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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천의 봄 Jan 14. 2023

내가 한 시간을 잔다면, 30명의 아이들이 죽는다

아돌포 카민스키의 죽음을 기리며 써보는 불의에 대해 저항하는 행동이란?

https://n.news.naver.com/article/366/0000868619?sid=104


아돌프 카민스키, Adolfo Kaminski,라는 프랑스의 사진작가, 2차 대전 시기에 문서 위조작업으로 수 만 유대인의 삶을 구한 인물이다.

이 사람이 별세했다는 기사를 보고 나서, 내가 이전에 인권&인도주의 활동을 하며 겪었던 경험에 대해 글을 남기게 되었다.


이야기는 몇 년 전, 서울에 위치한 모 국제개발&사회복지 NGO 면접 현장에서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나름 즐겁게 최선을 다해 면접을 보고 있는 와중에, 해당 기관 인사총괄 담당자의 한 질문이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질문인즉슨, 내가 이력서에 기술한 이전에 국내&해외 난민들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불법이나 위법 사실이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다른 사람들이 쉽게 하지 않는 특수한 상황에서 다소 진보적으로 일하는 경험을 이력서에 기술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발협력, 사회복지, NGO 분야 종사자이자 인사 담당자답게 현장 상황을 조금 아는 것 같은, 혹은 그런 활동에 대해 개인적인 입장에서 반대하는 입장인지는 모르겠으나,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감정적으로 불쾌하게 만드는 질문이기도 했다. 해당 담당자의 압박 면접 스킬인지, 혹은 추후 취업할 시 기관에 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질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당시에는 내가 너무 긴장을 한 모양인지, 혹은 스스로 당위성이나 반박할 논리를 생각해내지 못한 이유로 대답을 시원하게 받아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돌발 상황에 대해 대처하는 능력을 결국 이성적으로 보여주지 못함에 답변에 버퍼링이 걸렸음은 물론이다.


면접이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억울한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offended 되었다고 느꼈던지 이 질문과 논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했던 활동들을 당위를 위해 논리적으로 설명해보고 싶었고, 그 사람이 여러 정치적 혹은 인도주의적 상황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는 있지만 내 성격상 그 사람의 논리를 박살내고 항변하고 싶었던 치기 어린 마음이 가득했는 것 같다. 그 사람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 인간적으로 가득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의 논리와 생각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이해하고 왜 그런 생각을 하나 그러려니 하려는 자세가 내 정신건강에 더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도 내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혼자 열폭하는 느낌을 이겨내는 것이 나 자신에게는 필요한 것 같다. 내 성격이 다른 사람의 반응에 분석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덜 예민한 내 자신이 되기 위해서 노력 아닌 노력을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내가 했던 직업적인 인도주의 활동에서 인도주의적 & 인권의 관점에서 봤을 때, 나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여러 리스크를 감당하면서까지 무모하게 일했던 것 같다. 당시에 소속돼 있던 단체도 나 같은 활동가들이 처할 수 있는 위험,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리스크와 같인 사실들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고려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이미 계약서를 통해 동의가 되었을 수도 있고, 지금 생각해 보면 계약서 내용을 한 번 더 들쳐봐야 기억이 날 것 같다. 하지만 인간적인 감정에서 활동가들을 보호해주어야 하는 곳은 기관, 기관의 멤버들이라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고, 그 점을 나는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에 혼자 미친놈처럼 가끔 활동가 보호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던 반란군의 역할을 도맡아 하기도 했었다. 다시 되돌아 생각해 보면, 내 자신의 미래와 현실을 담보로 잡은 채 임했던 활동은 어떻게 보면 정말 무모했고, 그 점을 나만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 요소들을 인지하지 못해 주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 남아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물론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건과 상처들이 나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형성했을 수도 있다. 현장 활동가가 가질 수 있는 생각일 수 도 있고,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기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현장과 본부의 괴리감, 거리감일 수도 있겠다. 다만 나의 웰빙과 평화적인 마무리를 위해서는 조금이나마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었다는 생각에 쓴 잔을 삼키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지만, 까딱하면 불법을 저지른 채 미래에 다른 곳에 취업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마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꽤나 큰 리스크를 감당했다고 생각하고, 어쩔 때는 참 겁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것이 내가 종종 처하는 딜레마의 순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는 누군가 이타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이 당연하거나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순간에 나서는 것에 대한 강박 혹은 책임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오지랖으로 주로 표현을 하는데, 때로는 내가 감수해야 할 리스크를 과소평가하면서, 더 큰 당위성, 목표, 좋은 목적에 대해 매몰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다. 그러한 점에서 취약한 것 같기도 하지만, 이게 내 성격이고 인생이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 더 중요하고 큰 당위성, 대의를 위해서 나의 물리적, 감정적, 지성적 능력을 갈아 넣고, 그것을 다 하고 나면 끝에 소진이 된 채로 취약해져 버린 나 자신을 항상 발견한다. 나는 나 자신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어쩔 때는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제일 부러운 사람들은 이 간격을 밸런싱을 잘하고, 혹은 자아나 멘털이 훨씬 튼튼해서 자기 자신과 타자의 간격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 선을 타는 것을 정말 못하는 것 같고, 혼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고 생각하면서, 에너지가 없는 상태로 스스로 다시 상처를 쉽게 입게 되는 악순환에 빠져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을 정말 좋아하면서도, 사람에 대해 두려워하고 상처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최대한 피해의식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 자신이 어쩔 때는 대견스럽기도 하다.


