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 이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아들, 그걸 들었니? 얼마나 들었어’
'그냥 그런 말 들리길래 바로 끊었어'.
허허. 개 당황...”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고 듣기 위해 편지를 썼다.
자주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그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놓칠까 봐 마음에 드는 문장이 완성될 때까지 쓰고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하였다.
애틋한 마음을 담아 쓴 편지 속에는 세상의 아름다운 모든 말이 적혀 있었다.
겨우 편지가 완성되면 몇 번이고 주소를 확인한 후 밥풀로 봉투를 붙여 우체통에 넣었다.
편지를 쓰고 일정시간이 지나 답장이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는 날이면 하루 종일 빨간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오는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리곤 했다.
그런 편지를 받은 상대방이 어떤 마음을 내게 보냈을까 하는 궁금함과 기대가 섞여 있는 기다림이었다..
이제 그런 기다림은 멀고 먼 옛 서적에서나 찾을 수 있다.
완료버튼을 누르면 0.1초만에 상대방에게 나의 마음이 도달하는 시대에 사는 요즘 사람들은 기다림이 주는 설레임과 아련함을 알지 못할 것이다.
빠르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특히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하며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핸드폰은 안성맞춤인 발명품이다.
핸드폰은 매우 편리한 도구인 것은 확실하지만 매우 위험한 물건이기도 하다.
유선 전화기처럼 통화하기 위해 수화기를 들거나 끝내기 위해 놓는 절차가 버튼 하나에 의존하다 보니 그 위험은 매우 크다.
잘못 터치 되면 순식간에 의도하지 않은 대상에게 전화가 가기도 하고, 통화를 하고나서 끊었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통화중인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대관 업무를 담당할 때다.
술자리에서 핸드폰을 만지다 나도 모르게 고위 공무원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전화가 된 지도 모르고 그냥 동석한 사람과 얘기를 나누며 술을 마셨다.
다행히 그 분이 잘못 누른 것으로 이해해 줬지만 매우 당황스러웠다.
지금도 생각하기 싫은 최악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약과였다.
살면서 너무 당황스러웠던 더 큰 최악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행장 때였다.
우리 직원들과 사무실에서 차 한잔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아들 또래인 직원들도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 또래에 관한 대화를 했다.
그러다 습관처럼 '우리 아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 만해도 말하는데 조리가 없었다'며 아들 단점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기욕을 하는 걸 느꼈는지 아들로 부터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아들은 대학교 시절에 열심히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취득한 덕분에 젊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대기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대기업 다니고 있는 아이가 한창 일해야 할 시간에 전화를 하다니...
기쁜 맘에 전화를 받아 일상적인 말 몇 마디 하고, 평소처럼 ‘열심히 해라’ 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직원과 하던 얘기를 계속했다.
'
우리 아들은 말하는데 조리가 없어서 마치 구멍 난 신문을 읽는 것 같다.
그래서 스피치 학원도 보내고’ 등등
그냥 자식 칭찬하면 팔불출이라기에
아들 욕도 좀 하면서 젊은 직원들과 얘기를 나눴다
.
저녁에 퇴근하자 아들이 집에 와 있었다.
서둘러 씻고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려는 데 갑자기 아들이 '아빠, 아빠는 직원들에게 내 욕하며 시간 보내나요?'라고 말한다.
'왜, 그게 무슨 말이야?'
‘낮에 아빠하고 통화하고 난 후 전화가 끊어지지 않았는데, 아빠가 '아들은 구멍 난 신문 읽는 것처럼 말한다'면서 욕하던데...'
으악
,
이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
'아들, 그걸 들었니? 얼마나 들었어"
'그냥 그런 말 들리길래 바로 끊었어'.
허허. 개 당황...
급한 김에 변명을 늘어 놓았다
'우리회사에 아들 또래가 많은데 아들 칭찬만 하면 아버지를 팔불출이라고 할수 있잖니.
그래서 아들 흉도 좀 보는 척하다가 우리 아들 열심히 공부해서 대기업 들어 갔다고 칭찬하는 거지'
변명을 늘어 놓으면서도 아들에게 너무 미안한 맘뿐이었다.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겨우 참으며 아들 맘 풀리길 바라며 주저리 주저리 변명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대략 ‘아버지가 팔불출 되기 싫어 아들 칭찬하기 전에 맛보기로 쪼끔 흉봤다’는 식의 말이었다.
이런 억지스러운 말도 착한 아들은 이해해 주며 넘어갔다.
정말 진땀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주변사람들로부터 이런 땀나는 경험얘기를 많이 듣는다.
어느 날 다른 금융기관에 다니는 지인이
‘자기 팀원 중 한 명이 저녁에 술을 마시다가 담당부장한데 전화해서 '부장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라며 온갖 좋은 말을 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전화가 끊어진 줄 알고 같이 자리한 또래 직원들에게 부장을 헐뜯기 시작했고 그 부장은 이런 대화를 한참 동안 듣고 있었다.
다음날, 술 냄새 풀풀 풍기며 출근한 그 직원을 부장이 방으로 불렀다.
직원이 방으로 들어가자 방문이 닫혔고, 한참의 시간이 흘러 그 직원이 부장방을 나왔을 때 얼굴은 회색 빛으로 굳어져 있었다.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 만, 그 후 그 직원의 회사생활은 많이 불편해졌다’며 재밌다는 듯 내게 말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술자리가 많은 회사원이라면 각별히 조심 또 조심해야겠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라는 구호가 한때 유행했었다.
진짜 만고불변의 진리다.
이제는 편안하고 안전한 인생을 위해 하나 더 추가해야 한다.
‘꺼진 핸드폰도 확인하고 또 확인하자’.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당해보고 후회 말고,
자나깨나 핸드폰 조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