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 팔림

by crowbamboo

‘쪽 팔리다’는 것은 '부끄러워 체면이 깎이다'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행위를 했을 때 쓰는 말이다.


우리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다양한 규칙들을 지키며 살고 있다.

또한 개개인도 나름의 인생철학이나 생활태도 기준을 만들어 살아간다.

꼭 거창한 규칙일 필요는 없다.

상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는 정도면 충분하다

우리는 이런 다양한 기준을 지켜야 한다고 배워왔고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준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할 때 죄책감이나 쪽팔림을 느낀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크고 작은 일에서 쪽팔린다는 느낌을 수없이 느끼며 살아간다.

회사 생활하는 회사원도 마찬가지다.

담당하는 업무를 잘 모르거나 게을러 일처리가 되지 않거나 늦어지는 경우, 규정에 맞지 않게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 동료들이 모두 노력하며 힘겹게 실적을 채우는데 뒤에 쳐져 눈치만 보고 있는 경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미루는 경우, 옆 동료는 바빠서 정신없는데 도와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 후배들의 능력향상을 도와주지 않는 경우, 상사의 정당한 지시를 무시하거나 부당한 업무지시를 행하는 경우, 본인이 한 행위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 상사라고 모든 것을 아는 냥 부하직원 의견 무시하는 경우, 맘에 안 든다고 옆 동료를 왕따 시키거나 직장상사나 부하직원을 헐뜯는 경우 등등 주변을 돌아보면 쪽 팔리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매일 보는 동료와 하루 종일 함께 일하는

회사원이라면 가능하면 쪽팔리지 않는 회사생활을 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


32년 은행원으로 살면서 이런 쪽팔리는 상황을 수없이 경험해 왔다.

내가 한 쪽팔리는 행위도 있고, 타인의 쪽팔린 행위로 나를 돌아본 경험도 많다.


회사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말단 행원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일을 했었다.

그 당시 은행원은 전표 등의 숫자를 맞추기 위해 주판을 사용했다.

모든 지점에는 하루동안 지점 직원들이 입력한 전표 금액의 대차를 맞추기 위해 계산계란 담당을 두고 있었다.


계산계는 하루 종일 전표를 철하거나 다른 직원을 간간히 도와주다가 지점직원들의 일이 모두 끝나면 그제야 그날 지점에서 발생한 모든 전표의 대차가 맞는지 주판을 놓으며 밤을 새웠다.

운이 좋아 일산 하면 일찍 퇴근할 수 있었지만, 태어나서 입행 후 처음으로 주판을 만져본 나와 나의 사수가 주판을 잘 놓을 리 만무했다.


몇 천장이나 되는 전표를 드문드문 몇 시간에 걸쳐 놓은 후 합계 숫자를 빈 종이에 적은 다음 그 숫자가 정확한지 검산을 하면 또다시 몇 시간이 흘렀고, 그렇게 드문드문 놓은 주산이 맞을 리 만무,

몇 번을 다시 놓아 확인하면 처음 주판 놓은 숫자가 답인 경우가 많은 그런 시절이었다.


어느 날, 아무리 주판을 놓아 대차를 맞춰 보아도 몇 원이 틀렸다.

이렇게 대차가 맞지 않는 날이면 몇 천장이나 되는 전표를 수없이 반복해서 주판을 놓곤 한다.

이틀정도 전표가 닳도록 주판을 놓으며 확인해도 틀린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자 지점 텔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또다시 며칠 지나자 지점 분위기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모든 텔러들은 초긴장모드로 바뀌었다.

계산계 직원들이 며칠 동안 집에 가지도 못하고 몇 원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텔러들은 좌불안석이었다.

전표 숫자 처리를 잘못한 것으로 판명되는 텔러는 당분간 얼굴 들고 다닐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며칠 지나자 주판 잘 놓는 고참 텔러 몇 명이 와서 계산을 해 보았지만 틀린 몇 원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결국 계산담당 팀장님의 마지막 방법을 시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미 며칠간 쌓인 전표가 어지럽게 금고에 놓여 있었다.

팀장님은 사건당일 전표 수천 장을 하나하나 상대전표를 찾아 대조(일명 박치기)하기 시작했다.

모든 텔러의 신경은 전표 박치기하는 곳에 집중되어 있었고 수시로 그곳의 상황을 체크하고 있었다.


몇 시간의 작업 끝에 드디어 몇 원이 잘못 처리된 전표를 발견했다.

