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ulture의 위상 6
집구석에서 드라마나 보는 여편네
드라마와 여성, 그리고 전업주부를 한큐에 비하하는 발언을 심심치 않게 듣던 때가 있었다. 내가 어렸던 1980년대. 아이는 당연히 셋 이상 낳았고, 시부모도 봉양하고, 가전제품의 도움 없이 요리, 빨래, 설거지는 물론이고 시장에 갈 때도 애기를 둘러업고 둘은 걸리고 짐을 바리바리 들고 집에 오는데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그 노동강도가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이 큰데도, 잠깐 휴식하는 동안 드라마 좀 봤다고 저런 모멸적인 말을 들어야 했더랬다. 콧대 높던 은막의 스타들을 TV드라마에 출연하게 했던 것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독재정권이었다니, 드라마가 어떤 천대를 받았는지 상상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어려서 보았던 드라마 중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룬 고퀄리티 드라마도 많이 있었는데, 신문이나 매체에서는 여전히 은근슬쩍 드라마를 싸구려라 매도하는 일이 잦았다. 그 시절, 엄마들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이 드물었고, 한자가 가득 박힌 신문은 아버지들의 전유물이라 더 거리낌 없었던 것 같다.
1990년대 초반 이민 간 가족들을 만나러 미국에 가면, 거실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수북이 쌓인 드라마 비디오였다. 당시 드라마 대여소가 인기 있는 비지니스였을 만큼, 교포들이 고향이 그리울 때 보고 또 보는 것이 드라마였고, 옆에 있다 보니 나도 여러 편 같이 보게 되었다. 사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동안은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었고, 있다고 한 들, 방영하는 시간에 직관해야만 볼 수 있는데 노느라 바빠 그 시간에 맞춰 집에 오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오히려 비디오가 있으니 빠짐없이 볼 수 있어서, 가족과 함께 드라마를 보면서 배경으로 나오는 커피 전문점이라던지 대학생들이 가는 MT라던지에 대해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2002년, 그 유명한 '겨울연가'가 방영되었다. 그 해의 나는 미국에서 여러 가지 격변을 겪는 와중 딸을 출산하느라 드라마를 보지 못했는데, 대히트를 했다고 했다. 잘생기고 예쁜 배우들, 눈물이 펑펑 나는 스토리,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멋진 배경과 영상미. 문제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의 아줌마들도 완전히 매료해 버렸다는 데 있었다. 욘사마, 지우히메에 열광하던 그녀들의 남편은 매일 야근 후 집에 가기보다는 야키토리와 맥주 한잔으로 위안을 삼으며 집에서는 잠만 자는 탓에 텅 빈 집에서 혼자 클로즈 업 해 주는 멋진 남자 주인공의 따뜻한 눈빛을 보고 홀려버렸다는 것이 당시의 평이었다. 2005년, 한국에 가느라 마일리지로 공짜표를 끊었더니 도쿄에 스테이오버 한 후 한국에 가는 여정이었는데, 도쿄-서울 노선에는 그야말로 일본 아줌마들이 꽉 차게 타서 정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대한항공 기내에 비치된 책자에도 욘사마의 소식과 드라마 성지순례 정보로 가득 차서 혀를 찼다. 그렇게 대단한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비디오 가게에서 겨울연가 전편을 빌려서 보았다. 아. 잘 만들었네. 그 사이 '겨울연가'의 많은 부분이 누구나 아는 클리셰가 되어버렸지만. 그런데 왜 그렇게도 외로운 아줌마들의 소란 정도로만 치부되는 것이지? 의아했다.
