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여」-- 신천희의 시
술이여
취중에 모든 잘못을
너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용서하라
술이여
다시는 널 찾지 않겠다고 맹세하고도
또 너를 찾음을 모른 척하라
술이여
너는 나에게 모든 것을 다 주지만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 것을
술이여
그래도 너 때문에 산다는 그 말로 위안으로 삼으리”
우리나라는 술에 매우 관대했다.
부어라 마셔라 하며 거의 매일 술에 절어 사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출근하다 보면 밤새도록 술을 마셨는지 비틀리며 어디론 가 걸어 가거나 길바닥이나 계단에 주저앉은 사람들을 보곤 했다.
나는 회사에 들어오기 전까진 술을 거의 하지 못했다.
아버지를 닮았으면 꽤나 명성을 떨치는 주당이 되었을 텐데, 다행히 술을 못 마시는 엄마를 닮아 한 두 잔 술에도 숨을 할딱이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유전자가 내게도 숨겨져 있었던 것 같다.
회사에 들어온 후 조금씩 마시던 술의 량이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술을 마실 때마다 항상 경험하던 숨가쁜 증상이 점차 마비되어 가자 술의 량이 조금씩 늘었던 것 같다.
말단 행원일 때, 4년간의 대구생활을 마치고 김천으로 이동하였는데 그 지점에는 나와 죽이 잘 맞은 직원들이 있었다.
사는 아파트가 비슷한 위치에 있어 자주 모였고 매우 빈번하게 음주가무를 즐겼다.
그 당시에는 야근을 하지 않고 집에 가면 뭔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느낌을 가지곤 했다.
거의 매일 야근했고 야근을 한 후 술의 양이 많고 적음을 떠나 한잔하였다.
그러다 발동이 걸리면 노래방으로 직행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노래에 진심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몇시간을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늦은 새벽이 되면 노래방 기기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오곤 했다.
테레비젼에서 정규방송 시작을 알리기 위해 나오는 애국가처럼, 그 시간에 노래방기기에서 애국가가 나왔다.
마치, 모두 잠에서 깨어 출근해야 할 시간에 아직도 노래하고 있냐고 핀잔을 주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우리는 그 애국가를 마지막 곡으로 들으며 퇴근하곤 했다.
아직도 그 때 애국가가 노래방 기기에서 왜 흘러나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땐 AI 기기가 아니었는데…
최근 에야 우리 중 누군가가 틀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쨌든 애국가는 노래를 멈추고 집으로 가란 신호였다.
그 때의 음주문화는 굉장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도 나의 주량은 조금씩 늘고 있었지만 별반 큰 차이가 없었다.
그렇게 말단 행원의 시절은 지나가고 2000년에 과장 책임자가 되었다.
책임자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내가 담당하던 회사 대표님이 가끔씩 나를 점심때 불러내어 식사를 사 주셨다.
간단한 백반집이 그 대표님의 단골집이었는데 식사하면서 꼭 반주를 드셨다.
그 분은 주량이 세서 식사 중에 기본 소주 2병 정도 마셨는데
그 때마다 ‘남자가 사회생활 멋지게 하려면 술도 마실 줄 알아야 한데이’라고 말씀하셨다
.
그러면서 내게 술을 따라 주셨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반 병 정도 마시곤 했다.
낮 술 반 병은 적은 량이 아니었다.
특히 나처럼 주량이 형편없는 사람에게 낮술 반 병은 죽음의 량이었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상태로 사무실을 들어서면 혹시라도 누군가 볼까 봐 후다닥 2층 휴게실로 갔고 그곳에서 얼굴색이 제대로 돌아올 때까지 잠깐 쉬려고 의자에 앉으면 금새 눈이 감기고 깜빡 잠들곤 했다.
그런데 하필 그때마다 지점장님이 지점 여기저기 둘러 보시다 휴게실에 들러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나를 보곤
‘쫄다구 과장놈이 또 졸고 있네’라고 미소를 띠며 반 놀림의 말씀을 하셨다.
그렇게 힘겹게 배운 술이었다.
몇 년이 지나자 주량이 봄철 대나무 죽순 자라듯 늘어났다.
술을 잘하지 못하면 ‘에이 남자가 사회생활 하는데 주량이 약해서 어디 쓰나’라며 술 잘 마시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즐비하던 시절이라 술 잘 마시는 것도 큰 장점이 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특이한 음주 버릇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같은 량을 마시길 바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술잔에 술을 따르고 누군가가 마시려고 잔을 들면 다같이 잔을 들고 부딪히며 원 샷.
이 때 잔을 비우지 않으면 꺾어 마신다며 ‘도대체 어디서 술을 배웠냐’ ‘역도 선수냐’라며 놀리곤 한다.
서로 술을 따라주며 같이 마시는 것은 주량이 약한 사람에겐 고통이지만 그나마 약간의 정이 있는 주법이다.
