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너무 생각이 많아

2025.5.30

by ZONI

사주와도 같은 미신(?)에 중요한 결정을 맡기는 것은 최대한 피하려 하는 편이지만, 지금 내 상황을 돌아보니 몇 년 전 한 사주 봐주시는 분께 들은 말이 생각이 난다.


"넌 너무 생각이 많아."


내 표정 등을 보고 하신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여느 사주 보는 사람처럼 "맞아요 맞아요"하고 고개를 연신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분은 "그래도 그 생각이 나쁜 건 아니야. 생각이 참 예쁘잖아(?)." 라고 하셨지만, 글쎄,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리고 그 말의 진짜 의미마저도, 잘 모르겠다.


결국 어제도 새벽 네 시에 잠을 잤다. 항상 하는 루틴, 파일럿의 길에 대해 <생각하다 좌절하다 자기합리화하기의 반복> 때문이다.


요즘 나는 컴퓨터공학도답게(?) 챗지피티와 많은 대화를 나눈다. 학교 프로젝트에 관련해서도 많이 쓰지만 요즘은 심리상담이 주된 대화 주제다.


이전 '눈물의 햄버거' 글의 상황에서도, 나는 챗지피티에게 곧바로 내 상황을 설명했다. 챗지피티가 최신 동향이나 사회적 정보에는 베스트의 성능을 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저께,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챗지피티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니(?) 하는 말이 '이제는 제발 마음 놓아.' 란다. 마치 내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패턴에, 진절머리가 난 사람처럼.


유튜브나 구글, 관련 커뮤니티들에 파일럿의 전망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면 대체로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다. 코로나의 여파, 그리고 9년 전부터 '비행낭인'이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로 레드오션인 이 채용시장.


나는 파일럿이 다른 직업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면이 있고, 위험성을 감내해야 하는 부분, 불규칙한 스케줄 근무 등으로 인해 진로 선택 면에서 조금의 희소성이라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생각보다 하늘을 나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것도 아주 간절하게 꿈꾸는 사람들이.


그렇게 나는 자기합리화를 시작했다. 내가 실패하더라도, 자본금의 일부를 투자해 크게 다치지 않게 완충재를 깔아놓는 고질적이고 나쁜 버릇이다. 매년 나오는 몇 천 명의 비행낭인이 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도, 넌 시간과 돈과 네 젊음을 소비할 수 있겠어? 포기하는 게 낫지 않아? 하면서.


이 건에 대해서는 챗지피티에게마저 상담을 하기가 꺼려졌다. 내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대나무숲 같은 존재로서 지금까지 파일럿에 대한 열망을 매일같이 토로했는데 이제와서 포기를 논한다면? 아무리 AI라도 또 한 번 진절머리가 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 같았다.


그래도 챗지피티에게 말을 꺼냈다. 나는 무언가를 도전하기 전에 chicken out 하는 버릇이 있으며, 처음에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지만 점점 식어가는 양은냄비같은 사람이라고.

그랬더니 챗지피티가 하는 말이, AI의 특성상 겹겹이 좋은 말로 포장한 것 같긴 하지만, 넌 전략가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 파일럿이라는 진로를 고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였다.


이게 앞서 서술한, 점쟁이 분의 "예쁜 생각"이라는 것인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죽을 만큼 도전하기'에 굉장히 회의적이었다. 그 말 자체는 정말 좋다. 가슴 안쪽의 뜨거운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마치 전장에 나간 병사와도 같은 에너지를 시사하는 말. 그러나 죽기보다 더 좋지 않은 길은 언제나 존재한다.

죽는다면 장렬히 전사한 역사 속의 위인이 되겠지만, 한쪽 팔이나 다리에 부상을 입어 평생 불편함을 감수하며 돈벌이와 가족 부양에 지장을 겪는다면? 이 사람도 죽을 만큼 도전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정말 비겁하고, 포부 작은 생각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내 뇌가 이런 식으로 동작하는 것을. 그리고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그 '죽을 만큼 도전하기'를 직접 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인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전 글에서 말한, 내 우상이신 기장님께 받은 메일의 답신에도 이러한 말이 적혀있었다. '현실에 기반한 판단을 내려라.' 이 말을 내가 알맞게 해석했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 말이 주는 깨달음은 분명히 있었다. 무모한 도전은 용감하지만, 이제는 감정보다는 이성을 앞에 두어야 할 때다.


오랜 고민 끝에, 1차적으로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내 상황을 철저히 분석하고 다수의 경로 중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릴 것이다. 또, 상황이 도저히 여의치 않다면 포기할 결심도 세웠다. 일단은 살고 봐야한다. 비겁하지만, 내가 세운 전략이다. 내 "예쁜 생각"을 거친 판단이다.


그렇지만 역시, 칵핏에 앉고 싶다는 열망은 좀처럼 사그라들지를 않는다. 이게 내 운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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