2005년. 대부분의 한국 가정에 초고속인터넷이 설치되고, 아줌마들이 텔존이나 각종 팬카페 같은 온라인커뮤니티에 모여 채팅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우연한 기회에 가입해 보니 해학 넘치고 재주 많은 똑똑한 아줌마들이 넘쳐났고, 컴맹이라던 그들이 열심히 배워서 만들어 올리는 영상과 재미난 글들에 매료되었다. 아줌마들이 모여서 드라마 구성이나 개연성, 그리고 연기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했고, 드라마게시판에서 설전을 벌였다. 인구에 회자되다 보면 민족 전체의 염원을 담게 된다고 했던가. 아줌마들의 적극적인 성화로 여성비하적인 발언이나,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의 손을 획 잡아끌고 가 윽박지르는 등의 폭력적인 장면이 점점 사라졌다. 시청자의 반응을 보고 다음 회를 집필한다던 작가들의 작품도 드라마 제작스텝들의 극한강도의 노동을 제물로 삼는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점차 사전제작으로 바뀌었고, 매번 똑같은 신데렐라 스토리나 삼각관계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들이 시작되었다.(여전히 제작현장이 열악하다고는 들었지만, 더 나아지기를 바라본다). 그 무렵 한국드라마팬은 일본뿐 아니라 동남아에서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동남아에서의 인기 비결은 여러 가지로 사회적 압박을 받으며 사는 여성들에게 혼자 독립해서 멋지게 사는 싱글 커리어우먼이 자주 나오는 한국드라마에 매료된 것이라 했다.
그즈음 되자, 한국이 뭔가 잘하면 꼭 나타나서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무슨 전문가라면서 전문용어와 수치를 들이밀며 논리를 전개해 간 그들의 주장을 대충 다음과 같았다.
1. 수준이 거기서 거기인 한국드라마는 잠깐 신기해서 일부 외국인 여성에게 인기가 있을 뿐이지 결국 그나마도 일본의 압도적인 자본에 잠식되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기는 형국이 될 것이다.
2. 그 일부의 외국인 여성도 (더 수준 낮은) 저개발국 여성이기 때문이 그렇다.(이 의견은 인종차별적이라는 비난에 금방 쑥 들어갔다)
3. 한국드라마를 보는 외국사람들을 '면밀히'조사해 보았더니, 한국드라마가 서양드라마에 비해서 저렴하기 때문에 보는 것이다. (휴식을 위해 볼 드라마를 고르는데 몇백 원 차이 안나는 가격 때문에 한국드라마를 본다고???)
2011년 여름. 일본에 이사 가서 본 것은 한국드라마에 여전히 열광하는, 일본에서는 패전일이라고 불리는 8월 15일에도 한국 식당이 꽉 차도록 모여 삼겹살을 구워 먹는 일본 여성들이었다. 그 유명한 시부야 교차로에는 아이유의 뮤직비디오가 나오고, 한류스타의 대형사진이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그해 가을 일본의 휴일에 딸내미와 한국에 가려 탔던 비행기에는 일본여성들로 만석이었는데, 그들이 들고 있는 한국여행 가이드북에는 나도 모르는 한국 내 여행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 비용 등이 자세히 적혀있었다. 뒷골목 어딘가에 있던 게장식당에는 캐리어를 옆에 두고 삼삼오오 몰려 앉은 일본아줌마들이 게장을 흡입하고 있는 걸 보고나니 여기가 일본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TV를 켜면 한국드라마가 여러 채널에서 흘러나왔고, '간코쿠료리 다이스키'(한국요리 너무 좋아)를 외치는 순수한 일본사람들이랑 친해지기도 했는데, 그들은 한국드라마에 항상 나오는 가족들과 밥 먹는 장면이 가장 부럽다고 말하곤 했다.
