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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퇴일기 11편 : 내가 좋아하는 것

나는 아직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퇴사를 마음먹은 이후, 나의 가장 큰 숙제는 정체성을 찾는 일이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무엇을 잘하는 사람일까.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할까.


돌아보면, 나는 살면서 무언가에 완전히 몰입하고 빠져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가장 쉽게 접하고 빠질 수 있었던 좋아하는 연예인 정도는 나도 있었지만, 그 대상으로 인해 방송국을 찾아간다든지 콘서트를 보러가 퇴근길을 기다린다든지 팬미팅에 간다든지.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대상으로 나의 열정을 불태웠던 적은 없었다.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마음은 있었지만 실행에 옮겨 본 적이 없었다.
요즘 말로 극 I 성향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를 이끌어줄 극성 맞은 극 E 친구가 없어서였는지.
돌아보니 참 재미없게 살아온 기분이 든다.




어느날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중 친구 하나가 어릴 때 아이돌 팬클럽 활동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또 다른 친구는 공연을 좋아해 카페 운영진으로 활동하며 공연을 올린 적도 있었다고.

'와 나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삶을 살아왔네...'

‘다들 열심히 살았구나. 그때 나는 뭘 했지….’


나는 늘 뒤에서 조용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반면 그들은 앞에서 적극적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며 함께 울고 웃고 즐겼을거라 생각하니

지난 일이지만 신기하면서도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실 나는 무리 속에서 소위 ‘나댄다’고 표현할 수 있는 성향에 사람들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게 다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잘 안다.
때로는 그런 사람들이 분위기를 살리기도 하고, 나를 웃게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내 스스로가 만든 울타리 안에서,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좋아하는 무언가에 최선을 다해본 적도 없었던 거 같다.


어느날 회사 후배는 “오늘은 엄마가 배우 팬미팅에 가셔서 일찍 들어가야 해요”라고 말한적 이 있다.
‘어머니가… 배우 팬미팅을….’


나는 놀랐지만 그것도 잠시, 너무나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환갑이 다 되어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며,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고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삶을 즐기는 모습.
그거야말로 너무나 건강하고 행복한 삶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보면, 나는 스스로 정한 기준에 묶여 살았다.
“이건 멋있는 거야.”
“저건 촌스러운 거야.”
그런 잣대를 들이대며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만약 과거의 내가 감정을 솔직히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마음 가는 대로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실패해도 창피한 게 아니라는 걸 진작 알았더라면.

아마도 지금 이 순간,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나의 고민은 조금은 덜했을 것이다.


누군가 내게 “요즘 가장 좋아하는 게 뭐예요? 뭘 할 때 행복하세요?”라고 묻었을때 주저하지 않고 말 할 수 있는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에 나는 좋아하는 것의 출발선이 아니라, 관심사의 출발선에 서 있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관심사를 하나씩 경험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행복한 것을

찾게 되리라 믿는다.


너무 늦지 않게 찾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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