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 병장 000은 1월 2일부로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2023년 7월 3일에 입대하던 그 더운 날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데, 어느덧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제가 드디어 2025년 1월 2일에 전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군대에 있는 동안, 어떤 것을 느꼈고 전역을 하면서 든 생각들은 어땠는지 기록하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전 카투사로 복무를 했습니다. 그래서 일반 육군, 공군, 해군 분들과는 약간의 군 경험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주셨으면 좋겠고, 자세한 군대 안의 이야기는 당연히 할 생각이 없고, 그저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할 거니 '으... 군대 이야기 하네.'라고 생각하지 말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고맙지 않았던 사람이 없었다... 인생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다.
1월 2일, 부모님이 아침에 부대로 저를 데리러 오셨습니다. 같이 짐을 싣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전 뒷좌석에 앉아 찍었던 사진을 정리하고 이어폰을 꽂고 "낭만젊은사랑", "Everytime"과 같은 감성 터지는 노래를 들으며 전역한 소감을 쭉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것을 느꼈고 전역을 해서 기쁘다는 내용보다도 주로 제가 쓴 내용은 누구에게 참 감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군 생활을 하며 감사했던 사람들의 이름과 이유를 쓰다 보니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혹시나 부모님이 백미러로 보실까 봐 급하게 눈물을 닦았습니다. '아니.. 왜 바보같이 눈물을 흘리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쩐지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인간은 모두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당연히 신이 아니기에 완벽할 수 없습니다. 전 그 부족한 부분을 본인이 노력해서 채워야 하기도 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 부족한 부분을 누군가 도와주는 것이 미안함과 쪽팔림이 절대 아닙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서로 옆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도와줬다고 해서, 더 우월하다고 으스댈 것도 없으며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갚아야 하고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그게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다만 제가 눈물을 흘렸던 이유는 그들의 도움에 감동을 받아서도 있지만, 제가 누군가를 정말 잘 도와준 경험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부끄러움의 눈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전 어렸을 때부터 성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이 가난한 편은 아니었지만, 넉넉한 편도 아니었기에 돈이 저에겐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돈을 중요시하게 된 저는 누군가에게 제가 가진 것을 베푸는 것도 쉽지 않은 행동이 되었습니다. 내가 가진 것들을 누군가에게 주고 도와주는 순간, 내가 뒤쳐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아주 바쁘게 살고, 치열하게 지냈습니다. 그렇게 20년이 넘는 세월을 경쟁 넘치는 사회에서 살다가,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군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군대에선 크게 누구보다 앞설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포상휴가를 얻기 위해서라면, 서로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군대는 단체 생활이고,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의 경우는 의무적으로 군대에 "끌려온" 상황이기에 그 누구도 엄청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진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와 함께하는 동료 모두가 다 잘하는 경우가 아니면 나까지 힘들어집니다.
제가 평생 살던 세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먼저 어떤 일을 끝낸 친구가 자연스레 행동이 느리고, 잘 모르는 친구들을 "무조건" 도와줘야 했습니다. 안 그러면, 그 사람이 속한 분대가 모두 혼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로 도움을 주다 보니, 나름의 "따뜻함"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친구가 정말 저를 사랑하고 애정해서 도와준 것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배려를 하다 보면 오히려 그 사람을 좋아하고 애정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회에 있을 땐 누군가를 돕는 게 저에게 마이너스라고 생각했는데, 군대에 와서 누군가를 돕고 본인이 조금 힘들어도 희생하는 사람들을 보니 제가 갖고 있던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참 멋져 보였습니다. 가끔씩은 '대체 저 사람은 무엇을 위해 자기가 희생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문을 품고 제 선임과 이야기를 하던 중, 실제로 전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 선임은 후임들이 모두 좋아하는 선임이었습니다. 저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병장이 되고 나서도 후임들을 위해 본인이 먼저 배려를 하고 봉사를 직접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그래야 우리 모두에게 좋은 건데..
누가 희생할지 고르고 고르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하면 좋잖아.
생각보다 답은 간단했지만, 그 안에 참 깊은 의미가 숨겨있었음을 그 선임이 전역하고 나서 알았습니다. 그 사람을 좋아했고, 제가 그 사람의 몫까지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선임이 전역하고 난 이후, 저도 후임들을 배려해서 몸소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고, 전혀 제 인생에서 마이너스가 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군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축소해 놓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아주 작은 부분이 전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더 확실하게 보입니다. 사회에서 내가 누군가를 배려하는 것이 마이너스처럼 보이는 것은 아주 넓게 보면 너무 미미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축소판으로 들여다보면, 그렇게 배려를 하는 사람은 다시 누군가의 배려를 받게 되고 오히려 지위가 올라갑니다. 악착같이 배려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자기 이득만 챙기는 사람은 어느 순간 도태됩니다. 그런 순간들을 군 생활하면서 여럿 접했고 제 생각도 점차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 현재! 현재!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군대는 참 J에겐 가혹한 곳입니다. 일정이 제대로 지켜지는 적이 없고, 하루에도 수십 번 내가 예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곳입니다. 저는 나름 파워 J입니다. 특히 계획을 세우는 것에 집중하기보단, 내가 세운 계획이나 루틴이 깨지는 순간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예민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훈련소에 와선 너무 화가 났고, 자대배치를 받은 이후에도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였습니다. 그 어느 날도 똑같은 날이 없었고,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예측이 가지 않아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짜증만 내다보니, 어느 순간부턴 짜증을 낼 힘도 없어졌습니다. 짜증을 내는 순간에도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웃기지만, 전 정말 슬펐습니다) 그리고 제가 깨달은 것은, 전 너무 미래를 통제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과거는 이미 지나갔기에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니 절대 예상할 수가 없습니다. 내일 당장 어떤 사고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게 우리의 삶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전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현재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음을 몸소 6개월 동안 수도 없이 일어나는 짜증 나는 일을 겪으며 배웠습니다.
물론 아직도 그게 잘 되진 않습니다. 지금도 제가 생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면, 억울해하고 화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경험이 많고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어떤 일이 일어나도 잘 당황하지 않음을 관찰했습니다. 군대에서 생활하며 정말 좋아하던 형이 있었는데, 저와 나이차가 꽤 많이 났습니다. 그 형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태연하게 행동했습니다. 물론 태연한 척하는 건지, 정말 괜찮은 건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후자였을 겁니다. 전 항상 화나는 일이 생길 때마다, 형에게 투덜대곤 했는데 그때마다 형은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화내봤자 뭐 해. 그 일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는 거야
사실 너무 간단하고 생각 없어 보이는 말 같기도 하지만, 저 말이 정말 강력함을 느낍니다. "그냥 하는 거야"
예전에 피겨 선수 김연아 님도 한 인터뷰에서 "매일 그렇게 훈련을 하면 힘들지 않나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시나요?"라는 질문에 "그냥 하는 거죠."라는 대답을 하셨습니다. 이 말이 어떻게 보면, 너무 의욕도 없고 수동적이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 한다"라는 말은 오히려 현재에 매우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다른 생각을 한다면, 그건 과거에 대한 후회 혹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서 그냥 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그분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끝으로, 전 처음 군대에 들어갈 때만 해도 ‘1년 6개월이 언제 지나가지? 너무 시간 낭비야..‘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시간은 금방 흘렀고, 그 시간 동안 더 단단해질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저처럼 그것이 의미 없다고 느껴지는 분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어떤 일이든 무가치한 건 없습니다. 다만 그 가치를 모른다는 것은 아직 내가 가치 있는 것을 잘 못 보는 사람인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