그 당시 인기를 끌었던 재형저축 금액을 분개할 때 몇 원이 잘못 처리된 것이었다.

계산을 담당하는 우리도 재형저축 금액 분개 시 많이 틀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전표를 여러 차례 살펴봤지만 끝내 찾아내지 못한 오류를 계산담당 팀장이 찾아낸 것이었다.

계산담당 팀장은 사건을 일으킨 여직원을 불러 큰소리로 혼냈고 그 여직원은 고개를 떨군 채 눈물만 뚝뚝 흘리며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산을 담당한 우리에게 와서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고 갔다.


그렇게 일주일 만에 몇 원을 찾는 문제가 종결되던 날 저녁,

너무 허탈 한 맘에 계산을 담당했던 우리 두 사람과 행원 몇 명이 술 한잔하러 갔다.

술을 마시며 힘들었던 지난 일주일에 대해 얘기하자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도 모르게 그 여직원에 대해 매우 심한 욕을 뱉었다.

그 순간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동석한 동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그 사과를 받아 주었음에도 보이지 않은 곳에서 심한 욕을 한 것이 너무 옹졸하게 보였고 부끄러웠다.

차라리 그 여직원 면전에서 화를 내었더라면 그런 부끄러움은 덜 했을 텐데…


그 일이 있고 몇 년 후, 지방에 있는 소규모 지점에서 근무할 때 나는 황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은행원이 하는 일은 모두 돈과 관련되다 보니 규정에 맞춰 전결사항을 준수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모든 서류에는 규정에 위임된 책임자의 도장이 찍힌다.

전결규정을 위반하여 업무를 하다 발각되면 징계를 받게 된다.

업무의 중요도나 금액규모 등에 따라 중징계나 경징계를 받게 되고, 이러한 징계사실이 인사기록에 등록되어 승진 등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모든 직원들은 업무를 할 때 위임전결을 준수하는 것이 몸에 배어져 있다.


어느 날, 본점에서 감사가 나왔다.

몇 년간 처리한 대출에 대한 금액, 용도, 담보취득여부, 전결준수 등에 대한 적정성 감사를 꼼꼼히 하였다.

그런데 대출한 기업 중 한 곳이 문제 되었고, 그 문제회사에 대한 예금 등 모든 서류에 대한 세부점검이 이뤄졌다.

그 기업과 관련하여 내가 담당하고 있는 당좌예금 업무에서 사소한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감사자는 나와 나의 상사인 책임자를 불러 그 업무를 취급하게 된 경위를 질문하였다.

그 서류에는 나의 상사가 책임자로서 결재한 도장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사자의 질문에 당황한 책임자는 ‘비록 자기 도장이 찍혀 있지만, 그 내용은 실무자가 알아서 했기 때문에 모른다’고 대답했다.

책임을 실무자에게 전가한 것이다.


그런 말을 듣는 순간, ‘이런, **인간. 그러고도 니가 책임자야?’라고 소리치며 주먹을 날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책임자는 내 도장이 찍혀 있지 않더라도 나의 부하직원이 한 일에 문제 있으면 '내 책임이오'라고 하는 것이 상식적인 모습인데, '도장은 찍었지만 내 책임이 아니요'라고 책임 회피하는, 이런 황당한 일이 생길 줄 몰랐다.


그 책임자는 나와 같은 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평소에 꼼꼼하게 일 잘하고 후배들을 잘 도와주는 맘씨 좋은 사람이라 모든 직원들에게 ‘괜찮은 책임자다’라고 평가받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좋게 평가받는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 책임을 회피하자 배신감이 치솟아 올랐다.

감사를 하는 사람에게 내가 쪽팔린다는 느낌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결재도장까지 있는데 ‘내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책임이 없어질 리 만무했다.

매우 중대한 실수가 아니었기에 감사자가 그 책임자를 엄중히 경고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지만 그 일로 그 책임자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평소에도 늘 부끄러운 짓은 하지 말자는 생각을 가져왔지만 그런 황당한 일을 당하고 보니 회사생활에서 자신의 위치에 맞는 처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고, 그 일을 계기로 더욱더 쪽 팔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긴 회사 생활동안 그것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

나는 내가 담당하는 업무를 제때

,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쪽팔림 때문에 꽤 많은 금전적 손실을 본 적이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지방에서 근무할 때였다.

