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사랑은 그 어떤 것보다도 무겁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장을 보러 가면 매번 빠지지 않고 따라가는 단골손님이자 좋은(?) 아들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엄마랑 장을 보러 가고 엄마를 도와줘야 한다는 기특한 생각을 하고 따라갔다기보다는 여느 아이들이 그러듯이 그냥 대형마트에 가서 카트 위에 올라타는 것이 너무나도 재밌는 그런 아이였다.
그렇게 엄마와 장을 보러 다닌 지도 이제 거의 15년은 된 것 같다. 그런데 마트의 풍경과 사는 품목만 달라졌지 어쩐지 엄마는 15년째 그대로이다. 15년이면 이제 엄마도 나이가 꽤 드셨는데, 아직도 열심히 좋은 물건들을 골라서 담고 여전히 두 손에는 무거운 장바구니가 들려 있다.
그런데 한 번은 대형마트에서 엄마가 열심히 크고 싱싱한 과일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카트를 지키며 엄마를 바라보던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게 뭐길래... 엄마는 저렇게까지 열심히 고를까?' 그런 엄마를 보면 나는 항상 "아, 엄마 제발 그만 좀 골라. 그게 그거지 뭘 그렇게까지 해."라고 말하며 남들의 눈치를 보고 엄마를 부끄러워했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유독 그런 엄마가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멋있고 너무나도 감사했다. 사실 그렇다. 과연 엄마가 그 과일을 맛있게 본인이 먹고 싶어서 욕심이 나서 고르고 있겠는가. 당연히 아니다. 심지어 엄마가 입지 않는 다른 가족 구성원의 옷, 쓰지 않는 제품을 살 때조차도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이것저것 다 보고 가장 이쁘고 좋은 제품을 카트에 옮겨 담으신다.
엄마의 카트와 장바구니 안에는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만” 담겨 있다. 그게 바로 엄마 손에 들려 있는 사랑이다.
나는 그때 '아 이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라는 생각과 그동안 나의 말과 행동들에 대해서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몰려왔다.
드라마에서도 봤었고 정말 많은 어른들에게서도 들었던 말이 있다. '자식들은 부모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 자신들이 부모가 되면(혹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그제야 느낀다.' 나는 생각했다. '꼭 그렇게 늦게만 깨달아야 하는 건가? 부모가 되기 전이라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이라도 착하고 좋은 아들이라면 다 감사하고 사랑을 느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30대, 40대가 돼서야 부모가 되어 부모님의 마음을 느끼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동안 부모님에게 받았던 수많은 사랑을 새삼 느끼고 후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부모님의 사랑을 언제 깨닫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깨달으면 좋겠지만, 몇십 년이 지난 후든 정말 최악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이제는 감사를 표할 때도 없는 상황이어도 괜찮다.
그걸 알았으면 그걸로 된 것이다. 나는 그날 느꼈다. 나 역시 엄마와 장을 15년 동안 봤는데도 그제야 엄마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부끄러움과 후회로 인해 죄책감으로 가득 찼다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따뜻해졌고 그때부터 보이지 않던 사랑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마 엄마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사랑이 드디어 아들에게 도달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