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의 힘, 그리고 어려움

by crowbamboo

‘김대리는 언제 봐도 예의 바르고 일도 잘 한단 말이야’

’박과장님은 참 아이디어 분수같아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습니까?’


별것 아닌 간단한 인사말의 효과는 생각보다 엄청나다.

천금을 들여 잘 봐 달라고 노력하는 것보다 평소에 정겨운 말 한마디와 존중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한다면,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가치는 높아지고 다이아몬드처럼 견고하여 결코 깨지지 않는다.

천금으로 지어진 모래 위의 탑은 깃털을 날리는 산들바람에도 무너질 수 있지만,

아름다운 말로 오랜 시간 동안 쌓은 신뢰의 탑은 거친 태풍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을 것이다”


말 한마디가 천냥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 속담의 의미는 말을 청산유수와 같이 잘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상황에 맞는 말을 진심을 담아,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말함으로써 상호 신뢰를 견고히 쌓아 어려운 문제도 쉽게 풀어 나갈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모든 복과 화는 말에서 시작된다.

말을 예쁘게 잘하는 사람을 보면 너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저분은 같은 말을 해도 어떻게 저렇게 듣는 사람 기분 좋게 할까 라며 그 말하는 방법을 본받으려고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는 주로 무슨 말을 하면서 살까?


어린 시절부터 좋은 말 많이 하도록 배워 왔지만,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이 좋은 말 보다 좋지 않은 말에 어울리는 것 같다.

왠지 자극적이고 좋지 않은 말이 입에 착착 달라붙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타인의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크게 보이고 쉽게 와닿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돌보지 않고 즉흥적으로 내 던지는 수많은 말들.

어찌 보면 그런 말의 홍수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결국 그 말은 나를 해치는 화살이 되어 내게 돌아온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설령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상대방의 수고를 칭찬하는 말을 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한때 유행했다.

고래뿐이겠는가?

말 못 하는 우리 집 두 살짜리 강아지 오복이도 칭찬하는 말이나 호감을 주는 표정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꼬리를 흔들고 얼굴을 핥지만, 조금이라도 불편한 표정이나 말을 하면 바람처럼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칭찬은 고래뿐만 아니라 그 어떤 동물에게도 가장 효과적인 소통 방법일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칭찬의 말이라 하더라도 칭찬은 서로에게 호감이 생기도록 하고 칭찬하는 사람에 대한 정겨움과 감사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칭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것이 아니다.

많은 노력과 연습을 해도 칭찬의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아들 딸이 초등생과 중학생 때쯤이었다.

매일 늦게 퇴근하여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던 시기였다.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많았다.

그래서 약간의 강제성을 가진 가족 만남 시간을 갖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가족회의를 하기로 했다.

가족회의 기준은 서로에게 칭찬하기였다.

칭찬하기로 정한 이유는 아이들이 가능하면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고 칭찬하는 습관을 길러주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어린 시절 가족 간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는 말 한마디에 싸움이 일어나고, 그것이 앙금이 되어 얼굴 붉히거나 서로 만나지 않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가족회의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었던 모습은 회의 시작 후 처음 몇 마디는 모두가 이런저런 장점을 말하고 서로에게 칭찬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니, 금방 상대에 대한 단점과 불만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첫 회의 때는 제법 칭찬하려고 노력했다.

태어나서 처음 해 보는 회의라 어색하기도 했지만 노력한 흔적이 있었다.


가장 어린 아들은 아빠에 대해 '성실하고 근면하다. 가끔씩 집안일을 도와준다'라고 칭찬해 주었고,

엄마에 대해서는 '집안 경제를 잘 이끌고, 집안일을 잘 관리하고 계신다'라고 했다.

또 누나에 대해서는 '가끔씩, 아주 가끔씩 자신을 도와주고, 그리고 진짜 티도 날듯 안 날듯 자기를 챙겨준다'라고 인색한 칭찬을 하였다.

나머지 가족들도 '딸은 밝고 솔직하다, 웃는 모습이 예쁘다, 가족을 존중해 줘서 고맙다, 동생 잘 챙긴다, 배려심이 깊다'

'아들은 잘생겼다, 엄마 심부름 잘한다, 놀러 가기 전 엄마에게 보고 잘한다' 라며 서로를 칭찬하는데 회의시간을 모두 소비했다.


별로 어려운 칭찬내용은 아니었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마음먹고 가족에게 칭찬의 말을 하는 것이라 많이 어색했지만 제법 잘했다.

