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한 전시

K-Culture의 위상 7

by 유목민

2023년 2월, 한국에 방문한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 사실 그 두 달 전에도 갔었던 터라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으나 아무 때나 가도 따뜻하게 맞아주는 친정 같은 곳이라 그냥 갔던 것 같다. 멋진 굿즈가 있으면 좋겠다 하면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우아한 대리석마감의 넓은 홀. 하도 여러 번 오다 보니 전시된 유물은 다 봤고, 설명 읽어봤고, 사진 찍어 놓은 것도 있어서 급한 것 없던 나는 유유히 걸어 들어가고 있었는데, 오른편에 못 보던 전시실이 있었다. 디지털 실감 영상관. 음. 디지털. 괜찮을까. 그 직전에 갔었던 대영박물관에서도 스톤헨지에 대한 디지털영상을 상영하는 특별전을 했는데, 웅장한 스톤헨지를 큰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것은 좋았지만 TV에서 보는 일반 다큐멘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에도 중국의 유명한 회화 속을 날아가는 실감영상을 보여준 적 있었는데 약간 지루했달까. 어디서 견학을 왔는지 아이들의 와글와글 하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려 살짝 망설여졌으나, 국립중앙박물관은 어떻게 실감영상을 만들었나 한 번 들어가 봤다.


제목. 돌 벽 위에서 만난 고구려.


몇 평 안되어 보이는 조그마한 방. 양 옆면, 위(천장), 정면에 영상을 투영하여 실제처럼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해서 약간은 기대를 하며 바닥에 앉았다. SF영화 한 장면처럼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안악 3호분에 날아서 들어가는 장면을 시작으로, 무덤주인이 내세에서 살 곳을 형상화한 듯한 '집'구조의 무덤에 걸어 들어가서 구경하는 콘셉트였다. 오! 유홍준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그렇게 읽었어도, 사진으로는 수도 없이 봤어도, 고구려고분의 내부가 이런 '집'모양인 줄은 잘 몰랐었다. 전문가가 아니니 모르는 것이 당연할 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3D로 상상하는 것에 약하기 때문에 유교수님이 아무리 잘 설명해 주셨어도 그다지 와 닫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걸어 들어가는 듯 한 발걸음 소리, 툼레이더급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음악, 그리고 집이라기보다는 고대 궁궐이나 그리스 신전 같은 분위기의 내부. 낯선 듯 익숙한 모양의 기둥. 위로 올려다보면 피라미드모양으로 좁아져 들어가는 천장모양도 동시에 보였다. 눈을 빨리 굴려야 한다. 사방이 다른 영상이다. 그리고 좌회전. 게임 속 가상현실보다 훨씬 더 사실적인 속도다. 저 끝에 보이는 벽에 무덤주인의 그림이 보인다. 그 양쪽으로 시립 한 무사들. 갑자기 신비한 마술이 벌어질 때 쯤 나오는 음향효과가 들리며 색이 바래진 좌우 무사들에 색이 입혀진다. 아! 원래 이런 그림이었구나. 공손히 맞잡은 손, 근엄한 표정이 확 다가온다. 그리고 클로즈업되는 무덤주인. 양 옆의 시종보다 훨씬 크게 그려졌다. 미술사학시간에 배운 Hieratic Scale이다. 주로 이집트 그리스 등의 고대 고분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라고. 고분주인과 시종들이 본래의 색으로 물들어가는 사이 주인이 들고 있던 부채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색이 많이 바랜 원래의 벽화에서는 그게 부채인 줄도 몰랐다. 벽화가 그냥 그림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절실히 와닫는다. 그 옆의 벽에 역시나 Hieratic scale로 그려진 그의 부인. 그리고 돌아서 나가는 길에 보이는 부엌, 차고, 푸줏간. 방앗간, 마구간. 이 정도면 인류학적으로 고구려인의 삶을 되살려낼 수도 있겠는데. 그리고 눈길을 끄는 대행렬. 색을 입혀서 보니 너무나 생동감 있는 모습이어서 놀라운데 그들이 걸어서 움직이도록 CG를 입히니 우리가 흔히 보는 퍼레이드 같다.


뒷걸음질 쳐서 안악 3호분을 나와서 덕흥리 벽화분으로 들어간다. 묵서묘지명이 있어 무덤주인이 알려진 유일한 고분이라고 한다. 유주자사를 지낸 진이라는 사람의 무덤을 영락 18년에 완성하여 모셨다는 내용의 묘지명을 한 줄 한 줄을 한자와 한국말 번역으로 보여준다. 차양아래 앉은 주인 역시 Hieratic scale로 그려졌는데 그 옆의 시종들은 세 칸으로 나눠서 그려졌다. 마치 메소포타미아의 Register처럼. 다른 벽에는 그가 거느리던 관리들의 모습과 갑옷을 두른 말을 탄 기병이 달리는 행렬, 그리고 마구간, 외양간, 연꽃등이 그려져 있고, 색감을 입혀 더 실감 나게 보여준다.