2012년 여름.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강타했던 그 때, 당시 대통령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독도를 전격방문했다.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실효지배를 하고 있는 독도를 그런 식으로 이슈화 해 봐야 한국에 득이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안 가는 것이었다고 들었는데. 문제는 그의 독도 방문을 보도함과 동시에 일본의 모든 매체가 기다렸다는 듯이, 어쩌면 오랫동안 준비한 듯이 일제히 매일, 매시간대에 혐한방송을 했다. 한국드라마는 방송중지 되었고, 그 시절 일본이 만든 드라마에는 2차 대전 시 일본인이 얼마나 애국적으로 치열하게 싸웠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거나 원폭피해자임을 강조하는 애국주의적 내용으로 넘쳤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주어지는 전단지에는 열등한 조센징이 얼마나 일본사회에 바퀴벌레 같은 존재인지 설명하는 글과 이해를 돕기 위한 만화가 그려져 있었고, 방송에서는 한국드라마나 강남스타일의 히트 뒤에는 한국 정부의 강력한 서포트가 있어 가능한 것이라고 거의 모든 일본인들이 외울 만큼 떠들었다. 무척 불행해 보이던, 그리고 내게 열등감이 폭발하던 어떤 일본 여자는 나를 보자마자 버럭 화를 냈다. 강남스타일 유튜브 조회수는 정부가 알바를 고용해서 올린 거라며, 그거에 비하면 우리! 일본의 '캬리 파뮤파뮤'는 스스로 세계 공연 투어를 다니는데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 줄 아냐고 윽박지르면서도 말춤을 직접 추어 보이며(!) 이게 뭐가 재미나냐고 발악했다(물론 그 주변의 제정신인 일본아줌마들이 붙잡아서 육탄전은 막았다). 결국 전 세계가 열광하던 강남스타일이 길가에 울려 퍼지지 않는 유일한 나라 일본에서 그 여름을 지내게 되었다. 혐한을 외치는 그 절실함 만큼의 일본인의 위기감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2014년, 드디어 나는 일본을 떠나 홍콩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홍콩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본 건, 그 넓은 공항청사 내의 모든 벽에 붙어 있는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김수현 씨의 사진이었다. 샘소나이트 가방을 선전하는 것이었지만, 여기가 한국인지 홍콩인지 헷갈릴 정도. 그러나 나는 홍콩시절부터 드라마를 보지 않게 되었다. 같이 드라마를 보고 품평하느라 매일 수도 없이 연락하던 친한 언니가 암으로 세상을 등졌기 때문이었고, 홍콩의 습한 날씨에 나의 허접한 체력을 가진 몸이 오작동을 하여 너무 어지러워서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냈기 때문이었다. 학교 가는 시간만 빼고. 그렇다고 잠이 오는 것은 아니었어서 누워서 핸드폰을 켜면, 인기 많은 드라마의 내용을 브리핑해 주는 신문기사들로 넘쳐났고 그 시절 모두가 가지게 된 스마트폰으로 더 쉽게 접속한 남녀노소 불문 수많은 사람들이 댓글란에서 의견을 나눴다. 가끔은 설전이었고. 가끔은 고소해야 할 만큼 폭언이었지만. 인구에 회자되어 첨삭을 겪으며 한국드라마는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명작으로 진화했다. 그런 걸 고전이라고 하던가.
2017년, 대만으로 이사한 우리 가족은 남편을 스카우트 한 회장님 소유의 복층 펜트하우스에 살게 되었다. 회장사모님이 탁월한 인테리어 감각을 가지고 계신 탓에, 잡지에나 나올 법한 고급 자재와 가구로 마감되어 있던 그 집에는 그보다 눈에 띄는 것이 있었는데, 그녀의 모든 동선에 TV가 달려있었다는 것이었다. 방은 물론이고 욕조 앞, 부엌에까지도. 몇 개는 떼려고 켜 봤더니, 하하하. 그 TV들 모두 한국드라마가 방영되는 채널에 고정되어 있었다. 대만은 혐한이 시작된 나라여서 기대 안 했는데, 더빙되어 방영하다 보니 한국배우들이 중국어를 유창하게 해서 웃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만이 한국드라마 수요가 엄청 크다고 한다. 뉴스 기사에도 안 나와 나도 들어 본 적 없는 아침드라마까지 대만의 공중파에서 방영하는 걸 보니 진짜 인기가 많나 보다.
2018년, 딸내미의 수업을 듣기 위해 둘이서 캘리포니아에 두 달 지내던 어느 날 한인슈퍼가 있는, 그 안의 모든 사람이 한국인인 몰에 갔다가 어느 미국인 엄마와 틴에이저 딸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딸은 K-pop 아이돌의 열렬한 팬이고, 엄마는 K-Drama 팬이라서 그 몰에 있는 굿즈샵에 왔다고 했다. 한국드라마의 어떤 점이 좋냐는 내 질문에 그 엄마가 살짝 수줍어하며 말했다.
"미국드라마를 보면 첫회부터 눈빛만 교환하자마자 다음날 침대에서 일어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한국드라마는 15회가 되었는데 이! 제! 손! 을! 잡았어!"
볼도 발그레 해 지며 눈도 크게 뜨며 열심히 설명하던 그녀는 한국드라마에 주로 나오는 '썸'의 간질간질함이 너무 좋다고 했다. 미묘한 감정의 교환. 잊고 있던 젊은 날의 풋풋한 감정이 되살아나서, 회춘한 것 같아서 한국드라마를 본다고. 아. 그렇구나. 그랬구나. 아.