그러나, 회의를 거듭할수록 칭찬하는 시간은 줄어들었고, 서로에게 바라거나 단점을 말하는 시간이 회의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엄마는 간섭이 심하다, 가끔씩 너무 우긴다, 살찌고 있다, 날카로워지고 있고 돈계산이 불분명하다.’

‘딸은 공부하는 모습이 부족하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체중관리 안 한다’

‘아들은 글씨를 너무 못 쓴다, 누나에 대한 존중심 부족하다, 누나에게 기어오른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등등 수없이 많은 단점을 토로하는 시간이 되었다.


곰곰이 되돌아보면 우리들이 하는 말의 많은 부분은 남을 좋지 않게 말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의 장점을 말하려고 노력하지만 어느 순간 분위기가 쏠리면 거품을 물듯이 타인의 단점을 밤새워 말한다.

장점을 밤새워 말하는 것을 본 기억이 드물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의 몸에 맞는 것 같다.


남을 칭찬만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저 사람은 남들의 장점을 저렇게 잘 찾아낼 수 있을까 라며 대단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지나치게 타인의 단점만을 말하면 듣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그 의견에 동의하더라도 속으로는 단점만을 말하는 사람이 과하다고 생각하고 멀리하고 싶어 하는 맘이 생긴다.

힘들지만 가능하면 타인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찾는 연습을 하고 그 장점을 칭찬하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단점을 지적해야 한다면 그 대상자 앞에서 직접, 솔직히 말하는 것이 좋다.

당사자 없이 다른 사람들과 얘기할 때 헐뜯거나 아무리 가벼운 단점을 말하더라도 그 말이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면 매우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타인을 칭찬하는 말은 당사자가 없을 때 말하여 그 칭찬의 말이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는 것이 훨씬 좋은 것 같다.

칭찬하는 대상자가 듣지 못하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하지 말자.

통신이 발달한 초스피드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말의 속도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빠르다.


이런 현실을 생각한다면 다소 약삭빠른 행동이라 생각되겠지만,

그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여러 사람과 얘기할 때 칭찬한다면 십 중 팔구 오래지 않아 '누가 너를 그렇게 칭찬하더라' '너를 매우 좋게 생각하더라'라는 말이 전해질 것이다.

복잡한 상호관계를 좋게 헤쳐 나가야 한다면 이러한 칭찬은 매우 효과적이 될 수 있다.


말의 무게는 대단한 것 같다.

인사치레 같은 말 한마디도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할 수 있고,

듣기 좋으라고 불쑥 던진 격려 말 한마디가 절박한 당사자를 만나면 옷에 달라붙은 도깨비 풀 마냥 온몸에 달라붙어 따라다니게 된다.

마치, 심장을 옭아 매고 있는 방울이 되어 심장이 뛸 때마다 딸랑거리며 모든 감각을 깨운다.


매일 많은 동료들과 호흡을 같이 해야 하는 회사생활에서 말 한마디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회사원은 업무상 필요한 것들을 사내 메신저로 주고받는다.

이때 아무리 사소한 배려의 말이라도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해 준다.


메신저를 주고받을 때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000님. 갑자기 날씨가 더워졌네요. 이렇게 더운 날에 또 자료를 요청하게 되어 미안한 맘뿐입니다.

죄송한데 ㅇㅇㅇ자료를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생하십시오'

그러면 대부분의 직원은 똑같은 형식으로 답장하며 흔쾌히 자료를 보내 줄 것이다.

'고생 많으시죠. 준비되는 대로 보내드릴게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사람과도 서로 존중하며 대화하면 그냥 좋은 사람으로 생각되고 정이 간다.


그런데 가끔씩 단답형으로 '네'라고 답하는 직원도 있다.

그런 답장을 받을 때면 '참 정 없는 사람일세'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뇌리에 ‘진상에 준하는 놈’이라고 이름을 올릴 것이다.


회사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긴 문장의 카톡을 보냈는데 짧게 ‘네’라는 답장을 받았다며 투덜거리는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다.

보통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인가 보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신의 따뜻한 내면을 담아 보내는 것은 어떨까?


말을 한다는 것은 대부분 상대방이 있다는 의미다.

회사 생활하면서 일상적인 의견을 나누며 소통하는 말이 있을 수 있고,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전달하여 공감하도록 하고 더하여 내가 희망하는 방향으로 행동해 주길 바라며 하는 말이 있을 수 있다.

