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있게 행동하자

by crowbamboo

대관업무를 담당할 때 회사 임원들을 모시고 대상기관을 가끔씩 방문하였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임원보다 앞서 가면서 출입문을 열어줘야 하는지, 아니면 임원 뒤를 따라가야 하는지 고민될 때가 많았다.

앞서서 가자니 내가 임원 같고, 뒤따라 가다 임원이 출입문을 열면 내가 손 안 대고 지나가니 그 또한 내가 임원 같고,

참 난감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내가 문을 열어주는 것이 맞다 싶어 임원보다 앞서 가서 문을 열고 임원이 멋지게 문을 통과하면 참 잘했다 생각이 들지만,

그러한 생각도 잠깐,

또 앞에 문이 나타나면 임원 뒤에 있던 내가 후다닥 뛰어가서 다시 문을 열어야 하나 또 고민.

뛰어가자니 너무 분주한 것 같고, 안 가자니 내가 보스 같고…


결국은 ‘에라, 될 대로 돼라’.

통과할 문이 여러 개면 나와 임원이 한 번씩 열어 번갈아 가면서 보스 노릇하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니 맘이 편해진 적이 있다.

아마, 눈치 없이 뒤따라 가든 분주히 앞뒤로 움직여가며 문을 열든 임원은 아무런 관심도 없었을 듯하지만…


눈치라는 게 뭘 까?

꼭 필요한 걸까?


어느 모임에 갔을 때,

눈치 없는 행동으로 절체절명의 순간을 경험한 지인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비슷한 또래들이라 별소리를 다하는 그런 모임이었다.


“그 친구는 술을 좋아하고 많이 마시다 보니 운전기사를 두고 있었다.

어느 날 출근하는데 어제 마신 술이 잘 못되었는지 속이 너무 좋지 않았다.

집에서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급한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침회의 일정으로 어쨌든 회사까지 가자는 심정으로 참고 참으며 회사 근처까지 갔다.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수백 미터만 더 가면 회사였기에 조금씩 안도하게 되었으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대놓고 속이 안 좋으니 빨리 가자고 기사를 재촉하기도 그렇고 해서

은근히 ‘어, 오늘따라 속이 너무 안 좋네. 아직 멀었나’라는 말을 기사가 들릴 정도로 몇 차례 했을 뿐이었다.

아마 기사도 그 외침을 분명히 들었고, 어제 술을 많이 마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차주의 장상태가 형편없고 급하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회사 가까이 있는 그 사거리에서 좌회전해서 약 50미터쯤 가면 버스정류장이 하나 있었다.

매일 다니는 길이라 기사도 잘 알고 있었다.

사거리에서 신호대기 중인데 본인 차는 버스 뒤에 서 있었다.

온몸이 긴장된 상태에서도 이 차가 코너를 돌면서 버스를 추월해야 나는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좌회전 신호가 켜지자 버스가 앞서 움직였고 본인 차도 좌회전을 하였다.

버스 좌측으로 차선을 바꿔서 가면 몇십 초도 안 되어 회사에 도착하여 아픈 속도 달랠 수 있을 텐데.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눈치 없는 행동인가?

그 기사는 버스 뒤에 차를 바짝 대고는 손님을 태우기 위해 정차한 버스가 움직이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눈치코치 제로인 사람.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그렇게 트러블로 가득 찬 장상태를 알리기 위해 몇 번을 외쳤건만.

1초가 하루 같은데 버스 뒤에서 기도나 하고 있다니…

어느새 본인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있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인내하긴 처음이었다.

그 친구는 거품을 물며 긴박했던 상황을 말했지만 트러블로 가득 찬 장의 결말은 듣지 못했다”


우리들이 몸담고 있는 대부분의 회사는 구성원 개개인 보다 우리라는 단어에서 느낄 수 있듯이 공동체를 중요시한다.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 보다 팀플레이를 잘하는 선수가 더욱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팀플레이가 중요시되는 풍토에서 주변 상황을 적절히 파악하고 상대방의 툭 던진 말 한마디, 미세한 행동이나 분위기를 보고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눈치 있게 행동하는 것’이 원활한 공동체 생활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직장상사나 힘 있는 부서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라는 부정적인 의미의 눈치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여 회사 구성원 간 원활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회사의 긍정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눈치를 의미한다.


오랜 교육과정을 마친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굴지의 대기업이나 근무시간이 짧으면서 급여를 많이 주는 회사에 들어가려고 노력한다.

엄청난 노력 끝에 좋은 회사에 취직한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깐,

처음 마주하는 직장동료는 매우 어색하고 어떻게 마음을 맞춰가야 할지 난감하다.

성장과정과 듣고 보고 배워 온 교육과정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서로 마음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

대학을 가기 위해 학력고사를 준비하는 것보다 어렵고, 인기 있는 회사 취직시험 공부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회사에 적응하는 것이다.


