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타이중시 허우리구. 창 밖에는 논밭이 전부이다. 그 사이에 의아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는 8층 신축 건물. 주변의 풍경과는 이상하리도 어울리지 않아도, 그 자체로 특별하다. 땅으로부터 7개의 층만큼 떨어진 이 방에서는 이 시골 동네가 한눈에 보인다. 아열대의 섬나라에서는 찬바람에 몸이 시릴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창문을 자주 열어둔다. 창문을 열면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닭들이 우는 소리가 들리고, 새의 지저귐이 들린다. 햇빛이 침대에 펼쳐진다. 이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침대보는 올리브색으로 정했다. 그렇게 하면 집 안부터 창밖까지 하나처럼 이어질 것 같았다.
주변에는 카페가 없다. 그래서 이 작은 방을 카페로 만들었다. 원두를 정성스럽게 간다. 거친 커피 가루를 필터 위에 조심히 붓는다. 뜨거운 물을 붓는다. 신선한 원두를 사용한 날은 원두가 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얼마 뒤, 똑똑 커피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나의 단골이 됐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대개 또다시 찾아온다. 스테레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인디밴드의 노래들은 바람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와 어우러진다. 창을 열었을 때, 자연의 소리와 어우러지는 음악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형체를 가진 단단한 물체 같던 음악은 고운 입자가 되어 자연에 빈틈없이 스며든다. 그럴 때면 종종 예상치 못한 행복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타이중으로 가는 길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조금 더 부드럽게 내렸다면 들뜬 내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비는 생각보다 거세게 내렸다.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어폰 안에서 흐르는 노래는 나를 아주 기분 좋고 깊은 잠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선명한 꿈을 꿨다.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 모든 건 출발하기 전과 같았다. 디퓨저에서 나는 익숙한 나무 냄새 사이로 커피 원두의 고소한 냄새가 섞여있었다. 이 포근한 냄새를 나를 부드럽게 반겨주었다. 머릿속은 아직 진정되지 않음을 느꼈다. 분명 설렘이었다. 심장이 평소보다 1cm 정도 떠있는 기분이 들었다. 간질거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짐을 내려두고 에어컨을 틀었다. 입고 있던 옷을 벗어 가방 속의 옷들과 함께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한국보다는 더웠던 봄이 지나 여름이 온다. 때때로 비가 강하게 내리고, 매일이 습했지만 대체로 신사적인 여름이었다. 계절이 그렇듯 떠나기 직전에는 좋은 기억을 남긴다. 9월이 반쯤 지나면 가을이 찾아와야 할 시간이다. 가을이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나는 아직 떠나지 못한 여름이 보인다. 더운 나라는 낭만적인가?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던 생각이다. 움츠러들어 그 안을 따듯하게 하고, 감싸이는 것만이 낭만이라 생각했다. 나는 대만에서 낭만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