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얻고도 스스로 만든 족쇄
"달콤한 백수생활 중 찾아온 무기력 타이밍"
쉬게 된 지 벌써 넉 달.
어떤 날은 괜히 바쁘고, 어떤 날은 너무 한가롭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하루가 저물어가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떤 날은 바빠도 즐겁고, 어떤 날은 한가해서 즐겁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내일도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
‘이런 게 처음 느껴보는 행복함이랄까.’ 잠마저도 잘 오는 나날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무기력함이 찾아왔다.
마구 쳐진다고 할까.
‘하아…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카페 투어도, 운동도, 글쓰기마저도.
등록해 둔 수업에 나가는 일조차 귀찮아졌다.
나도 모르게 쌓이고 있던 스트레스.
퇴사 후 이어지고 있는 별도 업무와 그를 마주하는 내 성향이 문제였다.
지지부진.
결론은 필요한 작업인데, 마무리는 안되고 요청과 검토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요청사항이 들어오면 내용 정리 후 회사에 전달하고, 회사는 또 당사자에게 전달하여 확인하고,
다시 받아 정리해 전달하는… 끝도 없고 답도 없는 과정.
이 답답하고 지루한 과정이 나를 지치게 하고 있었다.
가끔 ‘너무 아무것도 안 하고 돈을 받나.’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분명 제안을 받아들일 땐 내 기회비용에 대한 대가임을 분명히 했었는데, 그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처음엔 나름 즐거웠다.
“오늘 자료를 보냈으니 며칠은 쉴 수 있겠군 후훗.”
프리랜서 같은 삶이 너무 좋아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페를 드나들며 자유를 만끽했었다.
하지만 어느새, 못난 나에 성향이 다시 슬금슬금 기어 나와 나를 옭아매려 하고 있었다.
혼자만에 책임감과 의무감에 괴로워지기 시작한 거다.
전형적인 옛날 사람 마인드라고 해야 하나.
한 주라도 보고할 진행사항이 없으면 불안했다.
먼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라는 질문은 용납할 수 없다.
‘연락이 왔을 때 내가 서울에 없으면 좀 그렇겠지…?’
‘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 스트레스도 일이다.
'나는 계약에 근거해 돈 값을 하고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있구나….
노트북과 외장하드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인데,
불필요한 생각에 갇혀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구나…'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치를 내가 나에게 주고 있었다.
‘이 계약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명시적 대가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암묵적인 대가도 포함되어 있었어…’
나는 조직에서 탈출해 자유를 만끽하고 내 여건 속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기만 하면 그만이다.
책임감과 의무감은 마무리가 되기 전까지 손을 놓지 않고 진행상황을 체크해 빠른 정리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다다.
딱 거기까지.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내 몫을 외면하지 않으면 된다.
처음 처짐과 무기력을 마주했을 땐,
백수로서 업됐던 기분 상태가 다운 상태를 맞이한 건가 싶었다.
‘퇴사했으니 몇 달은 놀고 이직을 준비하자.’라고 생각해야 하는 3-40대가 아니었기에
불안함과 초조함은 없었지만 무기력한 기분은 썩 좋지 않은 시그널 같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답을 찾은 지금,
너무나 나다운 내 모습이 참 별로다 싶기도 하고 이런 마음으로 사회생활 내내 일 해왔던 나를 돌아보니
조금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성향과 성격을 이제 와서 어찌 바꾸겠는가.
대한민국은 모든 게 빨리빨리라지만, 세상 느리고 느린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
그 안에서 무조건 빨리 잘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살아온 나라는 사람.
그땐 미처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는데, 고생이 참 많았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니 제발 이 순간을 즐기자.
어차피 세상엔 공짜 돈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얼마 남지 않은 연말까지, 나에게 주어진 양쪽에 이점을 원 없이 누려보자.
자유인이 됐는데 나도 좀 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