출근하여 나의 자리에 앉아 있어도 좌불안석이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차라리 누군가가 구체적인 지시를 내려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모든 것이 어색하다.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든 부서나 맡은 업무가 바뀌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항상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이렇게 어려운 회사생활의 모든 것을 학교처럼 가르치는 곳은 없다.

구성원 개개인이 눈치껏 배워야 한다.

눈치껏 행동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학원(일명 눈치학원)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세상은 한층 부드러워질 것이다.


그런데 회사생활 하다 보면 참 눈치 없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점주환경이 어렵거나 직원들의 관심부족으로 평가에서 꼴찌를 하고 있어 대책회의를 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에서 ‘오늘 점심 뭐 먹지?’라고 고민하는 차장, ‘어제 간 술집 분위기 좋다며 다시 한번 가자’고 옆직원을 꼬드기는 과장.

이러니 매번 평가에서 꼴찌 할 수밖에…


연말이 다가오면 내년 업무계획을 짜기 바쁘지만,

수십 년 해 오는 일이라 우려먹을 만큼 우려먹다 보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어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데,

자기 맡은 분야에 대한 업무계획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 해외 놀러 갈 계획 짜느라 정신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그 얄미운 녀석.

얼마 전 수행했던 업무에 오류가 있어 관련분야 담당자와 심각하게 해결책을 찾고 있는데,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훈수 두는 직원.

지난밤 회식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상대방은 ‘그만 좀 했으면’하는 눈치를 주는데도 재밌다는 듯 꿋꿋하게 끝까지 말하는 직원 등등 눈치 없는 행동을 하는 주변인들이 의외로 많다.


'눈치 없는 게 인간이가'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아마 회사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눈치 있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나는 말할 것이다.


아무리 내가 미래지향적이고 회사에 돈을 무지막지하게 벌어 줄 수 있는 멋진 아이디어가 있다 하더라도 CEO를 비롯한 결정권한을 가진 동료들이 공감하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가는 개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평소에 눈치껏 행동하여 원활한 관계를 맺어 두지 않으면 의견을 말할 기회를 얻기 힘들 뿐 아니라 나의 의견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되지 않나'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누구나 인정할 만한 좋은 생각은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각자 다른 사고와 다른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구성된 회사 조직에서 특정인의 생각에 쉽게 동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한 공감과 동조를 이끌어 내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평소 눈치껏 동료와의 관계를 맺어 온 사람의 의견이라면 한결 수월하게 공감할 것이다.


고서를 읽어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군주나 상사의 심기를 잘 헤아려 행동해야 하고 그러한 행위들이 쌓여 인정받게 되고 결국 자신의 의지대로 국가나 조직을 이끌 수 있는 위치에 오른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처음부터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독야청청 행동한다면 결국 평생 아무런 결정 권한이 없는 하찮은 지위에 머물러 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운이 아주 탁월한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하지만 가끔씩은 눈치 없는 행동이 회사의 큰 전략방향에 힘을 불어넣어 신속히 진행되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은행에 들어온 지 3년 차 되는 햇병아리 행원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나는 80여 명이나 되는 지점인원의 원활한 업무를 지원하는 서무 보조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때 은행 전체적으로 업무 온라인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본점에서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한 ‘은행업무 온라인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은행장이 중심이 되어 모든 임직원이 힘을 모으고 있는 중요한 사업이었다.


원활한 사업 진행을 위해 본점 전산부에서 각 지점 서무담당 책임자를 집합시켜 사전교육을 시키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였다.


드디어 첫 번째 테스트하는 날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토요일 반나절까지 은행문을 열어 두었기에 테스트는 일요일에 실시했다.

내가 근무했던 지점은 우리 회사에서 규모가 매우 큰 지점이었고, 은행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업무가 일어나고 있었기에 테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본점차원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업이라 여러 차례 영업점별 책임자를 모아 그 중요성을 설명하고 테스트 진행 절차와 방법을 설명했지만 영업점 직원들에게는 처음 해 보는 그냥 그런 업무로 느껴졌다.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요일 아침, 테스트를 위해 출근해 보니 사전교육을 갔던 책임자는 출근도 하지 않았다.

직원 중 테스트 방법과 절차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직원들은 본점이나 다른 지점에 물어가며 겨우 몇 건 전산테스트 해 보았다.

80여 명이 하루 종일 전산 테스트한 것이 20여 건 정도 되었다.

그때 우리 지점의 하루 평균 전표건수는 약 2,500건이었다.

오후 4시쯤 '서무계는 각 지점에서 그날 전산입력 테스트한 결과를 본점으로 보고하라'는 연락이 왔다.