단순히 소통하여 서로를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만, 나의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여 원하는 결과를 달성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만약 그런 기술을 터득한다면 인생은 매우 찬란하게 빛날 텐데…


내가 읽은 “사기열전(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중 ‘노자ㆍ한비 열전’”에 실린 자신의 생각을 말하여 상대방을 설득하고, 인정받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말하여 설득시키는 것의 어려움)를 알려주는 글을 소개한다.

비록 그 당시 군주를 설득하는 것의 어려움을 말하고 있지만 복잡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울림을 줄 것 같다.

자신에 맞게 받아들이면 좋을 것이다.


「한비의 '세난 편'」


“대체로 유세의 어려움은 내 지식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고, 내 말솜씨로 뜻을 분명히 밝히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며, 또 내가 감히 해야 할 말을 자유롭게 모두 하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다.

유세의 어려움은 군주라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파악하여 내 주장을 그 마음에 꼭 들어맞게 하는 데 있다.

상대방이 높은 명성을 얻고자 하는데 큰 이익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식견이 낮은 속된 사람이라고 가볍게 여기며 멀리 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상대방이 큰 이익을 얻고자 하는데 높은 이름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상식이 없고 세상이치에 어둡다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이 속으로 큰 이익을 바라면서 겉으로는 높은 이름을 원할 때 높은 이름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척하겠지만 속으로는 멀리할 것이며,

만약 큰 이익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속으로는 의견을 받아들이면서도 겉으로는 꺼릴 것이다.

유세자는 이러한 점들을 잘 새겨 두어야 할 것이다.

대체로 일이란 은밀히 함으로써 이루어지고 말이 새어 나가면 실패한다.

그러나 유세자가 상대방의 비밀을 들출 뜻이 없었지만 우연히 상대방의 비밀을 말하면 유세자는 몸이 위태로워진다.

또 군주에게 허물이 있을 때 유세자가 주저 없이 분명하게 바른말을 하고 교묘한 주장을 내세워 그 잘못을 들추어내면 그 몸은 위태로워진다.

유세자가 아직 군주에게 두터운 신임과 은혜도 입지 않았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해버리면 설령 그 주장을 실행하여 공을 세우더라도 군주는 그 덕을 잊을 것이며,

그 주장을 실행하지 않아 실패하게 되면 군주에게 의심받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유세자의 몸은 위태로워질 것이다.

또 군주가 좋은 계책을 얻어 자기 공로를 세우고자 하는데 유세자가 그 내막을 알게 되면 그 몸이 위태로워진다.

군주가 겉으로는 어떤 일을 하는 것처럼 꾸미고 실제로는 다른 일을 꾸미고 있을 때 유세자가 이것을 알게 되면 역시 몸이 위태로워진다.

또 군주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게 하거나 그만두고 싶지 않은 일을 멈추게 하면 또한 몸이 위태로워진다.

그러므로 현명하고 어진 군주에 관해서 말하면 자기를 헐뜯는다는 오해를 받게 되고,

지위가 낮은 인물에 관해서 말하면 군주의 권세를 팔아서 자신을 돋보이려 한다는 오해를 받게 되며,

군주가 총애하는 자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그들을 이용하려 하는 줄 알며,

군주가 미워하는 자에 관해서 논하면 자기를 떠보려 하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말을 꾸미지 않고 간결하게 말하면 아는 게 없다고 하찮게 여길 것이며,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말이 많다고 할 것이며,

사실에 근거하여 이치에 맞는 의견을 말하면 소심한 겁쟁이라 말을 다 못 한다고 할 것이고, 생각한 바를 거침없이 말하면 버릇없고 오만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유세의 어려운 점이다.


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버릴 줄 아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계책을 지혜로운 것으로 여긴다면 지나간 잘못을 꼬집어 궁지로 몰아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결정을 용감한 것이라고 여기면 구태여 반대의견을 내세워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더라도 그 일의 어려움을 들어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유세자는 군주가 꾸민 일과 같은 계책을 가진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을 칭찬하고,

군주와 같은 행위를 하는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을 칭찬하며,

군주와 같은 실패한 사람이 있으면 그것은 실패한 일이 아니라며 두둔해 주고,

군주와 같은 실수를 한 자가 있으면 그에게 잘못이 없음을 명확히 설명해 주고 덮어주어야 한다.