어느 날 아침 은행영업이 시작하기도 전에 고객이 와서 예금을 담보로 대출을 해 달라고 하였다.

그렇게 아침 일찍 은행에 와서 대출받을 정도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급한 일이 있는가 보다고 생각하였고,

예금담보라면 자기 돈 범위 내에서 빌려가는 것이고 예금을 해지해 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 요청 10분 내에 ㅇ천만 원이란 돈을 통장으로 입금해 줬다.


하지만 모든 문제는 쉽게 생각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너무 일찍 은행에 와서 대출을 요구하는 것이 다소 미심쩍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본인돈을 본인이 찾아가는 것과 같은 예금담보라 쉽게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전산으로 기본적인 대출품의를 마친 후 돈을 먼저 입금해 주었고,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한 후 오후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아침에 처리한 대출에 대한 서류를 정리하였다.


그런데, 대출 시 점검해야 하는 필수 서류를 전산 출력하는 순간 깜짝 놀랐다.

아침 일찍 웃으며 대출 신청했던 기업은 당일 부도 처리된 기업이었다.

분명히 대출취급 전 전산화면으로 확인했을 때 정상 기업이었던 회사가 저녁에 서류를 출력해 보니 부도처리 되어 있었다.


금융결제원에서 각은행으로 부도 통보되는 시간이 오전 10시 이후라 은행이 정상 영업하기 이전인 아침 9시 이전의 전산은 부도사항이 반영되기 전인 것이었다.

취급할 때 서류를 출력해 두었다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눈으로만 확인하다 보니 근거자료가 없었다.


부도난 기업이라 해도 본인예금을 담보로 한 것이라 큰 문제가 없을 것 같기도 했지만,

그 기업은 이미 보증서를 담보로 다른 대출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 예금은 보증서 담보대출을 받을 때 대출금 상환재원으로 사용할 요량으로 가입한 예금으로 볼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다른 대출과 완전히 관계없는 예금이라 보기가 애매했다.


대출 발생 전에 관련서류를 출력하여 완벽하게 대출서류가 갖춰진 후에 돈이 나가는 것이 상식임에도 그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은 잘못된 업무처리였다.

서류 하나를 제때 출력하지 않아 절차상 문제 있는 대출로 만들어 버린 나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취급한 대출을 원상태로 돌려야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 기업체 대표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마음은 급해져만 갔다.

머릿속은 어차피 나중에 보증기금으로부터 대위변제받을 때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니 이미 나간 대출을 취소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간은 저녁 6시를 넘기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아내에게 전화했다.

‘돈 ㅇ천만 원이 필요한데 구할 수 있냐’고 물었다.

아내가 깜짝 놀라며 '왜? 무슨 일 있냐’고 되물었다

‘아니, 별일은 아니고 그냥 잠깐 쓸 일이 있어서’라고 대답하자 아내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워낙 없이 시작한 결혼 생활이라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절박한 맘으로 찾으니 ㅇ천만 원을 모을 수 있었다.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아침 일찍 처리했던 대출을 취소할 수 있었다.

순간의 방심으로 업무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쪽팔림과 ㅇ천만 원을 맞바꾼 것이다.


그날 밤 너무 화가 나서 잠을 잘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 곧바로 대출을 받아 간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어렵게 통화가 되었고 바로 만나자고 했다.

어느 조그만 식당에서 만났다.

‘부도를 내놓고 어떻게 부도덕하게 대출받아 갈 수 있느냐?

그 예금도 당신 삼촌이 당신 명의로 가입했다고 하던데 어떻게 그걸 담보로 대출받을 수 있나?

부당하게 취급된 대출이라 취소할 수밖에 없었고 대출 취소금액을 내가 대신 냈으니 돈을 돌려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 대표는 ‘하던 사업이 너무 어려워 부도를 냈고 어제 대출받은 돈은 이미 모두 써 버렸다’고 했다.

지금 가족이 머물 수 있는 숙소조차 없다는 말과 함께 엄청 힘들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과장되게 연기하는 듯하였지만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 돈을 돌려받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한 채 ‘아무쪼록 돈 많이 벌어 가족 잘 돌보시라’는 어쭙잖은 격려의 말을 남기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여 과도한 대처를 한 듯하지만 결국 그러한 업무처리가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거쳐야 할 약간의 쪽 팔리는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무딘 용기가 있었다면, 아마 나는 지방 지점을 떠돌며 몸 편한 은행생활에 만족하며 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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