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왕국에 드리운 그림자, 우리는 무엇을 보았나

'나는 신이다'·'나는 생존자다'가 파헤친 JMS, 그리고 남겨진 질문들

by 이땃쥐

심판의 날, 그러나 끝나지 않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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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이다' / '나는 생존자다' 공식 포스터

대법원이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총재 정명석에게 징역 17년을 확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70대 후반인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사실상의 종신형에 가까운 형량이다.

2018년 만기 출소 직후부터 또다시 홍콩, 호주, 한국 국적의 여신도들을 상대로

상습적인 성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한 단죄의 순간이었다.

피해자들과 이 사건을 지켜보던 우리 모두가 기다려온, 정의가 실현된 것처럼 보이는 날이었다.

그러나 이 판결이 과연 이 거대한 비극의 온전한 마침표가 될 수 있을까?

숫자가 주는 명료함 뒤에는 석연치 않은 질문들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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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1심 재판부는 정명석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이는 양형 기준을 넘어서는 이례적인 중형으로,

재판부가 그의 죄질이 얼마나 무겁고 반성의 기미가 없는지를 명확히 인지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2심에서 형량은 17년으로 감형되었다.

피해자의 녹음 파일 원본이 존재하지 않아 증거로서 동일성을 입증할 수 없다는 기술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범죄의 잔혹성이 희석된 것이 아니라, 법의 절차적 허점이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다.

이는 교묘한 방식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범죄 집단에게 사법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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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큰 분노를 자아내는 것은 JMS의 2인자, 정조은(본명 김지선)에게 내려진 징역 7년이라는 형량이다.

검찰이 15년을 구형했던 것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가벼운 처벌이다.

정조은은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었다.

그는 정명석의 성범죄를 위한 ‘인간 공급망’의 설계자이자 관리자였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직접 여신도들을 선별하고, 잠옷을 건네주며 "주님 옆에서 지키라"는 말로 피해자들을 성폭력의 현장으로 밀어 넣었다.

판결문에서 그의 범행 동기를 ‘개인적인 경제적 이익’으로 판단한 부분은 이 사건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한다.

그는 단순한 범죄 공모자를 넘어, 교주에 대한 광신적 믿음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성 착취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지한 핵심 인물이었다.

법원이 그의 역할을 이토록 축소 평가한 것은,

사이비 종교 내에서 벌어지는 복잡하고 위계적인 범죄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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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정명석과 정조은에 대한 판결은

우리 사회에 ‘정의의 실현’이라는 위안보다는 ‘정의의 한계’라는 무거운 과제를 남겼다.

법의 심판은 내려졌지만, 그 심판이 과연 괴물의 왕국을 떠받치던 기둥들을 모두 무너뜨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거미줄처럼 얽힌 공모의 성채

50171_91660_4329.jpg 금산군 월명동 JMS 수련원

두 편의 다큐멘터리가 드러낸 진짜 공포는 정명석이라는 한 개인의 악행을 넘어선다.

그것은 바로 JMS라는 조직이 국가 시스템 깊숙이 침투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거대한 ‘성채’를 구축했다는 사실이다.

그 가장 소름 끼치는 실체는 경찰 내 사조직, ‘사사부(사랑과 평화의 사도 부대)’의 존재다.


정명석 스스로가 설교에서 100명, 많게는 150명의 경찰 신도가 있다고 자랑할 정도로 ‘사사부’는 실재하는 조직이었다.

이들은 단순한 신앙 공동체가 아니었다.

JMS 관련 수사 현안이 있을 때마다 비밀리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수사 정보를 공유하며 조직을 비호하는 방패 역할을 했다.

‘주를 수호한다’는 의미의 ‘주수호’라는 활동명을 가진 서울경찰청 소속 경감은 JMS 측에 휴대전화 포렌식 수사에 대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등 적극적으로 증거인멸에 가담한 정황이 드러나 검찰에 송치되고 직위 해제되기도 했다.

국민을 지켜야 할 경찰력이 범죄자를 수호하는 사병 집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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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스템적 유착이 피해자에게 어떤 절망을 안겨주는지는 ‘금산의 악몽’ 사례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 피해자가 서울에서 용기를 내어 정명석을 고소하자,

사건은 범죄 발생지인 충남 금산으로 이관되었다.

금산은 JMS의 본거지, 즉 ‘적진의 심장부’였다

관할 이관이라는 지극히 평범하고 합법적인 행정 절차는 JMS에게 피해자를 압박할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관 과정에서 한 경찰관이 고소 사실을 JMS의 ‘대외협력국’에 유출했고,

정보를 입수한 JMS 신도들은 즉시 피해자를 찾아가 고소 취하를 압박했다.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해야 할 바로 그 기관이, 오히려 가해자의 눈과 귀가 되어 피해자의 목을 조여온 것이다.