군주가 유세자의 충성스러운 마음에 반감을 가지지 않고 주장을 내치지 않아야 비로소 유세자는 그 지혜와 언변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군주에게 신임을 얻고 의심받지 않으며 자신이 아는 바를 다 말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여 오랜 시일이 지나 군주의 총애가 깊어지면 큰 계책을 올려도 의심받지 않고 군주와 서로 다투어 말하여도 벌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때 유세자가 국가에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을 명백히 따져 군주가 공적을 다룰 수 있게 하며, 옳고 그름을 솔직하게 지적을 해도 영화를 얻게 된다.

이러한 관계가 이어지면 유세는 성공한 것이다”


(사례 1)

송나라 어떤 부자 집의 토담이 비에 무너져 내렸다.

그 아들이 말했다.

"담을 다시 쌓지 않으면 도둑이 들 것입니다"

그 이웃집 주인도 아들과 똑같이 말했다.

날이 저물자 정말 많은 재물을 도둑맞았다.

송나라 부자는 자기 아들은 매우 똑똑하다고 칭찬하면서도 이웃집 주인을 의심했다.


(사례 2)

정나라 무공이 호나라를 칠 계획을 세운 후 자신의 딸을 호나라 군주에게 시집보내고 나서 대신에게 물었다.

내가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데 어느 나라를 치면 되겠는가?

그러자 관기사가 대답했다.

'호나라를 칠만 합니다.

그러자 무공이 말했다.

'호나라는 형제와 같은 나라인데 그대는 호나라를 치라고 하니 어찌 된 일이오'라고 말하며 관기사를 죽여버렸다.

호나라는 이와 같은 소식을 듣고 정나라를 친한 친구 나라로 생각하여 정나라의 침략에 대비하지 않았고 정나라는 호나라를 공격하여 취하였다.


- 이웃집 사람과 관기사 모두 옳은 말을 하였으나 의심을 받거나 목숨을 잃었다. 이는 안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 아는 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어렵다는 의미다.


(사례 3)

위나라에 미자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위나라 군주의 총애를 받았다.

위나라 법에 군주의 수레를 타는 신하는 발 뒤꿈치를 자르는 월형에 처하도록 되어있었다.

미자하의 어머니가 병이 나자 미자하는 군주의 명령이라 속이고 군주의 수레를 타고 대궐 문 밖을 빠져나갔다 왔다.

군주는 이 사실을 듣고

'어머니를 위해 다리가 잘리는 형벌까지 감수하다니" 미자하는 효자라고 칭찬하였다.

또 어느 날 미자하는 군주와 과수원에 갔다.

복숭아를 먹어보니 맛이 달았다. 미자하는 먹던 복숭아를 군주에게 드리자 군주는 '제 입맛을 참고 맛있는 복숭아를 내게 주다니 참으로 나를 아끼고 생각하는구나'라고 칭찬하였다.

세월이 흘러 미자하가 군주의 총애를 잃었고 군주에게 죄를 지었다.

군주는 ' 이 자는 일찍이 나를 속이고 내 수레를 탔고, 또한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내게 먹게 했다' 라며 벌을 주었다.

미자하의 행위는 처음이나 나중이나 변한 게 없지만 처음에는 칭찬을 받고 나중에는 벌을 받았다.

그것은 군주가 미자하에 대한 마음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군주에게 총애를 받을 때는 어떤 행동도 칭찬받고 좋게 평가받지만, 총애가 멀어지고 아무리 사소한 행동도 미움을 받게 되고 더욱 멀어지게 된다.

따라서 군주에게 간언하고 유세하는 사람은 군주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용이라는 벌레는 잘 길들여 가지고 놀 수 있고 등에 탈 수도 있지만 그 목덜미 아래 거꾸로 난 한자길이의 비늘(역린)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죽음을 면치 못한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이와 같은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은 이 비늘을 건드리지 않아야 유세에 성공할 수 있다”



참 어려운 것이 상대방에게 말하는 것이다.

아마 사람의 변화무쌍한 마음이 그 뿌리가 아닌가 싶다.


한비가 이 글을 지은 후 2천 년이 지나 오늘날의 사회적 관념으로 보면 타당하지 않은 내용이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변하지 않는 복잡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한비 시대의 군주가 지금 세상 곳곳에 늘려 있는 갑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로 세분화된 것만 차이 있을 뿐 아니겠는가? 말을 할 때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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