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나의 애정하는 국립중앙박물관

K-Culture의 위상 7

by 유목민

파도파도 나오는 모티브.


지난 편에 K-Drama의 잠재력을 설명하면서 썼던 '파도파도 나오는 모티브'의 소굴, 나의 애정하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요즘 세계적인 박물관 리스트에도 오르고, 아시아에서는 1위이며, 케데헌의 성공 이후 오픈런을 해야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인기라고 한다. 역시 내 직감이 맞았어.


2009년, 7살이 된 딸에게 한국을 보여주려고 간 김에 국립중앙박물관에도 방문했었다. 당시 나는 역사학과 인류학 수업을 꽤 많이 들었던 터라 가능 한 여러 미국박물관들도 가 보고 대영박물관도 가 본 상태였다. 진입로부터 압도되는 멋진 건물과, 두 동 사이로 보이는 남산, 우아한 대리석 인테리어. 그것만으로도 우리나라 진짜 좋아졌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더 놀라운 것은 다른데 있었다.


미국은 대학의 필수 역사과목이 세계사이다. 인류의 발전을 설명하기 위해 전 세계 각 처에서 발굴된 해당 유물에 대해 배운다. 그런데 그 미국의 세계사교과서에 나오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의 유물과 함께 족장이 이끄는 수렵채집시절부터 부족국가, 왕국에 이르는 인류의 고대 발전단계를 빠짐없이 볼 수 있는 유물들이 정갈하게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것도 전부 다, 모두, 한반도에서 출토된 유물로만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미국 같은 경우는 역사가 짧고, 아메리카 대륙의 고대를 보여주는 유물은 대부분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미국원주민 Native American의 소유이기 때문에 함부로 발굴하지도 연구하지도 못해 이런 전체 역사를 전시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영박물관은 전부 다 연속성 있게 잘 전시되어 있지만 모두 넘의 나라 출신 약탈 문화재이고, 일본 같은 경우는 메이지시대의 폐불훼석의 광풍에 다 태워버려서 연속성이 부족하고, 그 이후에 가 봤던 국가의 박물관 중에는 한국 같은 고대유물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그 국가가 가난해서 여력이 안 되는 곳도 있고, 공산주의라 고대 부르주아의 물건을 터부시 하는 곳도 있어, 대부분 자신들의 장점만 잘 다듬어서 전시해 놓았었다. 그도 참 인상적이고 재미있었지만, 이런 연속성의 관점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 대적할 수 있는 곳은 내가 본 중에서는 중국의 시안에 있는 산시역사박물관 하나 정도다. 중국 고대 13개국의 수도였다는 시안이니 가능한 일인데, 유물의 수도 엄청 많고 화려하지만 뭐랄까, 넘쳐나는 유물을 잡화상처럼 잔뜩 쌓아놓았달까, 아직 전시의 테크닉이 좀 부족했다고 느꼈었다. 시안에 갔던 것이 10년도 전이니 좀 더 나아졌기를 바라본다. 그래도 교과서에서만 보던 당삼채를 실물로 영접하고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다.


무튼 2009년의 그날, 내 눈을 끄는 유물이 하나 있었다. 당시 Native American History를 수강한 뒤여서였을 것이다.

신석기 한반도인은 저 돌로 만든 갈판과 갈돌을 이용해 도토리를 갈아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가 도토리묵을 먹는 건가. 내가 놀랐던 이유는 이거다.

캘리포니아의 산타바바라 박물관(Santa Barbara Museum)에서 본 Mano & Metate라고 불리는 절구인데 캘리포니아에 살던 츄마시부족 Chumash은 저 절구로 도토리를 갈아 주식으로 삼았다는데 연간 35만 톤이나 되었었다고. 저 절구는 캘리포니아나 중앙아메리카 등지에서 간간이 발견되는 것이라고 배웠는데, 왜 한반도에도 있는 걸까?


더 놀라웠던 것이 있다.

토제여인상. 풍요와 안정을 기원하는 신석기인들이 꿈이 담겨있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을 만큼 정말 작은 이 유물을 보고 나는 숨이 멎을 뻔했다.