어떤 때는 사람수만큼의 잔을 한사람 앞에 모아 모든 잔에 술을 채운 후 동시에 모든 잔을 원샷하고 옆 사람에게 잔들을 넘기는 일명 ‘테러주’나,
자기 앞에 술병을 하나씩 두고 각자가 다같이 잔을 채운 후 어느 한사람이 술을 마시면 모두가 동시에 잔을 비워야 하는 정도 없고 술만 취하는 주법도 있다.
참 고약한 술 문화다.
이렇다 보니 술을 마신 후 사고가 나면 '술 한잔했으니 그럴 수도 있지'라며 용서하는 분위기가 최근까지 이어져 왔다.
주변을 둘러보면 젊은 시절 음주 단속에 걸려 면허 정지된 경험이 있는 사람이 꽤 많이 있다.
불행히도 젊은 시절 나도 그런 경험을 한 사람 중 한명이다.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차를 가지고 있는 젊은 직원은 많지 않았지만
나는 회사 들어오자 말자 운전면허증을 취득했고, 면허증 취득 후 곧바로 중고차 한 대를 사서 출퇴근했다.
주차장이 협소하여 가능하면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권장하였으나, 나는 자가용으로 출퇴근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지점 인근 유료 주차장에 주차를 하였으나 눈치를 봐 가며 가끔씩 회사건물에 주차하곤 했다.
그 당시 야근과 술 한잔 후 퇴근하는 것이 회사의 분위기다 보니 나는 술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자주 마셨다.
대리운전이라는 것도 없었던 시절이라
술 마시는 날은 차를 회사에 두고 가야 했다
.
완벽하게 항상 두고 간 것이 아니라 대부분 그랬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이 아닌 날이었다.
가끔씩, 술을 조금 마셨다고 생각되는 날에는 손바닥에 입김을 분 후 손바닥을 코에 대어보고 술냄새가 나지 않다고 생각되면 용감하게 운전대를 잡았다.
머리속으로 끊임없이 술냄새가 나지 않아 괜찮을 거라고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넣으며 운전을 했지만 집에 도착 할 때 까지 마음 졸여야 했다.
회사에서 30여분쯤 가야 하는 곳에 집이 있었다.
가는 과정에 터널 한 곳을 지나야 했는데 가끔씩 터널 끝나는 장소에서 경찰이 음주 단속을 하곤 했다.
술을 마신 후, 택시를 타고 터널을 지났는데 음주단속을 하는 걸 보면 택시비가 아깝지 않았다.
음주단속에 걸려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러게 술 마셨으면 차를 두고 가지'라며 한심스럽게 생각하는 한편, 음주 운전하지 않고 온 것에 대한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세상사 그렇듯 ‘항상, 언제나, 늘, 영원히’와 같은 말은 평범한 인간에게 어울리기 어려운 것 같다.
과장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수시로 하는 직원 회식이었지만 그 날은 술을 적지 않게 마셨다.
술 냄새 풀풀 풍기는 상태였고, 누가 봐도 술 마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른 날과 달리 그날은 무슨 만용이 생긴 건지 운전대를 잡았고 매우 조심스럽게 운전을 해서 드디어 집 가까이 갔다.
이제 저 터널만 지나면 집이었다.
도둑질하 듯 조심스럽게 터널로 진입했다.
내 뒤로도 많은 차들이 따라붙어 있었다.
취중임에도 집까지 아무일 없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운전해서 터널곡선이 끝나는 구간에 다다랐는데 갑자기 수많은 불빛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음주 단속 중이었다.
'아이고, *됐다'
차들 두고 오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성난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도망칠 구멍은 없었다.
도둑질한 물건을 들고 있는데 주인에게 손목을 잡힌 것과 같은 빼박인 상황이었다.
'오, 酒여, 어찌하오리까!!!"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지 만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고 천천히 나의 차는 음주단속을 하는 경찰관 앞에 다 달았다.
술에 취해 ‘에라 될 대로 되라’고 만용을 부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은 철없는 생각이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절망과 부끄러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걱정만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경찰이 측정기를 입에 갖다 대고 숨을 '후~~'하고 불라고 하자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인식한 나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약하게 '후'하고 숨을 측정기에 불었다.
이런 음주운전자를 한두 번 경험한 경험했겠는가?
경찰은 다시금, ‘길게 '후~~'하고 부세요’ 라고 하자 나는 어쩔 수 없이 '후~'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경찰은 '더더더....'라고 강요했고, 나는 곧 차 밖으로 끌려 나갔다.
순식간에 죄인이 되어 있었다.
마치 수갑을 찬 채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날은 민관 합동 단속 중이라고 했다.
그냥 단속과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매우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다는 뜻인 것 같았다.
