자세히 보니, 마침 아는 상표가 있다. 팬틴. 미국에서와 똑같은 디자인의 용기에 들어있어서 눈에 띈다. 영어로 Pantene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면 반가워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흐음.... 도대체 어느 것이 샴푸고 어느 것이 컨디셔너일까. 한자를 모르면 절대 알 수 없다. 저 마음속 어딘가서 폭발이 느껴진다. 어디다 퍼부어야 하나.
이건 일본에서 파는 팬틴 샴푸, 컨디셔너다.
2011년, 처음 Expat이 되어 동경의 어느 슈퍼에 갔다가 이걸 보고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었다. 8살인 딸에게 푸하하 웃으며 말했다. '어느 것을 할까요' 해봐. 어느 게 샴푸고, 어느 게 컨디셔너일까. 우리 딸은 아직도 그날을 기억한다. 엄마는 장난처럼 웃으며 말했지만, 말을 몰라서 무력했던 그날을. 현지어를 모르면, 도와줄 사람도 없으면 샴푸 하나 살 수 없다. 이 이야기를 들은 모든 Expat 아줌마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박장대소를 하며 격하게 공감한다. 샴푸 하나 사는데 이런 심력을 써야 하니, 다른 것은 말해 뭐 하겠나. 쌀, 소금, 식용유, 계란, 간장, 식초 등등, 다 모르는 상표뿐이고, 같은 상표라도 종류가 엄청 많다. 뭘 골라야 하나.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
한국에서 파는 팬틴이다. 샴푸, 컨디셔너 글자는 왜 이리 작은 건가. 스티커를 떼고 나면 나 같은 노안은 구분이 잘 안 된다. 팬틴 회사에 민원이라도 넣어야 하나.
물론 요즘은 AI가 잘 번역을 해 줘서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그도 만능은 아니다. 번역이 더 이상한 경우를 아직도 많이 본다. 그럼 어떡하나. 당장 필요한데.
여기에 더해서, 익숙지 않은 냄새, 익숙지 않은 기후, 문화권에 따라 다른 상품 진열 패턴(보물찾기 하는 것 같다), 당연히 팔 줄 알았는데 없는 꼭 필요한 물건, 예상과 전혀 다른 은행과 관공서 시스템, 오지 않는 수리공, 영어가 없어 알아보기 힘든 버스노선, 나라마다 다른 쓰레기 버리는 규칙, 현지에서 오해를 사는 내 문화권의 습관, 빈 집에 이사 가면 한 번은 꼭 나오는 거대한 바퀴벌레, 알아듣기 힘든 브로큰 잉글리시.. 등등등
단점을 찾으려면 정말 끝도 없다. 게다가 어린 자식까지 데리고 낯선 남편 임지에 따라간다는 것은 내 개인의 불안감, 공포를 넘어, 어미의 동물적 본능—미지의 해악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해야 한다—을 극단적으로 자극하는 일이라 더더욱 고통스럽다.
이 모든 걸, 공포심과 짜증을 가득 장전한 정신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겪고 살아야 한다면 남의 나라 살이가 그저 너무 재미있겠다 말할 수 있을까? 평균 2-3년에 한 번, 짧으면 1년마다 이 짓을 또 해야 한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