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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퇴일기 10편 : 완벽한 이별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퇴사자의 삶

백수의 삶에 점점 절여지고 익어가고 있었다.

노트북을 열어젖히는 것도 귀찮은 나날이 이어졌다.


반퇴라지만, 사실 회사와의 작은 끈이 남아 있었다.

하루이틀, 길게는 종일, 짧게는 한두 시간.

메일을 쓰고, 소통을 하고, 보고를 하는 등 실무는 아니지만, 아닌 것도 아닌 일을 하고 있다.


덕분에 가끔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계획 없는 파이어족의 삶이 일정기간 안정감이 더 유지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때론 ‘하아, 괜히 한다고 했어’라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삶에 적당한 자극은 필요하지’라며

스스로를 달래며 적응해 가고 있었다.



일이 터졌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하아, 정말. 퇴사 후 석 달 동안 한 달도 조용할 날이 없다.

당장 완전한 손절은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굳이 실무에 투입되어야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물론 지금의 삶은 출퇴근의 삶에 비하면 한없이 평온하고 자유롭다.

어느새 나는 회사란 존재를 무의식 속에서 지워가고 있었고, 남아 있는 이들의 이야기도 점점 남의 소식

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퇴사 초기에는 그들의 하소연에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궁금하고 심지어 재밌기도 하여 ‘어머, 그래서

회사는 뭐래?’ 하며 귀를 기울이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그랬구나~’ 하고 영혼 빠진 리액션만

건네는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완전히 퇴사자로서의 자유로움에 익숙해지려는 순간.

그렇게 일이 터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오래 다녔다는 이유로, 지난 일을 잘 안다는 이유로, 후임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나는 불려졌다.

좋은 일도 아니니 당연히 전혀 반갑지 않고, 나를 필요로 함에 존재감을 느끼지도 않으며, 기쁘지도,

흐뭇하지도, 고맙지도 않다.

그냥 귀찮고, 조금 짜증 날 뿐이다.


나는 이제 오래 반복된 직장인의 삶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느끼고 이 삶에 집중하고 싶었는데

다시 과거의 자료를 들춰보고, 기억을 더듬어야 한다니…

이 상황이 너무나 싫다...




완벽한 이별은 언제쯤


완벽한 이별은 언제쯤 가능할까.

미련도 아쉬움도 없는 완전한 이별 말이다.


나에게도 꽃피는 봄이 올 런지...

한 주 남은 8월이 괜히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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