이는 단순히 몇몇 부패한 경찰의 일탈이 아니다.

JMS가 국가의 행정 및 사법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약한 고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자신들의 방어 체계로 활용했음을 보여준다.

피해자가 금산의 여성청소년 센터를 찾아가도, 그곳의 책임자가 JMS 신도라면, 수사를 맡은 경찰이 ‘사사부’ 소속이라면, 피해자는 과연 어디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가?

이것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JMS가 구축한 ‘평행 사회’ 안에서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현실이었다.

법과 제도가 존재하는 국가 안에, 그 법과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또 다른 왕국이 존재했던 것이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거대한 시스템적 악의에 맞서는 이야기는 결국 연약한 개인들의 서사로 구체화된다.

그 중심에는 배신과 생존, 그리고 구원이라는 복잡한 인간 드라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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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이다’ 제작 과정에서 벌어진 일은 JMS의 집요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제작팀 내부에 JMS 신도가 스파이로 잠입해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JMS는 공개된 구인 공고를 통해 프리뷰어(영상 확인 및 기록 작업자) 5명을 의도적으로 침투시켰다고 자랑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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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현 PD신변의 위협을 느껴 전기충격기와 삼단봉을 구비하고 다녔다는 고백은, 진실을 밝히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전쟁이었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을 멈추지 않고, 심지어 후속작 ‘나는 생존자다’에서 그 스파이와 다시 마주한 PD의 결단은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Gemini_Generated_Image_5ijruw5ijruw5ijr.png 귀순한 스파이를 AI 이미지로 형상화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스파이의 변화였다.

‘나는 생존자다’는 그가 어떻게 JMS의 지시에 따라 정명석의 범죄를 은폐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다가,

결국 자기 자신이 정명석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하게 되었는지를 폭로한다.

그 끔찍한 개인적 경험은 수십 년간 그를 지배해 온 세뇌의 족쇄를 단번에 부숴버렸다.

교주가 신이 아니라 추악한 범죄자임을 몸소 깨달은 그는 JMS를 탈퇴했고,

"다른 피해자들에게 큰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며

이제는 내부 고발자가 되어 제작팀에 결정적인 증언과 자료를 제공했다.

이는 JMS라는 견고한 성채의 가장 큰 약점이 역설적으로 교주 자신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신이라 믿었던 존재에게 다가갈수록, 그의 신성이 아닌 추악한 민낯을 마주하게 될 위험 역시 커지는 것이다.

광신도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동시에 가장 강력한 배신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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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둡고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 한 줄기 빛처럼 빛나는 존재가 바로 메이플이다.

그는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며 정명석의 범죄를 세상에 알렸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날, 그가 남긴 "정의가 진짜 있구나"라는 말은 수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의 용기는 단순히 개인의 트라우마를 고백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가 침묵을 깼을 때, 그 뒤를 이어 21명의 추가 피해자들이 고소에 나섰다.

메이플은 "얼굴 공개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이 만들어낸 이 거대한 연대의 파도는, 한 사람의 진실된 목소리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그는 피해자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생존자가 되어 다른 이들을 구원하는 길을 열었다.

7454d979-5b31-41dc-b54b-87c48a81d8fa.jpg 홍콩 스타 방력신과 결혼과 출산을 하게 된 메이플

‘나는 생존자다’는 바로 그가 지옥 같은 트라우마를 딛고 자신의 삶을 되찾아가는 눈부신 과정을 담담히 그려낸다.


생존자의 이름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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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과 정조은은 이제 감옥에 있다.

그러나 그들의 수감만으로 이 이야기가 끝났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같은 비극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진짜 문제는 한두 명의 범죄자가 아니라,

그들이 만든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방치하고 때로는 비호했던 우리 사회의 구조적 실패에 있기 때문이다.

법은 기술적 한계에 부딪혔고, 공권력은 내부에서부터 썩어 들어갔다.


정명석 없는 JMS는 새로운 얼굴을 내세워 존속을 꾀할 것이다.

7년 뒤면 정조은은 사회로 돌아온다.

경찰 조직에 암약하던 ‘사사부’는 과연 완전히 해체되었을까?

이 싸움은 특정 교주와의 전쟁이 아니라,

인간의 믿음과 약점을 파고드는 사이비 종교의 작동 방식 자체와의 전쟁이다.


이 길고 어두운 터널의 끝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희망은 바로 메이플과 같은 생존자들의 존재다.

그들은 가장 깊은 절망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결코 파괴될 수 없음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그의 트라우마 극복과 앞으로의 삶을 축복하고 싶은 마음은, 단지 개인에 대한 연민을 넘어선다.

그의 생존은 우리 사회를 향한 강력한 메시지다.


생존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외쳤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다시는 범죄의 방패가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감시하고,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생존자들이 밝힌 빛이 다시 어둠에 잠식되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 그것이 이 끔찍한 기록을 목도한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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