나는 1차 측정한 경찰에 이끌려 버스로 갔는데 나같은 사람이 많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 버스 안에는 서너 명의 경찰이 앉아 있었고 1차 음주측정에서 걸린 사람을 더욱 세밀하게 측정을 하여 수치를 작성하였다.
내 앞에 몇명이 있었기에 나는 간신히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참이 지나서야 내 차례가 돌아왔다.
나는 버스안으로 들어가기 싫어 버스밖에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데 빨리 들어오라는 손짓과 독촉에 어쩔 수 없이 도살장에 끌려온 소처럼 마지못해 느릿느릿 버스안으로 들어가 경찰 책상 앞에 앉았다.
앉자 말자 음주 측정기에 '후~'하고 불어라고 했지만 나는 머뭇거리며 불지 않았다.
나의 마음은 ‘불지마, 불면 큰일나. 끝까지 버텨봐’ 라고 소리치고 있었고, 정말 정말 불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버티자 경찰이 친절하게 물을 한 통 주며 마시고 나서 불어라고 했다.
마치 사형 당하는 죄수에게 마지막 밥 한끼 먹이듯…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물을 마시며 한참을 버텼으나 더 이상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물을 한통 다 마시고도 불지 않자 경찰이 ‘너 같은 놈들 많이 봤어, 버텨야 소용없어’ 라는 눈빛으로 눈을 껌벅거리며 불어라고 강요했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측정기에 '후~~'하고 불었다.
그런데, 아니, 이게 웬걸.
음주 측정기상 음주수치는 알 수는 없었지만,
그 경찰분이 내게 '술 많이 안 마셨네요'라고 말하며 집으로 가라고 했다.
‘오잉, 이게 뭔 상황’
나는 마치 도살장에서 탈출한 소처럼 번개같이 버스 밖으로 나와 그곳에서 약 300미터쯤 떨어져 있는 집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부리나케 갔다.
한 순간의 방심이 불러온 무서운 경험이었다.
그때 느꼈던 당황스러움은 트라우마처럼 내 맘 속에 남아있다.
그 후 대리 운전이 활성화되었다.
대관업무를 담당하면서 거의 매일 술이었다.
매번 대리운전을 해서 갔지만, 금요일처럼 음주자가 많은 날은 대리기사를 배정받기가 쉽지 않아 신청 후 1시간 이상 기다릴 때도 많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기다리며 차 밖을 서성거리다 보면 성질도 나고 바깥바람에 술도 깬 듯하여 운전대를 잡고 출발하려고 하는 나를 보곤 했다.
하지만 오래전 경험했던 그 부끄러운 경험을 떠올리며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지금도 그런 상황을 생각 할 때마다 아찔함을 느낀다.
약간만 방심해도 음주운전 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술은 이상한 용기를 불러 일으켜 과격한 운전을 하게하고 그 결과 사고로 이어지게 된다.
과거에는 ‘그럴 수 있지'라며 큰 사회적 문제로 여기지 않았지만, 지금은 '음주운전은 살인행위다’라며 심각한 범죄행위로 보고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고히 자리 잡히는 등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인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 같은 급여생활자들은 음주운전을 하다가 걸리면, 음주 측정 수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최소 감봉에서 면직이다.
조금만 수치가 높으면 면직처리가 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술 마시고 운전 한 번 했다 가는 패가망신 당한다는 의미다.
음주운전은 회사에서 어떤 징계를 받느냐의 문제보다 자신뿐만 아니라 여러 선량한 가정을 풍비박산 낼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행위이다.
본인의 미래를 위해, 가정의 안녕을 위해, 더 나아가 수많은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절대 음주운전 하지 말아야 한다.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아 무사히 집으로 간 것을 운이 좋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더 큰 사고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술 잔을 입에 댄 순간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무조건 대리운전 하는 것을 습관화해야 한다.
대리비 몇 만원 아끼려다 평생 직장 날아간다.
'음주운전은 미친 짓이자 살인행위고, 자신과 가족 그리고 주변 모든 사람들의 인생을 파괴시키는 최악의 행위’라는 것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자.
많은 사람들은 술이 사람에게 주는 서정적인 분위기를 노래한다.
하지만, 그런 노래도 음주운전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아름다운 ‘술의 노래’를 차 없이 안전하게 즐기자.
「술이 고픈 밤」 주현숙의 시
오늘은 몹시도 술이 고프다
꼬마 잔에 맑은 소주 한 모금
주먹 잔에 소리마저 시원한 맥주 한 모금
곡진 잔에 향 먼저 마시는 와인 한모금
음…아니면
구릿빛 잔에 뽀얗게 담기는 막걸리 한 모금
술 한 모금에 안주는 시름으로
두 모금에 안주는 외로움으로
세 모금에 안주는 걱정으로
네 모금에 안주는 눈물로
술이 고픈 밤
술이 고픈게 아니라
정이 고프고
사랑이 고프고
맘이 고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