다시 면접 이야기로 돌아와서, 반대로 이러한 논리로 그 인사담당자의 질문을 받아치는 사이다 같은 상상을 하곤 했다.

“그렇다면 세계의 여러 현장에서, 지중해의 한복판에서, 중동의 무질서 속에서, 중남미의 카라반 행렬에서, 그 사람들이 불법이민이건 합법이건 이것은 국가 주권의 영역이라고 충분히 동의하며, 국제적인 협조 및 조정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중에 사람이 익사해 나가고, 배고픔이나 갈증, 질병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 사람들을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돕는 것 역시 불법이자 위법의 영역인가? 그리스, 이태리, 터키의 관점에서 영해를 불법 침입한 선박들을 대포로 합법적으로 격침시켜야 하는가? 또 더 극단적으로 예시를 들어보면, 자국에서 일어난 분쟁으로 인해 합법적인 이주과정 없이 불법으로 전쟁을 피해 국경을 넘고 무단으로 타 국가에 거주하고 있는 난민들은 왜 인도주의 단체이자 당신들의 단체 역시 돕는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한국 여권법에서는 여행금지 구역으로 여행하는 것조차 외교부에서 제한하고 있는데, 이것은 인도주의 단체가 여러 분쟁 지역의 사람들을 돕는 것을 막아버리고 있는 ‘합법적인’ 국내법이 아닌가? 한 해 예산이 몇백억을 넘어가는 당신들의 기관은 그런 곳에 직원을 파견할 수 있는가? 왜 우크라이나, 아프리카 난민들을 돕는 것은 당연하고, 탈북민들이나 난민 지위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왜 당신의 정치적 관점에 따라서 그러한 사람들을 낙인찍거나 터부시 하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


실력이 부족한 동시에, 마지막 저 질문에 대해 위의 내용처럼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한 덕에 해당 기관에서는 합격 소식을 받을 수 없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은 규모가 크고 전통 있는 해외 인도주의 단체에서 근무하는 기회를 얻었다. 물론 여기서도 배울 게 너무 많기도 하고, 부담감과 업무량에 맨 땅에 박치기를 하면서 개고생 하고 있는 과정 중에 있다. 한국인이 별로 많지 않다는 상황에서 한국인으로서의 프라이드와 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 역시 있는 것 같다. 내가 걸어온 경험들 속에서 다양한 곳에서 일했던 경험을 통해 한국 NGO에 대해 좋은 경험과 긍정적인 감정이 많지만, 내가 겪었던 저런 랜덤 하게 개별적인 사례에서 마주하는 시대착오적이고 편협한 질문이나 상황으로 인해 때로는 현타가 올 때가 있었다. 당신들이 개선해야 하리라고 생각조차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개선되고 더 발전하는 곳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한국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중요해져 왔고, 다만 우리의 정신, 문화, 태도가 쌍팔년도에 그쳐있다면, 퇴보하거나 변하지 않는 공룡으로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돌포 카민스키의 말로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물론 내가 위조했던 모든 일들은 불법이었다. 그러나 어떤 합법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인간의 기본권을 말살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그것에 맞서야만 합니다.”

가까운 사례로 북쪽의 김 씨 일가, 역사적인 사례들에서 합법이란 명분으로 행해지는 폭력과 학살을 막으려면 때로는 하는 일이 불법일 수 있다. 이러한 일에 맞서는 과정은 혹은 당신을 감옥에 가게 하거나, 인생에서 큰 리스크를 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다시 맞설 수 있는 용기를 내볼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쪼그라들어버린 소시민적인 마음에서 회의적인 감정이 더 큰 편이다. 왜냐하면 같은 팀이라고 생각했던, 같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조차 이런 생각을 동의를 받을 수 없는 경험을 하고 난 뒤에 그런 생각이 굳혀지지 않았을까. 내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또 이러한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는 화려하게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수고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존경과 축복을 듬뿍 보내고 싶다.


2023.Jan. 개천의 봄. Spring of Kaecheon.


Memorial and Museum Auschwitz-Birkenau

https://maps.app.goo.gl/KA3wwu3noYbGPkUx6?g_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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