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by 선데이로스트

수수한 말투와 검소한 태도, 너는 70년대 한국영화의 주인공 같다.

1호선 회기역, 개찰구에서 달려오는 너는 늦어서 미안하다며 예쁜 웃음을 지었다.


낮 세 시. 커피를 마시기에 적당한 시간이었다.

카페 사장님은 스피커에 대해, 우리가 고른 커피에 대해, 그 커피의 원두에 대해 친절히 설명했다.

자연스러운 미소는 내내 함께 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을 감상했고, 너는 오늘 들은 수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든 것을 계획에 맞춰 살던 나를, 너의 계획에 이끈다.

이 낯선 감정은 사방에 낀 안개 같았다.

어쩔 줄 몰랐다. 기쁨에, 마음이 춤췄다.

우리는 아낌없이 서로의 시간을 나눴고, 눈가와 입가의 주름은 부드럽게 파였다.


우리를 지켜보던 태양은 조심스레 모습을 감췄다.

남은 건 차가워진 바람과, 더욱이 편해진 우리였다.

각자의 시간에서 우리 자신도 모르게 공유하던 그 장소.

2년의 시차는 비로소 맞물렸다.


이 세상에 우리 둘밖에 없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베네치아에서 산 발사믹 식초와, 가을 같던 함부르크의 8월.

나는 네 앞으로 펼쳐질 환상 같던 날들에 기대를 가득 담아도 괜찮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너는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고 있는 긴 이별 앞에 나는 다시 혼자 그 장소를 찾았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순응해야만 하는 현실도 마주했다.

허락도 없던 마음이 미운 모양으로 바뀌어도 어쩌겠나.

모든 게 그렇듯 기억은 점차 무뎌지고, 그 순간은 어느샌가 흐려졌다.


마음이 아픈 날, 그날이 불쑥 떠올랐다.

그 하루를 생각하던 한여름, 봄바람을 느꼈다.

기억이 닳지 않게 상자에 보관할 수는 없을까.

그날 단 하루만을, 오래오래 아껴 꺼내 들춰보고 싶다.


아직도 꿈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라는 기분이 든다.

행복에 들뜬 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오늘도 내일도, 다가오는 시간 속에 행복이 언제나 너의 곁을 맴돌길.

작가의 이전글쉼 속의 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