여기서부터 이 영상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천장을 클로즈업하면 하늘을 가르는 은하수와 그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서 있는 견우와 직녀가 그려진 벽화가 보인다. 이도 실감영상이 색칠을 하고 밑에 설명을 보여주지 않았으면 절대로 못 알아봤을 장면이다. 그 생각을 하는 찰나 반짝이는 행성과 별자리. 오! 그냥 점이 아니었어? 그 사이사이를 채운 선인(仙人)과 상상 속의 동물들. 갑자기 바뀌는 음악. 뭔가 신비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장중한 음악이 흐르고, 해와 달, 그리고 북두칠성이 반짝거리더니 배경이 까만 밤하늘로 바뀌고 고구려인들이 보았을 별자리들로 가득 찬다. 그것 만으로도 입이 떡 벌어진다. 손에 잡힐 듯, 떨어질 것 같은 별들이 연결된 별자리들, 그리고 은하수들. 고구려인들도 우리와 같은 하늘을 봤겠구나. 그리고 바뀌는 장면. 사신도로 유명한 강서대묘다. 색이 많이 바랜 현무에 색을 입히고 황금빛을 뿌리니 영험한 사신도의 진가가 보인다. 천장의 황룡, 주작 두 마리 그리고 백호. 이런 영상효과들과 함께 보니 강서대묘의 사신도가 왜 그리도 명작이라고 하는지 절실히 이해가 되었다. 내가 무덤주인이라면 안심하고 저세상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현무를 정면으로 보면서 뒷걸음질 쳐서 무덤밖으로 나오면 까만 하늘에 아까 무덤 천장에서 봤던 별들의 실물이 무덤 위로 쏟아진다. 그리고 끝난다.


십 분이 좀 넘는 동안 나는 숨도 쉴 수 없었다. 고구려고분은 남쪽에 남아있는 고분들과 달라서, 고구려인의 생활상을 여과 없이 보여줘서, 그리고 고구려인의 내세관, 현세에도 꿀리지 않는 천문학지식, 종교적 상상력, 등 뭐 하나 놀랍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거기에 더해, 직접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영상기법과 감동을 배가시켜 주는 음악까지, 조상이 남긴 유물에 대한 넘치는 애정이기에 가능했을 종합예술 그 자체였다. 일어날 기운마저 빼앗긴 채 나는 거기서 한 시간도 넘게 보고 또 봤다. 사면에 투사되는 영상이라 봐도 또 봐도 새로 보이는 장면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정신 차리고 비디오를 찍었는데, 집에 와서 다시 켜 보니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그 감동의 반의반의 반의반도 못 담아냈달까. 그 이후로도 이런 전시는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다.


https://youtu.be/K_JslwZ47QA?si=Ql39sWYIKLzAXAMp


지금은 YouTube에서 감상할 수 있다. 핸드폰이나 태블릿피씨로 보는 것을 추천한다. 360도 실감영상이라서 핸드폰을 움직이면 사방을 돌려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본 것과는 현저하게 차이가 있다.


얼마 후, 미국의 대학에 지원하기 위한 필수학점을 따기 위해 미술사학을 수강했다, 미국 수업에는 한 학기에 한번 이상 에세이를 써야 하는데, 그 학기에 주어진 과제는 박물관에 가서 예술작품을 보고 이제까지 매운 미술사학의 용어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이 '돌 벽 위에서 만난 고구려'를 선택해 썼고 만점을 받았다. 쓰면서 내가 놀랐던 것은, 이 고구려고분을 미술사학적으로 설명하는데 새로운 개념을 애써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집모양의 고분도, 멋진 기둥도, 감탄 나오는 벽화도 Hieratic Scale이나 Register 같이 이미 서구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이용해서 설명이 가능했다. 왜 그럴까. 점점 더 커지는 궁금증.


그 이후에도 박물관에는 자주 갔었고 그때마다 특별한 전시들을 보았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사유의 방도 좋았고,

사유의 방

2024년 5월에 보았던 디지털 광개토대왕릉비 전시도 정말 좋았다. 한 문장 한 문장을 따서 한국말과 영어로 번역이 순서대로 나와서 광개토대왕비 전문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이해하고 음미할 수 있어 정말 훌륭했다. 실물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돌 벽 위에서 만난 고구려'는 실감 영상관에서 다시 보고 싶다. 사유의 방이나 왕의 서고처럼 계속 상영해 주면 안 될까. 우리가 잘 모르는 고구려를 실감할 수 있는 엄청난 전시였어서 많이 아쉽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상의 유물, 유적을 설명하기 위한 교육용 영상을 새로운 장르의 예술작품으로 승화할 수 있는 것은 한국뿐인 것 같아 더할 수 없이 기쁘다.


앞으로는 또 어떤 새로운 전시를 기획할까. 너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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