By Bjørn Christian Tørrissen - Own work by uploader, https://bjornfree.com/travel/galleries/,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89071957

위의 사진은 비엔나 자연사박물관에 소장 중인 Venus of Willendorff라는 11cm 크기의 구석기시대 여인상이다. 미국에서 세계사, 인류학, 미술사등의 수업을 들으면 교과서 맨 첫 장에 나오는 사진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 작은 조각상이 유인원에서 사유를 하는 인류로 변모한 전환점 정도로 생각하는 듯한데, 얼굴은 나오지 않고 성기만 강조된 모습이라는 점에서 고대 남성의 어떤 성적쾌락을 위한 도구일 것이라는, 발굴당시의 남성중심사회 특유의 관점 때문에 비너스(여신)이라는 별칭이 붙었으나, 오랜 인류학적 연구 끝에 여성들이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어떤 의식에 사용되었으리라고 잠정결론 났다고 십 년도 전에 배웠다.


그런데 어째서 한반도에도 여인상이 발견되는 것일까. 시기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왜일까? 그 외에도 고대의 문화들을 상징하는 유물들이 한반도에 많다. 연천, 전곡리의 구석기시대 손도끼, 고창의 고인돌(세계에 발견된 고인돌의 40프로가 한반도에 있다), 부산의 패총, 반구대 암각화, 피라미드의 규모를 살짝 맛보기 할 수 있는 서울의 석촌고분(백제시대), 등등.


생각지 못한 박물관에서 비슷한 유물을 볼 때가 있다. 이럴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다. 이것이 우리 인류가 어떤 DNA를 공유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일까, 아니면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인가. 전자라면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인류가 이동해서 어디로 가던지 같은 물건이나 문화를 만들었기 때문일 테고, 연관이 있어서라면 고대에도 현대 못지않은 교역이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인류학에서는 이런 것을 Diffusion(발산, 유포)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아는 디퓨저처럼 각방향으로 분사하여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바닥에 떨어지면 그저 사라지는. 저기 유럽에서 한반도로 바로 직진해서 왔다는 것이 아니라 옆부족과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다 보면 시간이 오래 지나 한반도에도 도달할 수 있단 뜻이다. 그렇다면 왜 한반도에는 고대에 핫한 유물들이 다 있는 것일까. 고대의 핫플레이스였던 걸까. 아니면 변방이라서 고립되었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이 원래 창작지에서는 사라져도 한반도에서는 잘 보관되고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둘 다 일수도.


고대에 일어난 일이라 기록도 없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겠으나, 이런 유물을 다수 갖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 한국문화가 이토록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원동력이라고 본다. 구석기시대부터 수만 년 동안 세상 여기저기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동안 다양한 인종들의 사고방식, 생활방식, 감성등도 같이 받아들여 한국인의 언어와 사고에 내재화되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그 언어와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K-drama나 K-pop이 비한국인의 마음속 어딘가 깊은 곳을 건드려 팬이 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더라도, 기억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되었더라도, 무의식 어딘가가 동한달까. 나는 이제까지 세상을 돌아다니며 만난 사람들에게서 그렇게 느꼈다. 객관적인 증거를 들이밀 수 없지만 나는 거의 확신하는 바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요즘 핫한 '작호도' 뿐만 아니라 세상사람들 모두 같이 즐길 수 있는 문화 예술품이 가득하다. 한국에 살 때는 정말 몰랐다. 쪽진 머리에 한복 입은 우리 할머니가 미개의 상징이었던 그 시절, 자국문화를 비하하고 미국문화 등의 서구문화를 숭배하는 것이 배운 사람의 태도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21세기에 와서 세계와 교류해 보니 그 반대로 한국이 세계인 모두의 역사를 다 잘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앞으로 백년은 우려먹어도 남을 유물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잔뜩있다. 창고 그 자체다.


인류의 이지의 발전, 도구/과학기술의 발전, 정치체제의 발전, 종교의 발전, 상업/교역의 발전, 예술의 발전과정을 빠짐없이 한 곳에서 보고 싶다면 국립중앙박물관을 강력 추천한다. 한국사람에게는 너무 당연한 것들인지는 모르지만 외국, 특히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좁은 한반도에서 출토된 것들로만으로도 그 모든 것을 설명하고 보여줄 수 있다니.


한국사람은 자국문화와 국립중앙박물관에 지금보다 더 큰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십 년도 넘게 외쳐왔는데, 지금이라도 많이들 알아줘서 나는 너무 고맙다. 지난 16년 간 일 년에 서너 번씩 갔었던 국립중앙박물관은 내게 아무 때나 가도 반갑게 반겨주는 친정 같은 곳인데, 뉴스를 보니 이제는 긴 줄을 서야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약간 슬프지만, 더 많이 알려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아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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