서무보조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기에 나는 보고용지에 '2,500건 중 20건 테스트 완료'라고 작성하여 타 책임자 결재 후 본점으로 보고하였다.


다음날, 은행이 발칵 뒤집혔다.

미래 은행 업 영위를 위해 매우 중요한 사업을 테스트하였는데 협조가 잘 되지 않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은행장이 전체지점 중 테스트 실적이 가장 저조한 지점의 지점장과 담당 본부장을 당장 은행장실로 불러들이라 호통쳤기 때문이었다.

본점 전산부에 근무하고 있는 동기가 내게 전화를 해서 우리 지점이 테스트 실적 전국 꼴찌라고 했다.

그것도 아주 탁월하게 저조한 실적으로 꼴찌라고 했다.


우리 지점장은 지점으로 출근하지도 못한 채 본부장과 서울로 불려 갔고 오후 늦게 되어서야 지점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우리 지점 모든 직원들은 초긴장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다.

지점장은 돌아오자 말자 서무담당 책임자에게 직인함을 가지고 지점장실로 들어오라고 소리쳤다.

서무담당 책임자는 지은 죄가 있어서인지 사색이 되어 직인함을 가지고 지점장 실로 들어갔고, 항상 열려 있던 지점장실의 육중한 문이 닫혔다.

잠시 후 와장창 물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점장이 서무담당책임자의 직인함을 집어던진 것이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지점장의 고성이 들렸다.


나중에 본점 전산담당 친구에게 들은 얘기로는 지점장과 본부장이 은행장에게 매우 혼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다른 지점들은 실제 한 것과 달리 뻥 튀겨 보고했는데 너무 곧이곧대로 보고했다’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다.

눈치껏 적당히 보고했으면 이런 사단은 없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순간 스쳐갔다.


본부장은 그날 사유서를 써서 다시 은행장에게 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서무담당 책임자는 직인함을 빼앗겼고 한동안 대금고 서류를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직속상사가 대금고에 있는 엄청나게 쌓인 전표서류 정리하는 것을 보고 눈치 빠르게 마대자루를 준비하여 함께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한동안 금고에서 전표뭉치들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2차 테스트가 있었다.

지난번 지점장과 본부장이 은행장에게 혼난 사건이 은행 전체적으로 소문이 나 있었기에 2차 테스트 참여 열기는 매우 높았다.

높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 그렇게 큰 사건을 보고도 간 크게 대충 할 지점장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 지점은 아침 일찍부터 지점장이 출근하여 테스트 상황을 수시로 체크하였다.

하루 종일 전날 발생한 전표를 전산입력 했지만 워낙 종류가 많고 매수도 많다 보니 100% 입력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드디어 테스트 시간이 끝나고 본점에 보고할 시간이 왔다.

지점 업무별 담당자에게 테스트 입력 결과를 받아보니 외환과 대부업무 중 일부 전표가 입력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실제 입력된 전표 건수 2,500건 중 2,450건 테스트 완료’라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지점장께 결재를 올렸다.

그 보고서를 본 지점장은 불같이 화를 내며 ‘왜 2,450건이냐, 2,500건 중 2,500건으로 보고하라’고 소리쳤다.

어린 마음에 안 한 걸 안 했다고 하는데 왜 거짓보고서를 쓰라고 하냐며 속으로 불쾌해하며 지점장이 들리지 않도록 욕 한바탕 한 후, 지점장이 요구한 대로 ‘100% 테스트 완료’ 보고서를 작성하여 본점으로 보냈다.


이런 우여곡절로 은행에서 야심 차게 계획한 종합온라인 시스템이 생각보다 상당히 빠르게 정착되었다.

비록 눈치가 없어 모시는 분들을 힘들게 했지만, 은행이 반드시 해야 했던 큰 사업을 예상보다 훨씬 빨리 정착시키는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


5월 초순인데 한여름 더위가 찾아왔다.

어리 버리 한 봄에게 미안했든지,

새벽부터 비가 내리며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집에 혼자 남아 책을 읽고 있는데

점심거리 사러 시장 간 아내가 전화를 했다.

‘비도 오고 장 본 물건도 무거우니 데리러 와줘요’

부리나케 차 키를 찾아 주차장으로 갔다.

시동을 건 후 아내가 앉을 앞자리 열선버튼을 눌렀다.

10분 정도 달려가자

우산을 받쳐 쓴 채 추위에 웅크리고 서있는 아내가 보였다.

짐을 받아 트렁크에 넣는 동안 아내는 차에 올라탔다.

트렁크 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돌아와 앉자

아내는 나를 보고 ‘오~ 센스가 늘었는데’라며 칭찬한다.

기분이 좋다.


“눈치는 센스다”


특히, 회사생활에서 눈치 있는 행동은 인정받고 사랑받는 티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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