2020년. 봉준호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4개 부분을 석권했던 그 해, 전 세계는 13세기 이후 들어 본 적 없던 팬대믹때문에 모든 나라가 국경을 봉쇄했고, 많은 사람이 고통받다 죽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 안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그때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한국 드라마 '킹덤'은 하필이면 역병을 파헤치는 용감한 왕자가 주인공이었어서, 그리고 드라마를 잘 만들었어서, 전 세계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주연배우의 얼굴이 맨해튼 타임스퀘어를 장식했다. 그리고 연이은 '오징어게임'의 대히트. 자막의 압박에도 계속 보게 되는 중독성 있는 한국의 드라마들의 선전. 그때 미국인에게 들었던 한국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지나치게 폭력적인 장면도 없고 다양한 인간군상을 잘 표현하여, 할아버지할머니엄마아빠자식들 온 가족 모두 모여 앉아서 볼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물론 드라마가 재미있어서 보는 것이지만, 그래서 같이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어서 좋았다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2025년. 며칠 전 본 K-pop Demon Hunters. 일본의 소니사가 제작해서 미국회사 넷플릭스에서 방영되지만 감독부터 참여한 사람들 모두 한국사람이고, 애니메이션이나 영웅물에 나오는 플롯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한국의 감성이나 세계관을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멋진 노래와 춤으로 놀랍도록 잘 엮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파도파도 나오는 새로운 모티브들. 극 중 호랑이 더피와 까치 수씨의 모티브인 '작호도'의 국립중앙박물관 굿즈는 납품되자마자 매진행렬이다.
그리고 어제 구글의 메인에 글이 하나 떴다.
K팝 데몬 헌터스, 우리가 정말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인가.
하하하 또 시작이다. 외국자본으로 만들었는데, 그게 우리 건가,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건가. 그런 내용이었는데, 하하하 십 년도 더 전에 답이 나온 일 아닌가. 그때 일본자본에 잠식되었던가. 오히려 이제는 그 일본을 넘어 서양자본도 같이 드라마를 만들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문화, 그 자체가 되었다. 쉽게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루이뷔통 가방은 합성소재,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비니루'로 만들지만,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 로고가 박힌 핸드백에 수백만 원을 기꺼이 지불하는 이유가 뭐겠나. 그 회사가 백 년도 넘게 쌓아온 우아한 브랜드 그 자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제 한국이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그 브랜드가 되었다는 말이다. 귀족이나 궁정의 유산이 남아있는 유럽도 아닌 곳에서, 그것도 악랄한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초토화된 동양의 조그만 나라에서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하고 싶을 만큼 전방위로 매력적인 문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단지 정부가 적극적으로 밀어준다고 가능한 일이었을까.
이 글을 써 놓고 오랫동안 퇴고하는 동안 영국의 BBC가 '전통이 트렌드를 만났다'며 한국 문화는 이미 '미국과 같은 서구시장의 주류'(mainstream in Western market)가 되었다는 논평을 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에 반만 동의한다. 한국 문화가, 한국드라마가 서구문화의 주요요소가 되었다는 늬앙스가 나는 불편하다. 몇 백 년 동안 서구에서 '문화'란 먼저 발전한 우월한 사람들이 누리는 문명이고, 아직 '미개'한 사람들에게 전수해 주는 것이라 문화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다라는 개념이 지배적이었고 식민지배의 정당화의 논리로 쓰였다. 다소 잔혹하지만(!) 빨리 문명에 도달하도록 이끌어 줬으니 고마워해라. 그러나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의 시대도 지나 이제는 서열을 따져 힘 있는 누군가가 명령하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수직적인 세상에서 개개인과 각국의 권리가 중요한 수평적 세계관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그를 증명하고 일상으로 만든 것이 K-Drama라고 생각한다. 특정한 우월한 인간들만 즐기는 문화가 아니라, 모두 같이 즐기는 수평적 문화. 문화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라면 작은 나라 한국의 문화가 이토록 세계인을 매료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그보다는 동양, 서양 문화 전체를 아우르는 세계 문화 패러다임을 바꾼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